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일명 ‘아프면 쉴 권리’로, 국민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 꼽히는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예산은 3년 새 80%가 줄었고, 참여 의료기관은 10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정부의 부실한 사업 운영으로, 오는 ’27년 본사업 시행 목표는 사실상 ‘준비되지 않은 제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희승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22·’23년 재정사업 자율평가에서 2년 연속 ‘미흡’ 판정을 받으며 지출구조조정 대상 사업으로 지정됐다.
예산 규모도 급감했다. ’23년 204억3300만원에서 ’24년 146억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8.5% 감소했다. 특히 올해는 36억1400만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75.3%나 감액됐다.
일부 시범 지역 종료에 따른 영향이 있다고 해도, 복지부 스스로 인정한 ‘부진한 집행률’이 핵심 원인이다.
사업 집행률은 매년 목표에 크게 못 미쳤다. △’22년 35% △’23년 32.4% △’24년에도 60.7%에 그쳤고, 올해 역시 8월 기준 69.3% 수준이다.
정부는 “대상자의 행태를 고려한 예산 추계의 어려움과 지역 제한적 시행으로 인한 인지도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전문가들은 “3년째 같은 변명만 되풀이될 뿐, 구조적 진단과 보완이 전무하다”고 지적한다.
더 큰 문제는 의료기관의 낮은 참여율이다. 올해 8월 말 기준 △2단계 시범사업 지역의 의료기관 참여율은 11.2% △3단계 지역도 10.9%에 불과했다.
이는 ’22년 1단계 사업 당시 17.5%에서 오히려 후퇴한 수치다.

정부는 참여 유인을 높이기 위해 환자 1인당 연구지원금을 인상했지만, 현장에서는 “절차가 복잡하고 보상은 미비하다”며 외면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기관이 빠져나간 ‘텅 빈 시범사업’은 제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상병수당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못 하는 근로자에게 일정 기간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OECD 38개국 중 34개국이 이미 국가 단위로 시행하고 있으며, 운영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미국·이스라엘·스위스 4개국뿐이다.
이 중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유급병가 제도를, 미국은 주(州) 단위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 중이다. 결국 ‘제도 공백’은 한국만의 문제인 셈이다.
상병수당 수급자 1만3137명 중 △50대가 5286명(40.2%) △40대가 3118명(23.7%)으로, 전체의 60% 이상이 경제활동의 중추인 중장년층이다.
하지만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면 이들이 아플 때 곧장 ‘소득 단절→빈곤 전락’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박희승 의원은 “경제 선진국 대한민국이 아직도 상병수당 하나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것은 복지 후진국의 민낯”이라며 “국민이 아파도 쉬지 못해 빈곤층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오는 ’27년 본사업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양적 확대와 질적 관리 모두를 철저히 점검해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