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수명 동진한의원장의 저서 <신이 준 선물, 한의학>은 저자가 60여년간 임상을 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치게 한 처방을 엮은 책이다. 저자는 난치병으로 꼽히는 ‘결핵성 척추염’을 치료하거나 난임 치료를 위해 비만증을 해소하는 처방으로 임신을 성공하게 하는 등 뛰어난 처방으로 한의업을 이어온 인물이다. 경험을 우선시하면서도 임상을 다룬 책이 전통의학이나 동양의학에 드문 편이이어서, 치료 처방에 중심을 두고 직접 효과를 보고 경험한 책을 쓰고 싶었다는 게 저자의 바람이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중풍, 당뇨병 등 임상 현장에서 만난 난치병을 치료한 사례를 풍부한 에피소드를 통해 담아냈다. 2부에서는 상사병, 만성신장염, 불면증 등 27가지의 크고 작은 질병을 치료한 사례를 제시했다. 3부 ‘한방에세이’는 한의원이 위치한 양평군 서종면에서 산모에게 한약을 제공하게 된 배경, 창신동 소재 한의원을 접고 서종면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일 등을 수록했다. 4부에서는 모과차, 율무차 등 한방차의 기원과 함께 한방약차를 잘 마시는 법을 소개했다. 5부에서는 춘곤증, 여름 보약 등 계절 변화에 따라 걸리기 쉬운 질환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소개했다.
난치병에 대한 치료 사례 중 인상 깊은 대목은 경희대 한의과대학 석사를 밟으며 공개하려던 ‘결핵성 척추염’에 대한 내용이다. 교통사고 이후 환부에서 물이 나오고 피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채 골수염을 앓고 있던 동네 버스기사에게 저자는 십전대보탕 등을 처방해 피부가 재생되고 물도 나오지 않는 등 완치한 경험을 서술했다.
저자에게 늑막염 치료를 받은 다른 환자는 자신의 결핵성 척추염까지 손 원장에 맡겨 증상의 호전을 경험하기도 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이 나으려면 부인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 헌신해온 부인을 떠나 여관을 전전하기도 하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그런 사람에게 약을 지어줄 수 없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이윤보다 질환을 대하는 환자의 됨됨이를 중시하는 저자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부에는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의 질부를 한약으로 임신하게 한 사례가 나온다. 큰 키에 살집이 있어 임신이 어려워 보이던 질부는 사물탕 처방을 받은 지 몇 달 후에 임신에 성공했다. 부종에 따른 비만증이 있던 난임 환자도 임신약보다 비만증을 해소하는 목통탕을 처방받고 아이를 가지게 됐다.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 등 인위적인 방식보다 체중 감량으로 난소 기능을 원활하게 하는 등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환자의 임신을 돕는 한의난임치료의 특징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한방약차 마시는 법을 일러두는 대목에서 저자는 커피의 부작용을 언급하며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를 마실 경우 자신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맞춰 알맞게 마실 것을 권유했다.
커피는 향미가 강해 잠을 쫒아주고 정신을 맑게 하지만 비위장 등 소화기나 심장을 포함한 순환기가 약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한·양방을 통틀어 약을 먹을 때 커피와 술을 삼가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모과, 율무, 오이, 생강 등을 이용한 한방 약차의 효능과 부작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효과가 좋은 처방도 함께 귀띔했다. 쌍화차의 경우 잣이나 대추육을 별도로 썰어두었다가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씩 섞어 쓰거나 볶은 은행을 섞는 것도 효과적이다.
춘곤증, 여름 감기와 수박, 사물탕 등 계절에 따라 걸릴 수 있는 병에 대한 처방을 소개하는 챕터도 있다. 늦봄이나 초여름 사이에 생기는 ‘주하병’(注夏病)은 나른하면서 다리에 힘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는 등 대표적인 계절병이다. 요즘에는 지나친 노동으로 땀을 흘리거나 피를 흘려서 주하병에 걸리기 쉬운데, 이럴 때 보약류의 처방이나 식이요법은 오히려 몸을 축낼 수 있어 한의사와의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이 책은 지역사회 기부, 산후보약 제공 등 현재까지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는 저자의 궤적을 잇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최근 자신의 개업 지역인 양평군 서종면에 이웃돕기 성금으로 300만원을 기부했으며 5년 동안 노인후원회를 통해 산모에게 보약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판매수익도 서종면의 고등학교 신설에 전액 쓰일 예정이다. 수십 년 앞선 자신의 처방이 후배 한의사나 환자들의 치료기간을 앞당기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하니, 그만의 ‘비방’(祕方)은 한의업을 이어오며 이런 영향력을 펼처 온 이력에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