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어떤 갈림길
일상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기후위기의 논의도 급박하게 돌아간다. 전 세계의 기후학자들이 참여하는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지난달 6차 종합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야기된 위기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지 평가하는 보고서로서 1990년에 1차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인류가 문제를 직시하고, 방향성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보고서다. 가장 최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근거를 가진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6차 보고서는 지금 인류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인류만 갈림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지구상의 생명들이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이 두 갈래의 길은 단지 방향이 바뀌는, 한쪽은 서쪽으로 가고 한쪽은 동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아니다. 한쪽은 절벽의 나락으로 이어져 있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한 번 떨어지면, 다시 평지로 올라오는 데 수 천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깊은 저기로 이어져 있는 길이다. 지금 인류의 행보가 어느 길로 이어지는지는 앞으로 10년에 달려있다고 IPCC 보고서는 말한다.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에 처해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탄소 중립 시기를 앞당기는 시민투표가 진행되었다. 2045년으로 되어 있는 탄소 중립 시기를 15년 앞당겨 2030년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자고 주민투표를 한 것이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베를린의 시민투표에서 표출되었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 독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먼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당장 전남, 광주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을 경험하고 있다. 작년부터 누적 강수량이 바닥이다. 댐과 호수가 바닥을 드러낸다. 다른 지역의 수원을 끌어와서 당장의 물 부족을 채우려 하고 있지만, 이번 여름마저 마른장마를 경험한다면 물 부족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기후학자들에 의하면, 라니냐가 기후변화에 의해 더 강력해지고, 불규칙하게 전개된 결과라고 한다.
IPCC의 6차 보고서가 발표되고, 독일에서는 기존 탄소감축 계획을 앞당기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또한 전남, 광주의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발표에서는 산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14.5%에서 11.4%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배출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줄이는 목표가 오히려 3.1% 낮춰진 것이다. 그만큼 탄소를 더 배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국내 뉴스를 접하다 보면, 기후위기가 비껴가는 보호막이라도 한반도에 쳐져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한국에서 특히 일상은 바쁘고, 경제는 어렵고, 기후위기는 특별히 먼 이야기인 것 같다.
사어가 될 수 있는 “기후위기”
지금의 갈림길에서 인류와 생명들이 원치 않는 길로 들어선다면, 더 이상 기후위기라는 말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위기”는 상황이 위험하지만, 아직 해결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10년 안에 결정날 갈림길에서, 급격한 내리막으로 향하게 된다면 그러한 여지는 없어지게 된다. 10년 후에 우리는 기후위기 대신 다른 말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는 새로운 조어가 필요한 상황일 것이다. 기후재난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재난은 일회성의 뉘앙스가 있다. 태풍으로 인한 재난, 집중 폭우로 인한 재난과 같이, 태풍과 호우가 지나가면 다시 복구될 수 있는 희망이 그래도 재난에는 있다. 하지만 잘못 들어선 갈림길에서 이러한 일회성의 난국을 의미하는 언어는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후나락”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 나락(那落)은 원래 불교 용어로서 “죄업을 짓고 매우 심한 괴로움의 세계에 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의 세계, 또는 그런 생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피해야겠지만, 한쪽 갈림길에서 맞이할 세계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죄업”은 지금 세대가 짓고, “심한 괴로움”은 다음, 다다음 세대로 갈수록 격화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기후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에서, 기후위기가 사어가 되지 않도록 기후위기 너머를 위한 생각들을 결속하고, 행동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왜 우리는 기후위기를 멀게 느끼는가, 왜 IPCC의 경고와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대조를 보이는가에 대해 고심해 보아야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이 중첩된 문제이지만, 꼭 생각해봐야 할 내용 중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분리다.
지금 우리 생각의 방식에서, 자연은 자연이고 사회는 사회다. 자연사회, 사회자연이라는 용어가 있다면 사람들은 어색하게 느낄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자연사회학, 사회자연학이라는 학제나 강의과목이 있다면 어떠한 내용인지 의아해할 것이다. 지금 경제(사회의 영역)를 빨리 돌리기도 바쁜데, 환경(자연의 영역)에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냐는 목소리도 이러한 구도와 관련되어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이 살고 있는 도시는 이러한 분리의 생각을 지속시킨다. 도시는 자연이나 농촌과 분리되어 있는 지역으로 생각되지만, 도시 밖의 엄청난 지지, 혹은 희생 속에서 존재하는 특별한 지역이다. 도시 밖에서 물을 가져오고, 도시 밖에서 전기를 가져온다. 또한, 도시에 쌓인 쓰레기는 도시 밖으로 버려진다. 도시가 돌아가고 도시가 깨끗하기 위해 엄청난 땅의 비도시가 필요하다.
도시는 도시를 돌리기 위해 여러 장치를 하고 있고, 그 도시의 회전은 도시 밖과의 관계에 의해 가능하다. 도시에 당장 물이 부족하더라고, 도시 밖 물을 끌어올 송수관이 도시를 돌아가게 한다. 가뭄 피해가 농촌 지역만큼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도시 밖에서 화력발전, 수력발전, 원자력발전으로 공급되는 전기를 가지고 에어컨을 돌려서 더위를 피한다. 이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는 웬만한 변화가 도시의 울타리를 넘지 않게 벽을 쌓아 놓고 있다. 이 도시의 울타리는 기후위기를 불감하게 하는 두터운 벽이다. 하지만 도시 요새가 영속할 수 없다는 것을 유럽이나 북미의 대도시를 덮친 기후재난이 예증하고 있다.
몸의 연결
자연과 사회를 연결하기 위해, 또한 무거운 일상과 심각한 기후를 연결하기 위해, 몸이라는 매개가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들의 가장 기본적 토대인 몸이 지구와 사회, 자연과 사회를 연결하는 거멀못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몸의 변화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구환경의 변화가 인간의 몸에 미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구 위의 몸이다. 지구 속의 몸이다. 지구의 산소, 물, 원소들의 토대 위에서 몸은 만들어졌다. 동아시아의학의 언어로 하면 몸 밖의 육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몸 안의 육기이다. 지구가 아닌 별에 이 몸이 있다면 전혀 다른 몸이 될 것이다. 그 별에 한의학이 있다면 전혀 다른 육기를 말할 것이다.

기후의 위기는 건강의 위기라는 것을 IPCC 보고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위 그림은 이번 6차 종합평가보고서의 일부이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때 영향을 받는 부문과 정도를 표현하고 있는 이 그림에서, 건강과 웰빙 관련 부문은 모두 악영향을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특히, 감염병, 열기에 의한 건강문제, 정신 건강, 이주에 의한 문제를 지목하고 있다. 국외에서는 기후의학이라는 명칭으로 기후와 몸 그리고 건강의 관계를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최근의 기후의학은 기존에 있었던, 각각의 풍토에서 발생하는 질병과 건강의 문제를 연구하는 의학 분야와는 차별화된다. 기후변화, 기후위기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새롭게 자리잡고 있다.
동아시아의학의 입장에서는, 기후의학을 몸의 기후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 몸 안팎을 넘다드는 기후(氣候) 개념을 가진 동아사아의학은 (이전 연재 글 “몸의 기후학 I” 참조) 몸의 기후학을 이미 하고 있다. 그것을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재조명하고,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다음 연재 글, “몸의 기후학 III”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