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년 1월부터 잔기침이 시작돼 2020년 8월까지 거의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기침으로 고생했던 환자가 내원했다. 재활이 필요한 다양한 통증질환이 전공인 나로서는 통증 이외의 내과, 이비인후과 계열의 만성질환 혹은 잘 낫지 않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상담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만성 기침을 포함하여 식도염, 이명, 비염, 아토피 피부염 등은 그들의 스토리를 A to Z 들어주는 것도 꽤 인내를 요하는 일인데다가 막상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그 애매모호한 호전과 지리멸렬한 과정을 참아가며 토닥토닥 따뜻한 격려의 말까지 보태기란 정말 힘이 든다.
그러나 초진시 ‘컹컹’, ‘쌕쌕’ 거리는 기침과 불안한 호흡으로 원활한 대화마저 힘든 모습을 보니 그 어떤 치료라도 당장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일단 그동안의 치료경력을 모두 알려달라고 했다. 환자분은 병원명칭과 방문날짜, 치료내용 등을 상세히 적어왔다. 로컬 이비인후과 두 곳(목감기,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단), 내과 두 곳(단순 기침감기, 천식 초기로 진단)을 경유 각 병원마다 3∼4주간의 약처방을 두 차례씩 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고 기침이 점점 심해져서 모 종합병원 호흡기내과를 방문했더니 이번에는 기침형 천식(cough variant asthma)이라는 진단을 받고 5개월 정도 진해거담제, 기관제 확장제, 코막힘 완화제 등을 복용했으나 야간 기침은 더 심해졌고 숨이 차올라서 평지를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테스형’에 소크라테스 아닌 히포크라테스 대입한다면?
일산에 비염천식으로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는 지인의 소개를 받고 한약도 2회 복용했으나 기침은 그대로여서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또 다른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호흡기질환으로 유명한 여의도의 한 내과에 들러 그동안의 모든 병원 처방전을 먼저 보여드렸더니 그간 쓸 수 있는 약은 모두 쓴 것 같고 내 치료에도 효과가 없다면 미안하지만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는 약간은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시며 주사와 약처방을 권하셔서 1회차 치료를 막 하려던 즈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 동료 추천으로 내 진료실을 방문하게 된 상황이었다.
어떤 증상이 1년 넘게 지속이 된다는 것은 그 증상이 어떤 종류이든 쉽게 나을 수 없으며 지금까지도 치료를 쉬지 않았으니 내 치료를 지금 당장 시작하더라도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1개월간 기침을 완화하는 한약처방을 복용하면서 뜸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수련의 시절 다인실에서 한 입원환자가 밤새 기침을 하시는 통에 다른 환자분들과 보호자들이 심하게 컴플레인을 했었는데 그 다음날 회진을 도시던 담당 교수님께서 천식, 기침에는 배수혈(폐수, 심수, 격수)에 20∼30분 시간을 정해놓고 뜸치료를 집중적으로 하라는 오더를 주신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뜸 치료만으로도 꽤 많은 환자들의 오래된 기침이 완화되는 케이스를 많이 경험했던 터라 ‘만성 기침=배수혈 뜸치료’가 내게는 하나의 공식이 되어 있었다. 8월13일 처음 내원해서 10월 중순까지 2개월간 주 2∼3회, 총 20여회의 뜸 치료와 한약복용 병행으로 다행히 환자의 기침은 잦아들어서 현재로서는 은행원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불편함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지난 추석연휴, 전국을 강타한 KBS 나훈아 콘서트는 올해 발표된 9곡의 신곡으로 그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테스형’은 여러 정치적·사회적·문화적인 분야에서 재해석과 재인용을 유발하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패러디물로 2020년 가을 대한민국에 나훈아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위의 만성 기침 환자의 증례를 경험하며 나훈아님이 호출하신 테스형의 테스에 소크라테스가 아닌 히포크라테스를 대입시켜 보았다.
짝퉁 나훈아로 활동하신 모창가수 故너훈아님의 친동생, 개그맨 김철민님이 지난 10월22일 국정감사 보건복지위원회 증인으로 온라인 화면을 통해 개 구충제 복용 관련 의견을 피력했던 기사를 보고 든 생각이기도 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바탕으로 전문의 과정을 수료하고 전문 분야에서의 임상 경험이 아무리 풍성해도 매뉴얼대로 처방하고 치료해도 잘 안 낫는 난치 케이스를 날마다 만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아, 테스형!! 환자가 왜 이래?! 이 병은 또 왜 잘 안 나아?!“라고 물어도 늘 우리를 시험에 빠져들게 하는 게 또 임상 현장 아닌가?!
암환자의 개 구충제 복용 관련 한의약에 대한 영향은?
2019년 8월6일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폐에서 림프, 간, 뼈로 암이 전이된 상태인 김철민님의 주장은 개 구충제(펜벤다졸)가 암 치료에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듣고 이를 복용하다 부작용을 겪었으며 검증되지 않은 대체요법의 위험성을 바로 알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선인장 가루나 대나무 죽순으로 만든 식초를 무료로 줄 테니 복용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면서 항암 관련된 대체요법에 현혹되기 쉬운 암 환자가 믿고 상담받을 수 있는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은 “펜벤다졸의 경우도 정부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지만, 이를 복용하는 환자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했던 것도 사실이다. 복용, 부작용, 판단이 모두 환자들의 몫이었다”라고 지적하며, “미국 NIH 산하에 대체의학 연구센터에서는 이미 각종 요법들의 근거 마련과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대체요법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 실태조사를 하고 근거 수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박능후 장관도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대체요법을 제도권 안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좋은 효과든 나쁜 효과든 제대로 연구해서 알려드리고 권장과 제재를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환자의 대체보완의학 접근에 대한 의료계의 적극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는 김철민님의 주장, 암환자들의 대체의학 치료 관련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라는 신현영 의원의 답변, 그리고 실질적인 사용자들을 위해서라도 대체보완요법의 효과 판정과 홍보 그리고 적절한 권장, 제재를 해야한다는 박능후 장관의 의지는 향후 암환자들, 환자의 가족들, 암 특성화 병의원을 운영 중인 한의사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될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불똥이 될까?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개 구충제, 선인장 가루, 대나무 죽순 식초 등이 암환자들을 위한 한의학적 개입에 비견될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침 치료만으로 암환자들을 보고 계시는 한 선배가 최근 간암 말기환자 1인을 대상으로 3개월간 침 치료를 시행하고 경과 관찰 중인데 복수와 황달이 없어지고, 간수치 포함 혈액검사 전반의 수치들이 정상화되면서 간암 크기도 줄어들어서 해당 병원에서 신기해하고 있다는 증례를 들려주었다. 말기암 환자들마다 각각 다른 경과를 보이고 있기도 하고 이 환자의 향후 컨디션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기에 아직 논문화 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케이스를 늘려가면서 일정한 효과를 보여주는 것만이 암환자들의 한의치료, 그 필요성에 대한 대답일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행복하게 늙고 싶다 아프지 않게’…
침 치료에 대한 애정을 잘 기술 ‘눈길’
와세다 법학부 출신의 저술가 소에지마 다카히코의 『행복하게 늙고 싶다 아프지 않게』라는 책은 예전부터 책꽂이에 꽂혀져 있다가 최근 내 눈에 띄어 다시 한 번 읽어본 책이다. 기존 의료계의 몇 가지 부정적인 단면에 대한 비판과 65세 즈음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침 치료에 대한 애정을 잘 기술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면허제도상 한의사가 없는 일본의 상황을 감안하여 ‘침구사’를 ‘한의사’로 바꿔서 인용한 것임).
의료계는 환자인 노인들을 재물로 삼아 유지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친 말로 들리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저술가로 30년을 살아온 나의 신념이다. 의사는 ‘조금씩 치료합시다’라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말을 한다. 의사는 노인병은 낫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치료하는 시늉은 한다. 간혹 자상한 의사의 경우 서비스업 종사자 같은 거짓 웃음도 짓는다. 병원도 결국은 장사다.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일수록 추간판탈출증 수술을 많이 하고 여전히 탈출한 연골 부위를 잘라낸다. 이것은 의료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심각한 의료사고다. 아버지가 의사였기에 나는 의료계가 낯설지 않다. 의사의 말에 속아 수술을 받고 그 결과 증상이 악화된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의 지식과 지혜가 부족해 의사에게 속았다’고 정확히 말해준다. 더불어 MRI라는 값비싼 고성능 의료기기가 급격히 보급되고 유행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환자들을 더 많이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제도, 체제, 권력자들에게 속고 있다. 현재 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한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나와 잘 맞는 한의사다. 침을 맞으면 일시적으로 상태가 좋아진다. 그러나 이것으로 병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저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간다. 나는 노인에겐 한의사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최근 내가 선호하는 것은 침술이다. 60세를 넘기면 침과 뜸이 무척이나 긴요하다. 안마와 침구는 노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존재다. 몸이 힘든 사람은 한 번 한의사를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
60세를 넘기면서 침과 뜸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한의학 예찬이 반가웠다. 서양의학 전공자들이 한의사를 무시하는 행태에 대한 지적도 고마웠다. 동시에, 노인들을 재물삼고 치료는 시늉만 하며 결국은 장사치들이라는 비판은 오늘날의 거의 대부분의 의료인들이라면 “나는 절대 아니야…”라고 100% 부정하기는 어려운 멍에일 것이다. 환자들에게 인술을 베풀기도 전에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먼저 베풀어야 하는 병의원 운영에 큰 부담을 등에 지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켜내기란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환자에 귀 기울이고, 최선의 치료하는 것…
‘허준선서’의 실천으로 가는 첫걸음
한의사들에게도 본과진입식 때 한번씩 읽고 지나가는 ‘허준선서’라는 게 있다. 『나는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는 일체 하지 않겠나이다. 나는 환자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겨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치료하겠나이다. 나는 한의사로서의 긍지와 인격을 지니겠나이다.』 기침형 천식이든 말기암이든 경중을 떠나 삶의 질을 위협하는 다양한 증상으로 우리를 방문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의 최선의 치료를 시도하는 게 ‘허준선서’의 실천으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과 당황스러움에 진료실을 찾아왔던 환자들에게 안도감과 평안함을 가지고 진료실을 나갈 수 있도록, 치료의 처음부터 끝까지, 호전도 악화도 모두 환자, 보호자들만의 몫으로 미루지 말고 환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끝까지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 마지막으로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에 이어 허준선서까지 들춰보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나훈아의 ‘테스형’을 한 번 쯤은 제대로 듣고 따라불러보실 것을 강추드리는 바이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