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신 마취 후 수술을 받았는데 헤드기를 끼워 소리도 안 들리고 시야도 확보가 안 되게 가림막 같은 게 처진 공간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수술이 잘못됐는데 동의도 없이 이번에는 전신마취 후 수술을 진행했고요. 퇴원 후 직장생활은 커녕 가족의 도움 없이 이렇게 일상생활도 불가능한 상태가 됐습니다.”
최근 간호조무사와 행정직원들이 불법 대리수술을 일삼은 것으로 적발된 인천 척추전문병원에서, 수술 실패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됐다는 김장래 씨가 자신의 사연을 공개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단연)는 17일 서울 종로구 청어람홀에서 ‘무자격자 대리수술과 중증건선 산정특례’를 주제로 제23회 환자샤우팅카페를 열었다.
척추전문병원에서 통증을 줄이려 실시한 허리 수술 후 오히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된 김장래 씨는 “수술 후 멀쩡했던 다리 고통이 너무 극심해 다리를 잘라달라고 했을 정도”라며 “대변과 소변을 제대로 가릴 수 없을 정도가 됐고 의사로부터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술 과정에서 미심찍은 정황이 한둘이 아니라며 “수술실에 다른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문이 있는 것 같았다”며 “카메라 없는 쪽으로 출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또 국민 80%가 원한다면 CCTV는 당연히 설치해야 하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술실 바깥 입구가 아닌 반드시 내부에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종 환단연 대표는 “지금 사례자분도 조심스럽게 얘기하는데서 알 수 있듯 증거가 없다”며 “정황상 누가 수술하는지 안 보이게 해 놓고 수술을 실시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분의 경우에는 병원에서 의료과실을 인정했지만, 만약 수술 후 부작용이 없는 다른 환자들의 경우, 무자격자가 수술했는지 알 길이 없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수를 알 수 없다. 한두 명도 아니고 만 명이 될 수도 있다. 엄청 큰 피해이고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안 대표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의혹이 제기된 해당 척추전문병원의 피해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중요한데, 현재 수사를 맡고 있는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전문성 있는 수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해당 척추전문병원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신속하게 의료기관평가인증과 전문병원 지정을 취소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하며, 의료법상 의료기관평가인증제도와 전문병원 지정제도 관련한 취소, 정지 제도에 있어서 입법적으로 미비한 점에 대한 신속한 의료법 개정을 제안했다.
박웅희 변호사는 “수술실에서 정보를 가진 사람은 의사뿐인데 인천에서 문제가 터진 후 광주에서 또 제보가 나오니 CCTV 설치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런 상태라면 CCTV 설치가 신뢰 회복에 좋지 않을까”라고 운을 뗐다. 최근 국회에서 ‘환자보호 3법’으로 불리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중대범죄 의료인 면허취소, 행정처분 의료인 이력공개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신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이번 해당 척추전문병원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사고들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만약 무자격자 대리수술 뒤 수술 부작용이나 실패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애초에 의료 계약은 상담 받은 의사와 진행한 만큼 해당 의사가 수술을 안 한 것으로 밝혀지면 계약 위반”이라며 “이 경우 의료사고를 당하지 않은 피해자도 정신적 피해로 인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수의 피해자가 발견될 경우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지 않아, 개별적으로 소송하고 전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나아가 “수술실 일은 내부 제보자 아니면 밝혀지기 어려운데다 제보를 했을 때 누가 했는지가 뻔하기 때문에 생계가 끊길 수 있다”며 “공익포상금 제도를 강화하고 공익제보 시 형사책임을 면제하거나 대폭 감경해주는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제보가 활발해지고 대리수술 등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문단으로 참여한 이원영 중앙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샤우팅하신 분이 젊고 굉장히 건강하신 분인데, 병원 집도의사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차분하게 환자에게 잘 설명하고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과했으면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맞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수술실 내 환자 안전성을 담보하고 그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 간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운영해서 그 부분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두 번째 사례로 장은정 씨가 출연해 중증건선 산정특례 제도의 형평성 문제와 재등록 시 불합리성에 대해 샤우팅 했다.
산정특례 대상이 된 후 5년이 지나면 재등록을 하는데, 기존에 치료받던 효과가 좋은 주사제를 끊은 후 상태가 나빠져야 재등록을 할 수 있어 사실상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여기고 있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성기 한국건선협회 회장은 “다른 면역질환인 크론병이나 중증아토피피부염과 달리 중증건선의 경우 신규등록 과정과 기준이 너무 엄격해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재등록할 때도 잘 듣는 치료제가 아니라 기존의 효과가 아주 적은 약제로 돌아가서 상태가 나빠져야만 재등록이 가능하다. 이는 반인권적 처사”라고 지적했다.
안기종 대표는 “두 분의 사례자는 각자의 경험과 어려움을 얘기해 주셨지만 이 두 분은 대다수 환자들을 대표해 용기를 내주신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얘기된 ‘샤우팅’이 제도와 입법 개선이라는 열매를 맺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