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사법 기관의 최종 판결이 나오자 당장 시민단체가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사실상 제주 영리병원 논란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13일 대법원 특별1부는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외국 의료기관의 개설 허가를 취소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녹지제주는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지하 1층~지상 3층, 전체 면적 1만7679㎡ 규모의 녹지병원을 짓고 2017년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신청을 했다. 제주도는 2018년 12월 내국인은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운영하라는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녹지제주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에 불복해 2019년 2월 소송전에 돌입하면서 병원 개설이 미뤄졌다. 제주도는 녹지제주가 허가를 받은 뒤 3개월이 지나도록 개원을 하지 않자 같은 해 4월 청문 절차를 거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의료법은 개설 허가 이후 3개월 이내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기관이 개원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녹지제주 측은 제주도의 개설 허가 취소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제주도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제주도의 조건부 개원 허가 결정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개설 허가에 공정력이 있는 이상 일단 허가 후 3개월 이내 의료기관을 개설해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데도 무단으로 업무 시작을 거부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선 1심 판단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녹지제주가 주된 이용 대상을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하면서도 내국인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원 준비를 마쳤는데 제주도가 허가 신청 15개월이 지난 후에야 진료 대상을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한정했다”며 “사업 계획의 수정과 인력 채용 같은 개원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2심에서 결과가 뒤집히자 제주도는 즉각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녹지제주 측 손을 들어준 원심 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제주도가 녹지제주 측에 내어준 개원 허가는 유효하게 됐다. 다만 ‘내국인 진료 제한’ 등 진료 대상 범위를 다투는 소송은 진행 중이다. 법원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가 부당하다며 녹지병원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선고를 연기했다.
한편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6일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권이 더 이상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대법원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을 촉구한다고 했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심리조차 거부하며 아예 기각했다”며 “영리병원 설립 관련 사건이 최초로 대법원에 올라왔음에도 ‘나 몰라라’하는 대법원을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의료를 산업화하고 영리화하는 정책과 규제 완화를 그 어느 정부보다 열심히 해 규제프리존법, 첨단재생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혁신의료기기법, 건강관리서비스 민영화 등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못했던 것들을 모조리 해치웠다”며 “문 정부의 이러한 정책 방향은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불허한 1심을 뒤집은 고등법원의 판결과 대법원의 상고 기각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들은 “다음 집권을 노리는 대통령 후보들은 영리병원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어질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는 공공의료의 확충이 필수불가한데도 영리병원은 또 다른 영리병원을 낳으며 공공의료를 약화시킬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