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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좋은 한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좋은 한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①

각 한의과대학들은 커리큘럼을 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이행하려 노력 중

한상윤.jpg

 

한상윤 대전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 한의신문에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라는 타이틀로 글을 연재했다. 정확히는 한의학 박사과정 중이던 2018년부터 박사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 교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던 2020년까지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때때로 매우 부담스런 작업이 되기도 하였으나, 직접적으로는 개인적 생활의 변동으로 인해 바쁘다는 현실적 이유로 연재를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몇몇 경험과 계기로 인해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학생으로 바라보았던 한의학 교육에 대한 관점과 비교하여 한의과대학 교원으로 근무하며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오히려 교육에 대한 초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고 싶었다. 

 

일정 시간을 주기로 찾아오는 정기적인 부담감 속으로 다시 나를 끌고 들어가기가 두렵긴 하였지만 글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보고 다시 연재를 시작할 결심을 했다.     


역량 중심 교육이라는 용어 흔히 사용


지난 연재 시기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한의학 교육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큰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한의학 교육에 대한 글을 쓸 때만 해도 한의학 교육에 대해서 한의계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각 한의과대학에 한의학교육실이라는 기구가 설치되었고, 역량 중심 교육이라는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각종 의료 기기의 사용에 대한 판례들이 나오면서 의료 기기 교육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많아졌으며,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감염병에 대한 교육이 강화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현재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나 한의대 정원 감축 건 등의 주제는 한의학 교육을 둘러싼 많은 논쟁거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의계에서는 아직도 한의학 교육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너무 많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한의대에 가면 사주나 풍수를 배우는 거 아니냐며 묻는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우리 한의계, 예컨대 로컬에서 활동하는 한의사들과 한의대 교수,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가 교육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관심은 무지함으로 이어지게 되며 교육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발견할 때가 많다. 

 

한의학교육학회를 창립하여 1년 넘게 학술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보람찬 순간은 아직 많지 않아 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길을 낸다는 심정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묵묵히 다짐하고 하나씩 실천하는 것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한상윤 교수님2.jpg

 

의사에게 요구되는 역량 다섯 가지


의학교육학이 의과대학에 그리고 의학계에 뿌리내릴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고스란히 합쳐져 현재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의학교육학은 의학과 교육학의 하이브리드형 학문으로, 어떤 학생을 선발하여 어떻게 교육하여 어떤 역량을 갖춘 의료인을 양성하여 배출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대 의학교육학 교실을 만든 장본인으로 교실의 주임교수를 역임한 故신좌섭 교수는 ‘좋은 의사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라는 강의에서 의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다섯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첫 번째로는 해부학, 생리학, 유전학 등 의학 기초에 관한 과학적 역량이다. 이 역량은 인체와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추론 능력을 함양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둘째로는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 재활을 다루는 진료 역량이다. 질병을 잘 고치는 실력 있는 의사가 갖추어야 할 역량이 될 것이다. 

 

셋째로는 환자의 입장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문학적, 인간적 역량이다. 역지사지하며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역량이라 할 수 있다. 넷째는 환자를 우선시하고 윤리원칙을 준수하며 품위와 덕성을 유지하는 전문직 역량이다. 이 역량은 흔히 말하는 전문 직업성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헬스시스템과학 역량인데, 사회, 경제, 정치, 제도, 환경, 테크놀로지 등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와 제도, 환경, 테크놀로지를 혁신할 수 있는 통합적 역량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역량들을 ‘小醫治病, 中醫治人, 大醫治國’에 빗대어 과학적 역량과 진료 역량은 小醫에, 인문학적 역량과 전문직 역량은 中醫에, 헬스시스템과학 역량은 大醫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의학은 이제 사람을 고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고치는 大醫를 지향하는 학문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의과대학에서는 이러한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강의, 실험실습, 그룹 토론, 문제 중심 학습,  사례 학습, 시뮬레이션, 실제 환자 체험 등 다양한 교육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의학이란 학문은 복잡성, 불확실성, 애매 모호성, 예측 불가능성, 역설 등을 특징으로 하는 불완전한 과학이기 때문에 교과서로만 학습할 수 없고 다양한 실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반복적 경험을 통해 실천적 지혜를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학 역시 의학과 다르지 않다. 과거 의과대학에서 했던 것처럼 현재 각 한의과대학들은 커리큘럼을 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이행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 평가 기준에 맞추어 학교마다 사명과 졸업역량을 설정하고, 6년의 재학 기간을 각 시기로 나누어 시기성과를 만들고, 시기 안의 교과마다 과정 성과를 정하는 등 의과대학의 의학교육에 발맞춰 한의학 교육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신좌섭 교수님.jpg
학생 참여형 교육으로 의학교육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신좌섭 교수님


경험 학습과 실제적 학습을 지향


또한 과거의 일방적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다양한 교수법과 평가법으로 진일보한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경험 학습과 실제적 학습을 지향하며 앞으로도 교육에 있어서 많은 변화와 개선이 이어질 것이다. 

 

다만 그 변화와 개선의 과정에서 외부의 기준에 부합하려다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잃어버린다거나 성적순으로 그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만 하면 좋은 것이라거나 시험 성적이 낮아 유급을 당한다면 공부 안 한 학생의 탓으로만 돌리는 문화 등은 우선적으로 반성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무조건적인 암기를 강조하여 빈 칸에 답안을 잘 채워 넣는 것이 의료인의 자질로 여겨지는 분위기와 진급만을 목표로 한 공부 끝에 면허를 취득한 이후에도 여전히 환자 앞에서 아무것도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 빈약한 자신감의 한의사를 배출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학과, 교수, 학생 등 교육 주체들이 자성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 진로를 한의학교육학으로 잡고 결심한 이후 지금껏 한 길을 걸어오며 힘들고 고단한 일이나 자랑스럽고 보람찬 일이 많았는데,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훨씬 더 큰 고단함과 희열이 찾아올 것이라 예상한다. 3주 전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격려해 주셨던, 평생을 의학 교육에 헌신하며 고단한 삶을 사셨던 故신좌섭 교수님을 기억하며 다가올 미래를 담담하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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