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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6일 (화)

‘1953. 5. 29’ 서울시한의사회 첫 역사

‘1953. 5. 29’ 서울시한의사회 첫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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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부흥’ 정책 지부로써 역할 요구



1953년 5월29일 오후 2시. 서울 거주 회원 50명이 종로구 낙원동 90번지 普春韓醫院에 모였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기록됐다. 서울시한의사회의 창립총회가 개최된 것이다. 창립 발기인은 56명이었다.



보춘한의원 김영훈 원장(한의협 명예회장·서울시회 설립위원회 위원장)의 사회 아래 진행된 창립총회에서는 한의협 제3·4대 회장인 박성수 원장(修養韓醫院)이 초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책정된 월 회비는 100환이었다.



특히 1953년 10월2일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했던 대한한의사회가 서울로 이전하며, 조직체계가 갖춰지지 못했던 중앙회 사무를 서울시회가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중앙회의 역할을 서울시한의사회가 상당기간 수행했음을 말해 준다.



한의계의 역사가 투쟁의 역사이듯 서울시회의 역사도 투쟁과 맥을 같이한다. 서울시회의 첫 투쟁 대상은 ‘衣類’ 확보였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폐해 있던 국내 의료인에게 미국의사협회서 ‘의류’를 지원했는데 이것이 유독 한의사만 빼고 나머지 의료인들에게만 지급됐다. 이같은 정부 행태에 격분, 당시 보건부장관에게 엄중 항의하며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1962년 이르러 814명 회원 증가



이는 그만큼 당시의 생활상이 먹고, 입고, 사는 것이 중차대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서울시회 회원들의 자각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자체의 실력을 키우자’, ‘우리끼리라도 단결하자’, ‘한의학 전통성을 적극 홍보하자’는 새로운 인식을 불어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조직을 갖춰 나간 서울시회는 1955년 4월1일 기관지인 ‘東洋醫藥’ 창간호를 발간, 여론을 모아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東洋醫藥’은 2년 뒤인 1957년 통권 제16호로 판매 부진과 대금 회수 문제로 종간되고 말았다.



그후 1962년에 ‘새소식’이란 제호로 회보의 맥을 이었다. 그러나 ‘새소식’도 얼마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1979년 2월28일 ‘서울시한의사회보’를 창간했으나 이 역시 1년을 못 넘긴 채 같은 해 10월26일 제5호를 끝으로 사라졌다.



1962년 3월20일 의료법 개정에 따라 의료단체는 중앙에 단일법인만 두게 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회는 자동적으로 대한한의사협회 서울지부가 돼 4월29일 제9회 정기총회를 통해 실질적인 서울시회의 면모를 갖춰가기에 이른다. 중앙회와 서울지부의 제자리 찾기 과정에서 예산상의 문제로 상당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56명의 발기인으로 출발한 서울시회는 1962년에 이르러 814명의 회원으로 늘어났다. 현재는 회원 3742명, 2908개 한의원, 28개 한방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방의료 정책백서’ 발간 큰 의미



특히 1981년 발간을 준비해 1985년 5월15일 완성된 ‘임상경험방집’이나 1990년과 1992년에 발간된 ‘한방의료 정책백서’ 1·2집은 서울시회 회원들의 학술 활동 장려와 미래 한의학 발전의 방향을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7년 6월부터 1978년 2월까지는 ‘서울시회 마을금고’도 설립, 운영한 바 있으나 회원 복지 증진에는 제대로 기여를 하지 못했다. 또 서울지부가 자체 회관을 마련한 것은 1970년 11월10일이다. 동대문구 회기동 105-9번지 대지 59평짜리 구건물(20평)을 450만원에 매입했다. 이후 여러 차례 이전을 하는 가운데 1978년 9월25일 동대문구 제기2동 929-3번지에 중앙회와 함께 회관을 매입, 현재의 사무소인 동대문구 용두동 26-14번지로 이전(2004.11.30)하기까지 26년동안 제기동 회관에서 역사를 써 나갔다.



창립 55주년은 새로운 전환점



지금까지 서울시회는 지부의 회세를 차근차근 키워 오는 한편 한의학 발전의 중심 역할을 하기에 주력했다. 부정의료 행위 단속, 회관건립기금 모금, 학술활동 장려, 침사법안 및 안마사 침 사용 저지, 의료일원화 반대, 한방의료보험 추진, 군진 한의학 촉구, 한약분쟁에서의 한의학 수호 투쟁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활동은 전국 시도지부와는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이뤄졌고, 중앙회와는 갈등과 견제, 신뢰와 협력 아래 한의학 육성이라는 동일한 목표점을 향해 반세기를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는 전국 최대 지부에 걸맞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정책 지부로서의 확고한 자리매김에 대한 주문이다. 그렇기에 창립 55주년은 곧 새로운 전환점이 될 필요가 있다. 한의학 중흥의 각오를 다지는 자리가 돼야 한다. 1953년 5월29일. 그날 선배 한의사들이 그렸던 이상향(理想鄕)은 ‘한의학 부흥’이다.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서울시회가 제대로된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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