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한의 부흥운동을 촉구한다”

지 규 용 /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위기상황, 회원 모두 처절한 자각과 공유

한의학 정체성 근본적 전환 공동목표 매진

한방건강보험 확대 등 보험체계 혁신

한의사 국가시험 내용과 방법 개선

학계 임상자료 확보 개원가 보급

각각의 역할과 로드맵 위한 상설기구 구성



3. 전통적인 인식론의 paradigm shift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않으면 그것이 새 술인 줄 알 사람은 많지 않다. 한의학은 지금껏 천인상응론과 음양오행론, 장상론을 진리로써 사유하고 믿어왔다. 그러다 보니 한의학은 목적론적 해석과 연역적 해석이 인과나 귀납보다도 더 의미 있게 설명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의학이 추구하는 것은 병리현상들의 진리이고 병에 대한 치료기술이지 이들을 추상적으로 해석해낸 원리나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참’과 기술을 향할지언정 도그마화된 이론들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이러한 고유이론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무조건 배제하지는 않을 여유가 생기게 된다. 필자 역시 한의학의 제이론들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것만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지각하는 사물을 낱낱이(fact) 인과적 관계를 분석하고 귀납적으로 조립하는 것은 전체를 묶어(interpretation) 목적론적 추론이나 연역적 해석으로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사태의 본질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식 가능한 정보가 충분히 확보되는 경우인 한에서의 일이다.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될수록 목적론적 해석과 연역적인 분석틀의 의의는 커지게 된다.



더구나 생명체는 생존을 목적으로 행동하므로 우리가 찾는 ‘참’은 이러한 방법론들의 교집합 공간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마치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모두 근대의 과학혁명에 독자적으로 기여한 것과도 흡사하다. 다시 말하면 한의학은 인체의 병리현상과 치료법에 대한 합리적 해석방법으로 오랫동안 음양오행론을 채택하여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으로 ‘이것뿐’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의학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음양오행론이나 오운육기론 자체인가? 인간의 질병에 대한 漢 이후 當代까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온 치료체계와 방법들인가? 중국의학사에서 불교나 도교, 유교, 서양의학을 수용한 전례에서 보듯 한의학은 항상 이웃과 교섭하며 변신하고 정합시켜온 생명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위기사태가 과거와 다르게 심각해진 문제의 핵심은 한의학의 열등성이나 서양의학의 우월성에 있다기보다는 근대과학 패러다임의 일반화에 따른 의료 소비시장에서의 지배력 차이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투는 민주주의 자본제사회에서 기본권으로 보장된 것이니 한의학의 變身과 整合 및 재창조를 위해 무엇을 배우고 공부하든 우리의 자유의지에 속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료법에 규정된 ‘한방의료’의 정의에서 비롯되는 구속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법 제정 당시의 사회관습에서 형성된 규정이 아닌가? 이에 관해서는 비전문가인지라 정확한 해석을 할 수는 없으나 그들도 IMS로 우리의 영역을 파고드는 현 상황에서 의료 환경의 변화와 실행전술에 따라 수정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



Ⅲ. 결론과 제안



한방의료 시장의 급격한 붕괴사태에 직면한 우리에게 현재 요구되는 가장 시급한 일은 위기상황에 대한 회원 모두의 처절한 자각과 공유이다. 그 시작은 한의학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전환으로부터 시작되며 동시에 위기의식의 공유로부터 각자의 처지에서 벗어나 회원 모두가 공동목표만을 생각하고 매진할 수 있다.



항상 ‘똑똑한 시장’을 염두에 두고 의료보험용 한약복합제의 고품질화 및 품목 확대, 의보체계에 맞춘 질병 분류, 수요기반 질병연구와 임상에서 빈용되는 진단치료기술과 표준 개발, 현장중심학습 매뉴얼 개발 등을 하여야 한다. 나아가 커리큘럼 개혁, 팀별협동학습 등을 진행하는 한편 중기적으로는 국가시험의 내용과 방법을 바꾸고 장기적으로는 국내 및 국제적인 전통의료 공급자간의 임상기술 인증을 통하여 관련시장에서의 광범위한 권위를 획득하여야 한다. 현재 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도 임상연구를 중심으로 하며 상호유기적인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연구방법과 과정도 수시로 AKOM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여 임상데이터를 최대한 빨리 모으고 널리 개별임상의에게 보급하는 방식을 강구하여야 한다.



요컨대 한의계의 전 역량을 임상수준 제고와 의학적 권위의 확립에 집중시키고 협회, 대학, 학회, 연구원, 병원, 학생들 모두가 거국적으로 참여하여 상설기구를 만들어서 각각의 역할과 로드맵을 만들어 신속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총체적인 노력을 ‘한의부흥운동’이라 부르고 싶다. 상세한 각론을 나열할 수는 없으나 이렇게 한다면 비로소 한의학의 21세기 르네상스를 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