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의료계·시민단체 등 개정 의료법 문제 지적
지난 12일 ‘의료서비스 산업화, 과연 한국 의료의 대안인가?’를 주제로 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의료연대회의가 주최한 정책토론회는 의료법 전면 개정안의 새로운 논의의 장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주제 발표를 한 이원영 중앙의대 교수와 보건의료노동조합 이주호 정책기획실장은 각각 의료법을 새롭게 논의하기 위한 ‘국민건강권 실현을 위한 의료법 개정 특위’와 ‘국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의료법 전면 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전자는 국회 주도의 특위를 제안했고, 후자는 범국민 주체의 의료법 개정 논의체를 제안한 것이다. 각각 주체의 특성이 다를 수는 있지만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다. 현재 정부 주도의 의료법안 대신 새롭게 의료법 개정을 논의할 주도적인 모임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날 발제를 맡은 중앙의대 이원영 교수는 “참여정부의 의료서비스 산업화 정책은 국민의 뜻에 역행하고 있을 뿐더러 이미 정책 신뢰도를 잃었다”며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될 경우 국민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반민생법안으로 낙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토론자로 나선 한의협 박용신 기획이사도 정부의 의료법 전면 개정안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박 이사는 “의료법의 본래 취지는 한의사, 의사 등 각 의료직능의 분명한 역할 설정을 통한 각각의 전문적 의료를 통해 국민 건강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현 의료법 개정안은 너무도 의료의 산업화와 상업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의료의 공적 기능을 부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박 이사는 첩약과 한방재활의학 등 한방의료 대부분이 비급여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과 관련, 한방건강보험의 확대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개정 의료법의 독소 조항들에 대한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또 치협 전민용 치무이사는 “의료기관 명칭표시 자율화는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특정진료방법(임프란트 등) 등의 명칭 사용으로 인해 혼란과 왜곡된 정보 제공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명칭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전 이사는 “의료 기대수준이 급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민건강 질(質) 향상을 위한 과제는 뒤로 하고 자본영리만 추구하는 정부 의료법은 의료산업화, 의료시장 개방, 영리법인 도입,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위한 사전포석이 될 것이 자명하다”고 전망했다.
시민단체 대표로 토론에 나선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기획실장은 “미래 성장동력인 의료산업이 미국식 의료체계로 재편되면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수익구조가 생성될 것”이라며 “의료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공동 정책 협의체를 만들어 머리를 맞대고 국민 건강을 위한 새로운 의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료기관의 영리행위 조장이라는 독소조항 삽입과 병원간 인수합병 허용으로 인한 병원의 일반기업화 등이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며, 이는 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기는 커녕 하나같이 병원들의 돈벌이를 부추기는 내용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의료서비스는 공공재 성격과 상업성이 조화를 이루고, 시장원리에 따라 공급돼야 한다”며 “병원 내 의원 개설은 고가장비 및 시설 등의 공동이용으로 인해 투자비와 진료비가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 곽명섭 사무관은 “의료의 성장과 국민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변화된 국민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낡은 의료법을 전면 개정했으며, 5개월 동안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법률안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곽 사무관은 “개정안 통과 후 하위법령을 구체화하는데 있어서 각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방청객과 각계 토론자는 성익제 병협 사무총장과 곽명섭 복지부 사무관의 발언에 지속되는 반론 제기를 통해 의료법 개정안의 잘못된 점을 집중 부각시키는 한편 새로운 의료법 개정을 위한 논의 구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의료법 개정안을 새롭게 논의하기 위한 ‘범국민 의료법 개정 추진위(가칭)’가 가동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