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9 (목)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최근 SCI(E)급 저널 ‘국제 환경연구 및 공중보건저널’에 ‘한국 산모의 출산 경험과 한의학 기반 산후케어에 대한 관점:질적 연구’ 논문을 게재한 서주희 박사(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장)에게 논문 작성 배경과 연구 수행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점, 후속 연구 방향 등을 들어봤다. 서 박사는 현재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환자들의 한의 치료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재난트라우마의 한의진료매뉴얼 개발의 후속과제 등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Q.국립중앙의료원에서 한방산후건강관리사업을 맡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매해 공공의료사업을 모집,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한방산후건강관리에 대한 기획안을 직접 제출하고 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아 2017년부터 윤인애 과장과 사업을 진행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산모들이 내원하면 한의진료를 제공한다.
Q.사업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기로 한 계기는?
산후 한의약 관리는 전통적으로도, 임상적으로도 한의약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 분야다. 이런 강점이 실제 산모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산모들이 겪는 산후 과정에 한의약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내용을 심층 인터뷰로 확인하고 싶었다. 정 연구를 통해 도출된 내용이 정책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Q.산후에 느끼는 산모들의 경험은?
대부분 출산 후 다양한 이유로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지는 일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출산으로 이미 약해져 있는데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면서 지치고 힘들고 우울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배우자나 가족 간 갈등으로 정서적으로 지지받을 대상이 없으면 산후 우울증까지 나타나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아기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며 자신만의 공간이 사라지거나 경력이 단절되는 결과에 상실감을 느끼며 자신이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산후 조리와 신체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산후풍을 예방하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땀을 내는 등 개인적 차원의 노력부터 휴식의 기간을 필사적으로 지키기 위해 산후도우미나 가족들에게 육아와 가사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이 없으면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산후조리 질의 편차가 클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적으로도 부담되어 산후조리원이나 산후도우미를 고용하기 어려워하기도 하고, 한약을 먹으면 몸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한약 비용이 비싸서 개인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Q.특별히 인상 깊었던 산모 대상의 한의진료 경험은?
산모 분들은 한약 외에 침이나 추나 치료도 바로 효과를 느낄 수 있어서 치료를 더 받고 싶어했는데, 아이 때문에 내원하기가 어려워 무척 안타까워했다. 산후우울증이 의심되는 분들은 저희 원에 있는 중앙난임우울상담센터를 안내해 산후 우울에 대한 관리와 상담도 같이 진행할 수 있게 했다.
제가 모유수유한의학회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기 때문에 산모 내원 시 수유상담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산후 통증의 경우가 잘못된 수유자세로 인한 경우도 많고, 원래 가지고 있던 신체 통증이 출산 이후 악화해 힘들어서 수유를 포기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엄마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자세나 도움 되는 팁 등을 티칭해 되도록이면 모유수유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지해 드렸다.
또 한약에 대한 우려되는 부분을 사전에 물어보고 설명해드리면 신뢰감을 표시하며 복약 순응도가 올라갔다. 지원이 끝난 후에도 더 복용하고 싶어서 내원한 분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내원한 분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저 역시 두 아이를 출산했고, 둘째 출산 후에 산후풍이 왔지만 회복한 경험이 있어 산모들의 이야기에 최대한 공감하고 안심시켜드리려 했다. 산모들이 잠깐 시간을 내서 내원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지금 여기 진료실에 와 계신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했다.
Q. 연구 진행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지원자 모집이 가장 힘들었다. 처음 이 산후건강관리 공공사업 진행할 때에도 포스터와 브로슈어를 제작해 직접 서울 각 자치구 보건소의 모자보건 담당자분들께 가져다드리면서 사업을 알려드렸다. 호의적인 보건소도 있었지만, 사업이 많고 바쁘다보니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연구진행과정에서는 코로나19가 가장 큰 이슈였다. 출생률이 매번 최저치를 갱신하는데 코로나 상황까지 악화되자 산모들이 외출 자체를 꺼려했다.
Q. 후속 연구를 위해 필요한 과제는?
산욕기에 적극적인 한의약 산후관리를 한 경우, 여성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평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Q. 남기고 싶은 말은?
늘 넓은 식견으로 연구 아이디어를 주시는 박민정 한의약혁신개발사업단장님, 산후건강관리사업을 먼저 지자체에서 확장시키고 저희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이진윤 익산시보건소장님, 질적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적확한 도움을 준 서효원 강동경희대 연구교수, 산후 안전한 한약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시고 산후사업에 늘 든든하게 지지를 해주시는 조선영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장님, 그리고 저를 모자보건에 대한 길로 이끌어주시고 임산부 보건사업의 씨앗을 뿌리신 故 지은영 모우슈유한의학회 이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업과 연구에 참여해주신 산모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