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의 현대화 작업은 ‘진단학’을 통해서 시작돼야 한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대한한의진단학회의 김태희 회장의 말이다. 김 회장은 상지대한의대 학장 및 한방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푸른하늘흰구름한의원(서울 강남구)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대한한의진단학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재추대됐다.
시대 흐름에 따라 모든 영역들이 과학화되고 있지만, 한의학의 현대화 작업은 더딘 것이 사실. 여기엔 한의사의 현대화된 의료기기 사용은 물론 한방 전문의약품 제조에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국내 의료환경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안없는 고민은 무력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에대해 김태희 회장은 “이제는 더 이상 고민단계에 머무르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가 내민 비장의 카드는 ‘진단학의 임상과목화’였다.
“환자가 존재하지 않는 진단학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진단학을 임상과목으로 전환시키고 전문의제도를 만들어 많은 인력을 모집해야 합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학문에 무슨 전문의냐고 말할 사람은 이제는 없을 것입니다.”
반면 혹자는 한의사라면 누구나 다 진단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진단학과 임상학을 중복학문으로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진단학에서 연구된 어떤 일부의 연구결과로 특정한 과목에 대한 진단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임상과목”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병리학’과 ‘진단학’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병리학이 병의 진행과정에 대한 설명이라면 진단학은 주관적·객관적 증상에 의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 판단하는 학문”이라고 구별했다.
그는 ‘진단학’의 발전은 환자의 지속적인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에게는 시대에 맞는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 즉, 어떤 원인으로 아프고 얼마간의 치료과정이 필요하며, 나는(담당 원장은)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를 확실히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의학이 현대화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진단학’의 가치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정당성 변론에서 빛을 발한다. “몸에 관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시대마다 다르죠.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내부변화를 알기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의성 ‘허준’도 당시에 CT가 있었다면 당연히 사용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와관련 최근 한·양방 동시면허자 8명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CT포함)사용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진단학’의 적극적인 참여를 시사한다.
이들 8인은 “현대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의견을 드릴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김 회장은 “한·양방 동시면허자의 단점은 두 학문 모두 깊이 통찰하지 못하는 점에 있다”며 “이는 사고체계가 다른 학문의 특성을 간과한 처사”라고 밝혔다. 또 그는 “22년간 진단학을 공부했지만 아직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왜 그런 식의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해묵은 한·양방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김 회장은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정당성을 입증해내려면 관련과목을 한의학 교과커리큘럼으로 배정한 후에 임상데이터를 축적하고 학문적인 논문을 내야한다고 제시했다.
김 회장은 끝으로 “새로운 임기동안 ‘진단학’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이에따른 한의사들의 공감대 확대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