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 (토)
대한한의사협회 제30·31회 임시이사회(11.29~30)
2025년 12월 27일 (토)
김은혜 경희대학교 산단 연구원
(전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임상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경희대 산단 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유방암 수술을 마친 노령의 여인이 입원했다. 처음부터 1기로 진단받았기에 수술을 한 지금은 육안상으로 남은 암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미세하게 잔존해 있을 수 있는 암세포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방사선치료를 받고자 온 환자였다.
말기 암을 보다가 1기이신 분이 왔다고 해서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5년 동안 재발만 조심하면 되고 98%가 20년 이상을 산다는 통계가 있다지만, 암이라는 병을 진단받은 순간에 똑같이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사람들이고, 눈앞의 이 사람이 98%가 아닌 다른 2%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보통 ‘암 치료’라고 하면 항암 치료를 떠올리고, 그 항암 치료가 힘들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방사선치료도 마찬가지다. 방사선치료의 이론적 정의는 ‘암세포에 방사선을 조사하여 죽이는 치료’인데, 방사선이 조사되는 피부는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상된다.
처음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점점 시커멓게 변하고 군데군데 껍질이 일어나면서 벗겨지다가 턱밑, 겨드랑이, 유두처럼 외부와의 접촉이 잦은 부위부터 노란 진물이 난다.
시간이 며칠 지나면 방사선치료를 받는 손바닥 2개 크기의 큰 면적 전체에도 물집이 잡혀 진물이 나고 심해지면 찢어지기까지도 한다.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방사선치료가 예정되어 있는 여인의 입장에서 가슴에 이런 진물들이 날 것을 떠올리면, 생존 기간이 몇 년이 되든 방사선치료를 받을 앞으로의 2개월은 너무 두려울 것이 당연했다.
“잠을 못 자겠어요”
하필 피부도 너무 약한 편이었다. 몸도 하얘서 빨갛게 달아오른 부분이 한눈에 확연히 보여, 보는 사람도 따끔거리는 듯했다.
연속으로 예정되어 있던 33번의 방사선치료는 17번째에 중단되었다.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말한 환자를 위해 회진을 오신 정신과 선생님의 기록 때문이었다.
‘방사선치료로 인한 통증이 심해서 생긴 불면으로 보입니다. 진통제를 복용하세요. 방사선치료로 인한 우울감이 보입니다. 경과에 따라 중증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필요시 관련 약물을 처방합니다. 필요시 방사선 종양학과와 일정을 논의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만큼 앞으로의 치료가 남아 있건만, 피부가 이미 찢어지고 군데군데 터지기까지 한 환자에게 “재발을 막으려면 무조건 계속 받으셔야 해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환자는 피부 때문에 속상하고 통증 때문에 괴로운 것보다도 남들은 착실히 받는 치료를 혼자 중단해서 못 견디고 있다는 사실에 더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이 ‘너는 방사선치료만 잘 받다가 완치될 때까지 관리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데 저는 이 치료가 왜 이렇게 힘들죠? 저는 의지도 너무 약하고…… 그래서 유방암이나 걸렸나 봐요.” 어떤 위로도 섣불리 할 수 없는 자책의 말이었다.
“그 호두 파이, 다시 먹을 수 있을까요?”
진통제 복용을 시작했고, 방사선치료는 중단되었다. 피부염을 호전시킬 수 있는 연고도 발랐고 약간의 수면유도제도 먹었다. 하지만 자신을 깎아 먹으며 점점 심해지는 자책과 우울은 도저히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치료가 힘들어서 밥은 안 먹어도 빵은 꼭 사먹는 환자의 모습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혼자서 훌쩍이고 있다가 가지고 있던 빵을 조금씩 뜯어 먹을 때는 위안 받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환자를 찾아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 뭔지 물어봤다. 보통 빵을 물어보면 카스텔라, 크림빵 이런 종류로 말할 텐데 환자의 대답은 특이했다.
“호두 파이요.” 호두 파이에 진심인 대답이었다.
“위례에 저만 아는 호두 파이 맛집이 있거든요. 유명해지면 줄 서서 기다려야 되니까 아무한테도 안 알려주었더니 이럴 때 사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네요. 저 그 호두 파이, 다시 먹을 수 있을까요?”
고민이 되었다. 그 호두 파이가 이 여인의 자책과 우울에 도움이 될 만큼 큰 존재인지도 모르겠고, 감정이 회복된다 한들 남은 치료를 견딜 만큼 피부가 회복되고 기운이 차려질지도 알 수 없었다.
설사 사서 가져다준들 오히려 부담만 느낄 수도 있었다. 차라리 아예 멀었으면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위례가 강동구에 있는 병원에서 먼 동네도 아니어서 더 고민이 되었다.
“환자분, 방사선치료 다시 해 보시겠대요”
다음 날 내게서 그 호두 파이를 받아 든 환자는 매일 눈물을 훌쩍이던 모습과는 달리 오히려 얼음이 되어버렸다. 혹시 부담감을 느끼는 건가 싶어 곧바로 도망쳐 나왔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선생님, 80호 환자분 내일부터 방사선치료 다시 해 보시겠대요”라고 스테이션으로부터 온 콜 덕에 안도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잘해서 그 환자가 치료를 끝마쳤다고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다. 빵 하나로 해결되었을 두려움을 진작 알아채지 못한 나의 무신경함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이 정도의 따뜻함을 기대할 수 없었던 환자의 사정에 ‘이제는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압니다’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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