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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07일 (화)

“한의학과 문학은 인간을 구제하는 학문”

“한의학과 문학은 인간을 구제하는 학문”

‘풍운의 태양인 이제마’·‘허준&동의보감’ 저술 등 한의학 계승 앞장
이철호 한의사 “진정한 한의학 정신은 대국민 전파다”

이철호 한의사1.JPG


이철호 한의사

경암 이철호 문학기념관


[편집자주] 

소설 ‘풍운의 태양인 이제마’와 ‘허준&동의보감’의 저자인 경암 이철호 한의사는 자신의 두 직함을 통해 의사로서 육체적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하고 문학으론 그들의 정신적 고뇌를 치유해왔다고 말했다. 문학인이었던 그는 한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한평생 의료봉사와 문학 작품을 통해 한의학 계승에 매진해 국민훈장 목련장(문화예술부분)·동백장(대민봉사부분), 사회봉사부문 대통령상, 조연현문학상, 한국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평론가협회 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서울시의원,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등을 거쳐 현재에는 새한국문학회 이사장, 종합문예지 ‘한국문인’ 발행인, 김소월문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으며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충북 증평군 도안면에 사재 40억 원을 출연해 ‘소월·경암 문학관’을 건립해 한국 고전을 기리고, 한의학의 발자취를 한 곳에 모으는 등 사회 환원에 앞장서 오고 있다.

서울 서초동 소재 ‘경암 이철호 문학기념관’에서 이철호 한의사를 만나 한의사로서의 삶과 소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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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 의정활동, 소월·경암 문학관 개관식 모습

 

Q. 문단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십수년 전 아내를 떠나보내며 한의원을 접고 교육과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고령이다보니 강의를 쉬고 싶었지만 후배들이 문단을 두드리는데 모른척할 수 없었다. 증평 ‘소월·경암 문학예술기념관’에서 야간반·주간반으로 나눠 강의를 하며 문학인 후배들을 배출하고 있다. 또, 낭송법 관련 도서를 출간한 이후 20년 째 매년 6월 6일 전후로 현충원 국립묘지에서 전국 낭송낭독대회와 백일장을 열고 있다.


Q. 문학인으로 시작해 한의사가 됐다.

문학적인 소질은 아버지에게, 의료인으로서의 열정은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았다.

외조부가 우리나라 최초 근대적 의학교육기관인 세브란스의과대학의 의학박사로, 의료인 집안이었지만 가세가 기울며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검정고시로 가톨릭대학교 의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입학금을 낼 형편이 못돼 진학을 하지 못 했다. 이후 동국대학교 문학콩쿠르에 참가한 글이 장원이 되면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경기도 이천 양정여고와 오산고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를 하면서도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의료인에 대한 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즈음 한의과 대학이 6년제가 되면서 한의학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신했다. 결혼 후 사글세라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경희대 한의학과의 문을 두드려 첫 6년제 한의과 1기생으로 입학했다. 명동 삼각동에서 이철호한의원을 개원해 줄 곳 40여년을 운영했다.


Q. 한의학과 문학의 공통점은?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치유하고 어루만지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의사로서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구제하고 문학으론 그들의 정신적 고뇌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의사 문학인이 없던 터라 소설을 통해 한의학에 대한 홍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소설 ‘풍운의 태양인 이제마’ 1·2·3권을 집필해 20여 년 전엔 TV 드라마화되어 대중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다. 또, 그동안 임상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장편다큐멘터리 ‘허준&동의보감’ 1·2·3권 간행을 통해 기존 허준 관련 매체에서의 한의학적 오류와 역사적 근거 등을 바로잡아 보안된 내용으로 드라마화 되어 방영될 수 있었다.

대중매체에서의 사상체질 및 사상의학, 동의보감이라는 명사는 집필 소설에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한의사와 문학인으로서 역사적 소명을 할수 있었다.

이 밖에도 여러 문학 작품들이 80년대에 ‘TV문학관’ 등 단막극 형태로 드라마화됐는데, 대부분 당시 진료 중 환자들에게서 체험한 인간내면 세계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재조명한 작품들이었다.

 

방송활동.png
▲대중매체에서 활약한 이철호 한의사

 

Q. 대중 매체와 관련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한의원 운영 당시 KBS방송국 편집국장의 7년 된 대장염을 두 달 만에 치료한 이후 방송 프로그램 출연 섭외가 들어오며 한의원으로 하루 백여 통씩 전화가 오고, 환자들이 몰려와 번호표를 나눠 줘야 했다. 아마 한의사가 매스컴을 타는 건 최초였을 것이다. 

당시 ‘섬마을선생’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이 방송될 때였는데, 한의사의 침술로 인해 등장인물이 위험에 처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곧 바로 작가실로 뛰어 들어가 ‘같은 작가 입장에서 한의학을 폄훼하지 말라’고 항의했더니 무자격자의 불법행위였던 것으로 내용을 바꿔 수습했다. 

이후 주변에선 극성파라면서 흉을 보거나 당시 보수적인 한의계에서는 ‘한의사가 무슨 문학과 방송을 하냐’면서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지금도 진정한 한의학의 정신은 우리의 한의학을 여러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전파해 국민들이 납득할 신뢰와 명분을 쌓아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Q. 의료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하셨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타자 한의사협회뿐만 아니라 문인협회, 세계청소년기구, 정계 등에서 손짓을 해와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어느 날 큰 행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며칠간 혼수상태를 헤매다 깨어났는데, 당시 병원에서 절망적인 진단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집을 떠나 전국을 떠돌며 의학서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약제제 등을 통한 민간요법·영양요법을 병행하며 전국 사찰을 순례하던 중 병이 호전됐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매주 월요일은 간호사와 함께 달동네를 다니며 무료진료를 실시해 10년 간 4400여명을 치료했다. 방송에 나온 한의원이라는 이유로 의료비가 걱정돼 내원을 망설인 분들을 치료해 준 것이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치료 받으신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사연이 퍼져나가며 많은 분들의 사랑을 통해 활동 반경을 더욱 넓혀나갔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최근 한의사의 초음파진단기기 활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한의계에 경사스러운 일이다. 시대적 과학과 문명의 발전에 따라 한의학도 첨단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와 함께 한의학 고유의 맥진 등 기본 진단 기술과 인간애를 절대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좋은 문학 작품은 영원히 남는다. 작품과 작가 정신은 지속적으로 기리는 반면, 한의계는 직능 간 대립 등 너무 현안에만 치우쳐져 있는 느낌도 있다. 한의사협회는 한의학에 대한 대국민 홍보차원에서 옛 선배들이 일궈놓은 업적과 정신을 지속적으로 공론화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최근 한의신문 지면을 통해 지난 60년 문학생활을 회고하며 간행 작품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이는 그리운 한의계의 옛 동지들과의 만남을 성사하고픈 마음을 담은 것으로, ‘내가 여기 건재해 있으니 찾아와 달라’는 선전인 셈이다.

특히, 예부터 한의사들은 재주와 감성이 뛰어나다. 앞으로 작은 바램이 있다면 이러한 한의사 문학 후배들을 많이 배출해 한의학의 대중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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