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의 응급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CT나 MRI 판독이 지연되면 생명을 놓칠 수 있으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곳이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24시간 운영 중인 ‘취약지 응급 영상판독 지원사업’이 사실상 전문의 1명이 12시간씩 혼자 버티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약지 응급 영상판독 지원사업’은 농어촌 등 응급의료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의료기관 응급실(보건의료원 포함)에 내원한 응급환자에게 영상의학과 전문 인력이 24시간 상시 판독을 지원함으로써 응급의료의 질적 수준 격차를 줄이고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이 사업은 취약지 병원 응급실에서 의뢰된 영상판독 요청에 대해 60분 이내에 판독을 완료하고 결과를 회신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야간 각각 12시간씩 1인 당직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취약지 37개 의료기관에서 의뢰된 응급 영상판독 건수는 1만3375건으로, ’23년보다 22.1%(2,423건) 증가했다.

문제는 이 모든 판독을 한 명의 당직 전문의가 12시간씩 전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일 주간에는 1인당 평균 11.9건을 처리했으나 휴일·야간에는 3배 넘는 37.1건을 홀로 소화해야 했다.
생명과 직결된 응급 상황에서 판독 지연은 곧 환자의 예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중대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당직 전문의의 인건비는 최근 3년간(’23년~’25년) 연 4억3800만원으로 동결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평일·주말·야간 구분 없이 동일한 수당이 지급된다는 점이다. 법정기준에 따라 야간·휴일 근무에 1.5배 가산이 적용돼야 하지만 현실은 ‘정액제’다.
열악한 보상과 과중한 근무 부담으로 인해 휴일·야간 당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립중앙의료원에 용역을 제공하는 판독업체조차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최근 6년간(’20년~’25년) 영상판독 업체를 공모한 결과, 신청해 계약을 체결한 기관은 단 1곳뿐이었다. 낮은 단가와 불합리한 근무조건 탓에 관심을 보이는 기관이 거의 없었으며, 현재 사업을 수행 중인 업체조차 자체 전문의 풀을 꾸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인건비는 또다시 동결됐다.
응급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지원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업 주목도가 낮다’는 이유로 예산 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게 국회의 지적이다.
지난해 응급 영상판독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의 61.2%가 60대 이상, 그중 80세 이상이 24.7%에 달했다.
노년층 환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사업이 위축되면 의료취약지 고령환자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병훈 의원은 “의료취약지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사업임에도 예산 동결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며 “정부는 야간·휴일 수당을 근로기준법에 맞게 1.5배로 현실화하고, 당직 인력을 확충해 안전한 판독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