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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

“에베레스트의 바람과 구름은 거친 품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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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로 떠난다. 욕실에서 반백의 머리에 검은 붓질을 한다. 쓰윽 쓰윽, 염색약으로 번들거리는 머리가 점점 이상해지지만 피식 웃고 만다. 마법처럼 좀 젊어질 테니 잠깐 달라붙은 흉한 머릿결은 감수해야 한다. 아내는 한마디 거든다. “히말라야 가는데 왠 염색?” 답변 대신 피식 웃는다. 

 

* 3대 트레킹 코스

 

Trekking은 만년설을 멀리 보면서 6,000m 이하 산길을 걷는 산행이다. 그 이상은 전문 산악인들이 정상을 향해 원정대 꾸려 생명의 존재와 위협을 동시에 느끼는 벅찬 여정으로 Climbing이라 할 수 있다.

 

제일 풍경 좋고 어려운 코스는 단연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등이 우뚝 솟은 쿰부 지역이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 타고 루클라까지 들어가 산행을 시작한다. 남체 마을을 지나 속으로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의 지붕, 명산, 고산, 최고봉 히말라야 트레킹은 설렘이다. 그 산길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한 산악인들도 다니던 길이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세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을 성공한 산길 역시 그 루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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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커들은 전망대인 칼라파타르(5545m)를 오른다. 8,000m급 산을 가까이 볼 수 있고 7,000m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태초 만년설의 세월 앞은 경외스럽다. 자연의 최고봉은 신비를 간직한다. 에베레스트의 바람과 구름은 거친 품격이 있다. 트레커들은 압도되는 풍경에 눈물 흘린다. 걸어온 힘든 길이 기억나는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앞으로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 방문객들의 눈시울이 붉다.

 

고산증으로 트레커들 반의 반도 오르지 못하는 최상급 코스이니 만만치 않아 더욱 매력적이다. 정상 도전은 로부체(4630m) 롯지에서 출발하여 칼라파타르에 올라 고산증으로 바로 하산해야 하는 총 17시간의 일정이다. 산소는 해수면의 1/2이니 걷기 힘들지만 눈과 가슴은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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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일주 역시 상급자 코스로 토롱라 패스(5415m)는 트레커들을 괴롭힌다. 산소가 부족해 비디오는 1/4배속으로 영상 처리 된다. 걸음은 무겁고 머리는 비지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가까이 볼 수 있으니 호사이다. 하얀 설산은 산객에게 순수를 전한다. 일주를 마치면 봉쇄수도원에서 기도한 사제처럼, 선방에서 안거를 마친 선승처럼 나름 의젓해진다.

 

카트만두에서 8시간 거리 사부르베시에서 출발하는 랑탕밸리 코스는 캉진콤파(3870m) 롯지에 짐을 풀고 전망 좋은 강진리(4773m)와 체르코리(4984m)를 오른다. 산행길이 협곡이 아닌 넓은 평야라 넉넉하고 봄의 야생화는 신비롭다. 고산증이 적은 편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1년전 이 코스를 산행했는데 동행한 친구는 강진리 오르다 고소증이 심해 바로 하산했다. 어지러우면서 쓰러지고 요실금이 나타났다. 할 수 없이 포터들이 부축하여 하산하였는데 친구를 잃을 뻔 했다.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으로 1년에 몇 십 명 죽는다는 보고는 꼭 참고해야 한다.

 

랑탕밸리 옆 코스인 힌두교의 성지 고사인쿤드(4100m) 역시 장관이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산군을 보면 숙연해진다. 히말라야 속에 묻힌 기분이다. 고산증 적은 코스는 단연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 4130m)와 푼힐전망대(3210m)로 한국인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 가까이에서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 다울라기리를 볼 수 있는 초중급자 코스이다.

 

* 체력

 

히말라야를 가고 싶은데 우선 겁난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접근하면 귀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평소 친구들이랑 북한산 다녀와 막걸리 자주 마셨다면 일단 시도해 보자. 지리산 1, 2박 종주 산행하고 다리가 아프지 않고 몸살 나지 않고 입술 부르트지 않으면 일단 자신감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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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에는 낮은 코스를 경험해 보고 슬슬 고도를 올리고 싶지만 그럴 필요 없다. 맞을 매 먼저 맞자. 상급자 코스를 먼저 도전해 본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체력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체력과 열정은 나이 들면 약해지고 식는다. 좀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자. 매년 갈 수 없으니 미루지 말고 당당히 실천하자. 우선 초급자 코스 경험하고 나이들어 상급 코스 도전하려면 거의 불가능하다. 상급자 코스를 다녀오면 자연히 중급자와 그 이하 코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시간, 체력, 경비, 동반자 등등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서두르지 말고, 하지만 미루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들도 어린이들도 그들의 체력에 맞게 트레킹한다. 7, 8,000m 오르는 것이 아니고, 그 산을 멀리서 즐기는 트레킹이니 고행과 축복이 같이 한다.

 

* 골드 마운틴

 

이번 트레킹은 랑탕헬람부이다. 랑탕밸리의 반대쪽 코스로 좀 한적하다. 겨울이고 일정(10일)이 짧아 한 구획만 다녀왔다. 일정은 서울에서 네팔 수도 카트만두 까지 왕복 2일이 소비되고, 카트만두에서 산행 시작점 까지 1일, 산행 종착지에서 카트만두 까지 또 1일이니 4일은 산행과 관계없이 필요 일정이다. 그리고 트레킹은 코스에 따라 10일 이상 걸어야 한다. 그래서 기본 일정 최소 14일 걸린다.

 

필자는 겨울 히말라야도 처음이지만 이번 트레킹은 계획이 있어 혼자 떠났다. 가이드(일당 25불) 포터(일당 20불)와 같이 트레킹을 시작한다. 몇 차례 트레킹한 경험이 있어 단골 전문 현지 여행사를 통해 산행 안내인과 짐꾼을 구했다. 그 현지 여행사에게 기본적인 수수료를 지불하지만 안정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단골이니 믿을 수 있고 과한 경비가 지출되지 않는다.

 

트레킹 시작 2~3일 지나면 서서히 히말라야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히말라야를 찾은 것을 실감한다. 신비, 경외, 환희, 감사, 압권, 품격있는 언어들이 떠오르고 가슴이 설렌다.

 

3일 째 쿠둔상(2470m)에서 아침 야채 스프를 먹고 등산화 끈을 맨다.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진다. 더 깊이 가면 히말라야는 더욱 가까이 나타난다. 아침 8시 서서히 산길을 나선다. 평소 주민과 트레커들이 다닌 산길이 호젓하다. 어쩌면 수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길인지 모른다. 걷는다. 무거운 짐은 포터에게 맡기고 필요한 생수 수건 겉옷 카메라 선글라스 등만 챙기고 걷는다. 한국말이 서툰 가이드라 서로 말을 아껴 좋다. 말 없음은 그만큼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왔으니 이제 자연 히말라야를 느끼면 된다. 고개를 넘고 또 넘는다. 끝날 것 같은 고개는 수없이 이어진다. 지리산 종주 산행에서 만나는 토끼봉 제석봉은 그저 맛보기이다. 헉헉거리는 산길을 오르다 보면 시야가 훤해진다. 저 멀리 하얀 산군들이 눈과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되새긴 육두문자가 사라진다. 와! 감탄사와 함께 사진 셔터가 터진다. 가까이 만년설을 즐긴다. 하늘은 맑고 높다. 그 아래 설산은 말없는 고승처럼 의연하다. 태초의 말씀이 울려 퍼지고 경이로운 자연에 숨이 멎는다. 흥분은 가라앉고 차츰 엄숙이 찾아온다. 거친 산맥이 펼쳐지고 힘 있는 능선이 아름답다.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잠시 그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험한 고개와 멋진 풍광을 몇 개 지나 오후 5시에 도착한 곳은 타레파티(Tharepati. 3760m), 서둘러 전망대 (4100m)에 올라 가까이 히말라야를 본다. 짐은 롯지에 맡기고 가이드랑 둘이 오른 전망대의 설산은 이번 트레킹의 압권이다. 

 

히말라야는 많이 오른 만큼 가까이 넓게 보여 준다.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이 설산에 걸친다. 서산으로 기우는 붉은 일몰이 반대편 고산에 비춘다. 하얀 설산이 갑자기 황금색으로 변한다. 탄성은 환호이다. 히말라야는 일출 보다 일몰이 더 장관이다. 일몰의 Gold Mountain만 보아도 트레킹한 보람이 있다. 신비롭다. 며칠간의 고행, 그리고 당일 오르막 9시간 거친 산행, 모두 이곳을 위한 여정이었다. 서둘러 전망대에서 내려가야 한다. 히말라야는 해가 지면 갑자기 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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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로 돌아와 가이드가 건네준 온수 한 바가지로 건식 세수를 하고, 한 컵으로 양치를 한다. 그리고 주문한 모모(만두)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하지만 몸과 식욕이 지쳐 반의 반도 못 먹는다. 가이드는 트레킹 시작할 때 작은 마을에서 산 사과를 깎아 준다. 같이 먹자는 제안에 씨익 웃고 만다.

 

가이드와 포터의 체력을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에게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는 동네 앞산이다. 등산화 대신 슬리퍼 신고 20kg 이상 짐을 메고 동행한다. 짐을 어깨에 메지 않고 앞이마에 의지하여 경추가 모두 망가질 것이다. 정상 코스보다 지름길까지 훤하다. 하지만 고난의 방문객 얼굴은 검고 볼 살은 홀쭉하다. 얼굴에 자외선 차단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지만 검게 타는 것이 아니라 검게 익는다.

 

롯지는 우리들의 산장 대피소 격이다. 대개 2인용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합판으로 벽을 세우고 그 안에 나무 침대가 있는 작은 숙소이다. 밖은 진한 어둠이고 그 날 타레파티 기온은 영하 12도(5,000m급 롯지의 밤은 영하 20도). 낮에 흘린 땀이 식어 몸은 더 춥고 끈적인다. 따뜻한 샤워가 간절하다. 도심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주막의 온기가 그립다. 퇴근하고 따뜻한 저녁 식사와 거실의 텔레비전이 떠오른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움추린다.

 

준비한 책은 손이 시려 책장을 넘길 수 없고 지친 몸은 모두를 거부한다. 스마트폰에 준비한 음악을 듣는다. 에디트 피아프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가 차가운 롯지에 흐른다. 좋아했던 절규가 왜 이리 처량한지 모른다. 홀로 추운 롯지에서 상념에 젖는다. 두고 온 가족이 떠오르고, 질병과 환자와 벌이는 닫힌 공간에 몸서리치고, 삶의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외롭고 그립다. 극한 시간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착한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어젯밤 마시고 남은 생수가 꽁꽁 얼었다, 먼동이 트기 전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서둘러 롯지 마당에 선다. 다운파커와 털모자를 눌러 쓰고 손은 패딩에 넣어 추위를 피한다. 저 멀리 검은 암릉 위로 붉은 여명이 서서히 떠오른다. 묵직한 히말라야는 아직 말이 없다. 그저 조금씩 아침을 열고 있다. 차츰 설산을 드러낸다. 

 

그리고 잠시 힘찬 일출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눈이 부시다. 히말라야와 또 하루를 시작한다. 추위와 고독 속에서 지낸 밤이지만 몸이 가벼운 것은 당신 때문인지 모른다.

더 고도를 높여 고사인쿤드로 가고 싶지만 중간 하룻밤 지내야 하는 페디 롯지는 겨울이라 폐쇄되어 오를 수 없다. 그 위 레우나야크 패스(4900m)는 1년 전에 다녀와 다른 산맥으로 서서히 하산하기로 했다. 어쩌면 입산한 승려가 환속의 여정에 든 셈이다.

 

* 나마스테

 

당신의 신을 존중합니다. 무한 겸손이다. 네팔 사람들은 그런 신앙을 생활화하며 사는 것 같다. 포터는 트레커가 준 초콜릿을 산행 중에 만난 꼬마들에게 건넨다. 그에게 귀한 것 일텐데 나눔을 실천한다. 롯지 주인아주머니는 힘든 포터에게 쌀밥 달바트를 무한 리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공동체 같은 느낌이다.

 

3,4000m 고산 마을 작은 학교 코흘리개 꼬마들도 트레커를 만나면 인사한다. 나마스테. 어쩌면 서울은커녕 카트만두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그 산자락에서 평생을 보낼지 모를 그 꼬마들은 두 손 모아 인사한다.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교육이고 신앙이고 삶의 터전이다. 분노 욕심 어리석음을 버리는 인간 교육은 자연이 내려준다.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항상 평화롭다. 천진난만한 얼굴이 저 히말라야 하늘처럼 맑고 밝다. 여행자는 그 코흘리개 꼬마를 통해 묵언 수행한다.

 

트레킹하면서 만나는 설산 이외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산허리 그 좁은 땅에 만든 다락논은 방문객의 발길을 잡는다. 산을 개간하여 층층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겨우 1~3m의 폭에 벼를 심고 감자를 키우고 옥수수를 재배한다. 한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천수답 척박한 땅의 옹색함이다. 다락논으로 GNP GDP 통계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여행자에게는 색다른 풍경이지만 그들에게는 고단한 터전이다. 누가 네팔을 축복의 땅이라했던가? 히말라야는 1번만 온 사람은 없단다. 1번 오면 착한 마약처럼 자주 찾게 된다는 히말라야. 그저 미소로 답한다. 히말라야를 설산 고산 골산으로만 보면 옹색하다. 신앙과 철학의 공간으로 접근하면 더욱 그 깊이가 있다. 트레커들은 그런 의미로 히말라야를 찾아 지혜와 겸손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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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하얀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바람에 펄럭이는 타르초에 편지를 쓴다. 터벅터벅 올라온 자신은 대견하여 누군가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은 히말라야의 교훈이다. 그동안 물질과 풍요에서 소유했던 것을 버리고 비우는 여행이다. 어느 스님의 ‘무소유’ 여정인 셈이다. 잠시 선승이 된다. 산길을 걷다 주민과 꼬마를 만나면 두 손 모아 ‘나마스테’ 인사를 나눈다. 히말라야에서는 모두 네팔 사람이 된다. 

 

* 바람은 말씀을 나른다

 

 

사실 하산은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지만 그렇지 않다. 목표한 정상을 무사히 오른 성취감 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 다시 올 수 없는 아쉬움으로 오히려 하산 길은 무겁다. 하산은 설산들이 자꾸 눈과 마음에서 멀어진다. 등산은 설렘 두려움, 하산은 아쉬움 허전함이 동반한다.

 

가파른 눈길을 아이젠에 의지하여 하산한다. 내린 눈이 반쯤 얼음으로 변해 쉽지 않다. 히말라야에서 부상당하면 대책이 없다. 발목이라도 삐면 산은 더욱 험해진다. 특히 엉덩방아 압박골절이라도 생기면 더욱 난감하다. 어느 트레커는 슬관절 인대 파열로 네팔 헬기 구조 요청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하지 않았다. 미화 5천불이면 650만원이다.

 

조심 조심 고도 1,000m 를 낮추어 4시간 만에 도착한 마을은 멜람치강(2600m). 듬성 듬성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은 족히 100가구가 된다. 집마다 기다란 장대에 경전을 새긴 기다란 천을 매단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 경전의 말씀이 바람타고 저 먼 마을로 전한단다. 귀한 말씀을 바람을 통해 전하는 신심이다. 바람은 착한 심부름꾼으로 생명체로 다가온다. 타르초를 스치는 바람을 통해 잠깐 머물다가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한다. 한동안 바람에 펄럭이는 타르초를 본다. 무상(無想)이다. 멜람치강 마을 주민은 타망족으로 모두 불교신자라니 불국토가 따로 없다.

 

가이드는 샤워할 수 있다며 얼굴이 밝다. 계곡물을 이용해 만든 수력발전으로 고물 순간 온수기가 물을 데운다. 사용량이 많으면 자주 단전되지만 졸졸 뜨거운 물이 반갑고 고맙다. 떡진 머리를 감고 발가락 사이 꼬랑내를 씻는다. 이제 사람 꼴이 난다. 1주일 이상 자란 하얀 콧수염 턱수염은 남긴다. 서울에서 매일 아침 면도했는데 산행 중에는 도사처럼 길러본다. 염색과 면도로 흑발이 백발로 변하는 세월을 숨기고 산 도시 생활을 거부하고 자연 상태로 방치한다. 그 자연을 통해 세월을 읽고 싶다. 면도로 숨긴 하얀 수염은 자신의 세월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탈. 이 또한 여행이리라.

 

트레커는 롯지 주인의 양해를 구해 주방에서 준비해간 한국 라면을 끓인다. 끓는 물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 기다린다. 간단한 요리이지만 그들에게는 생소하다. 가이드, 포터, 롯지 주인아주머니, 그 아들 모두 라면을 먹는다. 네팔 사람들 눈이 휘 둥그레진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딜리셔스!

 

레몬티를 마시고 저 먼 산을 본다. 아직 설산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엄청난 암석의 골격 위를 덮고 있는 만년설은 마을의 수호신 같다. 주민들은 매일 아침 그 설산을 보고 정중히 합장하는지 모른다. 산간마을의 햇살이 평화롭고 방문객도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 베품은 얻음이요

 

 

그동안 트레킹 하면서 산간마을 주민들에게 의료 봉사하고 싶었다. 히말라야를 찾아 네팔인들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을 가졌다. 롯지 주방(대개 낮은 철제 난로로 난방과 요리를 하는 공간)이 진료실이다. 멀리서 의사가 왔으니 치료받으러 오라고 소문낸 상태였다. 한국어 반벙어리인 가이드가 통역을 하고 좀 어설픈 진료가 시작되었다. 네팔 주민들은 생소한 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한다. 정부에서도 민간 의료인도 이 오지 마을에서 진료를 하지 않았을 것 이다.

 

먼저 준비해 간 자동전자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손끝에서 혈액 한 방울 채취하여 혈당을 체크한다. 주민들은 이런 신기술 진료가 처음이다. 요통환자는 침술과 간접구, 그리고 준비해간 환산제를 투약한다. 한약은 보통 10~20일분 처방한다. 한의원에서 준비해 간 엑기스 환제 등이 많아 포터가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자주 만날 수 없는 환자들이니 좀 더 넉넉히 처방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물론 오적산과 육미지황환으로 퇴행성과 협착증의 요통을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의료인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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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가 어두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찾았다. 왼쪽 경부에 심한 부종 종양이 발생했다. 갑상선이나 임파 결절일텐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단순한 염증 소견일 수 있지만 종양이 발생한 상태로 여겨졌다. 물론 양성인지 악성인지 또 확인할 방법이 없다. 침구요법도 약물요법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진료실을 떠나는 그 할머니의 발걸음은 무겁고 의료인의 마음 또한 무겁다. 저 혹이 커져 기도를 압박하면 큰 일날텐데 난감하다. 그 할머니는 병명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돌아가실 것이다. 카트만두 병원까지는 멀고 먼 길이다. 멜람치바자르까지 걸어서 꼬박 1박 2일이고, 그곳에서 시외버스로 비포장도로 4시간 거리에 먼지의 도시 카트만두가 있다. 그 병원 의료시설, 의료진 또한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생각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있어 방문 진료한다. 운동기질환으로 요추 슬관절 질환이 많고, 뇌혈관질환으로 두통 편마비 질환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혈압 당뇨 검사는 물론 침구 치료가 처음인 주민들은 대단한 호응을 보였다. 처음 보는 침구 치료는 신비롭고, 그 만큼 기대가 컸으리라. 의료인은 정성 그리고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의료는 치유의 기원 영역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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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트레커들에게 아름다운 만년설이지만 그들에게는 척박한 땅이다. 주민들에게 물질 없는 히말라야는 좀 고단하다. 방문객은 문명 대신 문맹의 공간인 고산마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른다.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간혹 고혈압 환자가 있었지만 특이한 것은 혈당 수치가 높은 주민이 많았다. 식후 혈당 140mg/dl 넘는 환자가 진료 환자의 반 정도였다. 주민들은 알랑미 같은 밥을 많이 먹는다. 아마 탄수화물 섭취가 많은 까닭이 아닌지 추적해본다. 영양가 없는 식사라 대신 밥의 양이 많다. 동행한 포터는 필자 보다 족히 5배 이상의 밥을 먹는다. 손으로 잘도 비벼 먹는다. 분명 식사로 인한 혈당의 상승인 것으로 사료 되었다. 네팔 보건 당국의 역학조사 통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날 일행은 또 다른 마을로 이동하여야 한다. 내리막 1시간 오르막 4시간 거리의 타르게강(2590m)에서 진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날 약재를 나누어 주어 좀 가벼워진 가방을 챙기고 마을을 떠나려는데 어제 치료받았던 주민들이 환송 나왔다. 감사하다고, 이 먼 곳을 찾아 치료해 주어 고맙다고, 생전 처음 혈압 혈당 검사받고, 난생 처음 침 치료 받은 것은 축복이라고, 무슨 인연있어 그 먼 산간마을 찾아왔냐며 고개 숙여 두 손 모아 합장한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이지만 참으로 반가웠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이방인 한의사에게 카타(khata)를 목에 걸어 준다. 카타는 하얀 천으로 만든 목도리, 자신의 순수로 당신에게 감사와 안녕을 기원한다는 염원의 표시이다. 고이 간직하고 있다.

 

네팔 여행은 히말라야 설산뿐만 아니라 네팔인들의 순수까지 보아야 한다. 어느 초월적 존재가 있다면 그는 네팔(인)에게 물질 보다 순수를 주었는지 모른다.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모두 풍광이 좋다. 그리고 그 코스 모두 힘들다. 그래서 찾는지 모른다.

 

트레커는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에 염색을 한다. 그는 흰머리가 많아지는 자신을 히말라야가 알아보지 못할까 부푼 가슴으로 염색을 한다. 히말라야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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