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필자는 지난 1월 대한한의학회 미래인재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그 일환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개최된 ‘제74회 전일본침구의학회학술총회’에 대한한의학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됐다.
‘제74회 전일본침구의학회학술총회’는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ISAK(International Symposium on Acupuncture Korea)’에서의 학술 교류를 바탕으로 한국·일본·대만 세 나라가 함께 나고야에서 개최한 공동 심포지엄이었다. 20년 넘게 지속된 한국의 대한침구의학회와 일본침구학회의 협력에 더해, 올해는 대만도 정식으로 참여하면서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
한의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서로 다른 나라의 침구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식과 임상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매우 소중한 배움의 자리가 됐다. 연구자들의 열띤 발표, 질문과 토론 속에는 교과서 너머의 실제 임상 현장과 연구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 안에는 전통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과 통찰이 담겨 있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오래도록 남을 뜻깊은 배움의 시간이었다.

전통의학, 현재 여성의 삶에 어떻게 기여할까?
학술총회의 첫번째 세션 주제는 ‘Acupuncture and Moxibustion Contributing to Women's Well-being through FemTech’로, 여성 건강을 주제로 한 발표들이었다. 각국에서 침과 뜸을 활용해 여성 질환에 어떻게 접근하고 치료하는지를 임상 경험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소개한 다양한 발표들을 들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전통의학이 현재 여성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첫 번째 세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는 월경통에 대한 침 치료 연구였다. 발표자는 SP6(삼음교)에 피내침을 일정 기간 부착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진행했고, 그 결과 약 48%의 환자에게서 통증이 완화되었으며, 진통제 사용량과 통증 등급 또한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간단한 방법으로도 통증이 뚜렷하게 줄어든 점이 특히 인상 깊었고, 실제 임상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다만 질의응답 과정에서 연구 설계가 double-blinded가 아니었다는 점이 언급됐는데, 향후 연구에서 이러한 부분이 보완된다면 보다 신뢰도 높은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침 치료와 시험관아기(IVF) 시술을 병행한 사례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이전에 인공수정을 반복해서 실패한 여성 환자가 침 치료를 병행하면서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정이 향상되어 결과적으로 IVF 시술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였다. 발표자는 침 치료 메커니즘에 대해 침 치료가 배아이식 전에는 자궁을 이완시키고 자궁내막의 수용성을 높이며, 이식 후에는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혈류를 개선해 착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침 치료가 단순히 통증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연구들이 더욱 발전해 실제 임상에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더 궁금해졌다.

침구에 맞는 EMR의 필요성 강조 ‘인상 깊어’
두 번째 세션에서는 ‘침구의학의 전산화와 EMR 표준화’를 주제로 한 발표들이 이어졌다. 한 발표자는 최근 의료 현장에서 ICT, AI와 같은 첨단 기술들의 발전이 진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 맞춤형 의료 구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전통의학 분야는 디지털화의 속도가 다소 더디다는 점을 언급하며, 여러 기관들이 각기 다른 형식의 EMR을 사용하고 있어 병원 간의 정보 공유가 어렵고, 전국적인 데이터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침구 분야에 적합한 표준화된 EMR을 설계하고, 전국적인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점이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발표자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전통의학의 철학과 임상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침구에 맞는 EMR’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 과정에 연구자와 임상의는 물론 학생들까지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통의학이 현대 의료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라는 변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그 출발점은 현장의 데이터를 정확히 기록하고 이를 표준화된 정보로 정리해 나가는 데 있다는 점에 깊이 공감됐다.

전통의학, 국경을 넘어 하나의 언어로 연결될 수 있어
이번 심포지엄은 단지 지식을 얻는 자리를 넘어, 전통의학이 어떻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한의학과 학생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고 성장해야 할지를 돌아보게 해준 귀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각국의 연구자들과 나눈 짧지만 깊은 교류를 통해, 전통의학이 국경을 넘어 하나의 언어로 연결될 수 있음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언어와 문화는 조금씩 다르지만,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 간 정책의 차이와 임상 환경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침구라는 전통의학의 공통 기반 위에서 각국이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과정은 참 뜻깊었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자리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침구의학의 가능성과 역할이 더욱 확장되고, 한의학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이번 학회를 통해 전통의학이 세계 속에서 지닌 독창성과 잠재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한의학적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욱 자랑스러웠다. 뜻깊은 자리에 참석할 수 있도록 귀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대한한의학회 관계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