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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신미숙 여의도 책방-48

신미숙 여의도 책방-48

일상에서 일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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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작은 설레임의 동의어나 다름 없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으로 뒤덮힌 집 앞 산책로에 첫 발자국을 남길 때의 그 조심스러움과 신중함 그리고 결국은 가슴 속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외마디 감탄사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는 내가 1월을 하루를 아침을 대하는 자세이다. 이렇게 2024년이 시작되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소설을 관통하는 모든 것을 미리 내밀어 보이는 것이기에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까를 두고 소설가들은 수일 수개월을 날밤을 새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고 들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가 탄생하기까지의 고통스런 과정을 작가의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훌륭함을 추구하는 뜨거운 마음』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가 2023년 11월5일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해외에서 자수성가했다는 인물도 다시 돌아와 한국에 정착하려면 한국식 저열함을 새로 배워야 한다.” “세계 수준의 훌륭함을 추구하는 뜨거운 마음들이 모여야 한다. 좁아터진 국내에서 상대방을 제쳐야 비로소 이기는 경쟁에 열중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세계의 훌륭한 성과를 내밀고 초심을 잃지 말자고 독려하는 동아리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좋았고 그 흔한 단어들의 조합이지만 뭔가 뭉클해지는 글의 제목도 마음에 쏙 든다. 


국내에서 생존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식 저열함이라! 그건 뭘까? 모든 분야가 레드오션인 좁아터진 국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질이 낮고 변변치 못한 방법이라도 일단은 모든 수단을 몰빵해서 어떻게든 일단 경쟁자들을 꺾고 기세를 몰아 승자가 되어 기득권을 선점하면 돈과 성공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이 길만이 생존의 비결임을 우리 모두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이런 방식은 옳지 않다는 데에 동의하는 척 한다. 그 결과 배짱 있는 배팅러들은 그 지위에 올라서고 뒤편에서 뒷짐지고 있던 불편러들은 이제 그 위치를 차지한 자들을 시기질투하며 손가락질을 준비한다. 성공에도 실패에도 각각의 서사가 있는 셈이다. 정치판도 의료계도 모두가 윈윈하는 길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최근 발생한 많은 사건들을 떠올리면 정해진 질서나 상생의 악수 혹은 흉금을 터놓는 대화 따위는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직 반대편을 끝장내고야 말겠다는 혐오가 온라인에서의 조롱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실질적 폭력으로 그 끈질긴 생명력을 사방에 발산하고 있고 우리는 분명히 목격했다.  

 

“의사·한의사는 어디서 치료받나 보자”며 의사와 한의사가 각각 의료기관과 한의의료기관을 얼마나 이용하는지 살펴보자는 정면승부 요청이 의료계로부터 제기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첩약에 난임까지 한의계 활보에…의료계, ‘이것’ 공개 요청』 의협신문, 2024.01.10). 면허가 등록된 의사와 한의사들이 2018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5년간 의료기관을 이용한 이용자 수를 의사·한의사 직역별로, 1년 단위로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고 하는데 내심은 “한의사들아!! 한의학이 그토록 우수하다면 병원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고 너네끼리 치료하고 치료받고 다 해라. 우리 의사들이 한의원 따위에 들를 일은 죽어도 없을 테니, 너네들한테서 치료받는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디 한 번 증거를 대 보아라!”였을 것이다. 


한의사가 환자로서 의사들을 찾아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반대로 의사가 환자로서 한의사를 찾아가는 경우는 가족관계인 경우를 빼고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해결불가라면 딱 거기까지, 한의학에까지 노크를 할 범주의 질환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의사를 만나야만 하는 필수적인 상황(1년 1회 정기검진으로 무표정의 달인인게 분명한 가정의학과 의사 면담, 코로나 확진으로 직장 제출용 진단서를 위한 이비인후과 의사 면담)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의사를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한의사라서가 아니다. 살면서 의사, 경찰, 법조인들 만날 일이 없으면 없는대로 좋은 인생 아닌가? 환자가 되어 의사 앞에 앉아본 한의사들이라면 한두번 쯤은 속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이 분야는 한의학이 해낼 수 없는 분야쟎아. 내가 여기 앉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거고, 암튼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환자 역할도 엄청 뻘쭘하구나! 의사들은 하나같이 참 불친절하단 말이야!’


언론을 장식하는 의사들의 범죄 기사들


보험공단 이사장에게 정보 공개를 요청한 이 포럼의 대표는 동일한 질병이라도 현대의료와 한의약 영역에서의 진단과 치료 방식이 상이해서 국민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과의 많은 대화 속에서 동일 질병에 대한 의사들의 코멘트와 나의 의견은 거의 일치하는 편이다. 2개월 동안 외부 병원에서 치료를 했는데도 여전한 발목 통증 환자에 대해서도 오십견이나 극상근 부분파열, 아킬레스 건염이나 족저근막염의 경우에도 진단이나 주의사항에 대한 의견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대부분 병원들은 관절 불안정성과 만성 통증으로의 이행, 외상성 관절염의 발병 가능성을 경고했고 약물치료, 주사치료, 체외충격파와 도수치료를 반드시 권했다. 병원 치료와 한의 치료를 동시에 받고자 하는 환자들이 많았었고 병행 치료의 결과, 회복 속도의 빠름과 제반 증상의 완화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늘 만족했었다. 


현대의학은 위대하다. 아무리 내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끊임없는 양적·질적 성장의 속도와 성과는 눈부시기만 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의학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이 끝도 없이 고꾸라지고 있다. 한의학적 치료나 상담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그 영역마저 어디까지 축소될런지는 상상하기 두렵다. 내가 한의사로 활동할 때까지는 그래도 무사해야 할텐데.. 하는 이기심을 숨기지는 않겠다. 이는 현직 한의사들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불안감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의사들의 의료행위가 무결점, 무오류의 과학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의협은 늘 “과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행위는 국민들에게 행해져선 안된다”며 의사나 의협의 위상을 최상으로 유지하기를 원하지만 연말연초에 언론을 장식하는 의사들의 범죄 기사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처참한 수준들이다.   

 

의사들범죄.jpg

 

병원이 아닌 일반 집이나 요양원 등 장소에서 사람이 숨지면 의사가 타살 혐의점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체를 직접 확인하고 검안서를 발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 측과 결탁해 사체를 직접 보지 않고 허위 검안서를 발급하고 발급비용을 장례식장과 의사가 반띵한 사건이 있었다(『‘확인 않고 사체검안서 허위발급 의혹’ 현직 의사 입건』 연합뉴스, 2023.12.15.). 명문대 출신 의사들 중심으로 구성된 큰 규모의 정형외과 전문병원에서는 TV에도 출연한 박사 출신의 유명 의사가 왼발이 아파 수술을 하러 들어간 환자의 멀쩡한 오른발 뼈를 절단하고 철심을 박아 불구로 만드는 일도 발생했다(『왼발 아픈데 멀쩡한 오른발 수술…환자는 영구 장애』 연합뉴스, 2023.12.16). 마약처방을 대놓고 하는 것도 모자라 마취 상태의 여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동영상을 촬영한 행위(『마취된 여성 10명 성폭행 몰카…‘롤스로이스 마약’ 의사의 민낯』 중앙일보, 2023.12.26)는 의사라는 직종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면허정지 수준에서 음주운전을 감행하고 배달기사를 사망에 이르게 해놓고도 별도의 조처 없이 현장을 떠난 뺑소니 의사(『배달기사 숨지게 한 ‘음주 뺑소니’ 의사 집행유예』 한겨레, 2024.01.13)는 징역 6년의 원심이 파기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의 유족들과 원만히 합의한 점과 피고인이 초범인 점, 그 밖에 97장의 반성문도 한 몫 했겠지만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원심을 깨고 극적으로 감형을 받을 수 있었을까? 


서양에서 바라보는 대체의학의 수준은?

 

뤼방오지앙.jpg

 

‘나 자신이 이내 하나의 바코드로 환원되어 버리는 기분’. 이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뤼방 오지앙(Ruwen Ogien·1949∼2017)이 췌장암으로 병원 생활을 하며 느낀 환자 역할에 대한 한줄 감상평이다. 그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폴란드인 집안에서 태어나 철학과 사회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유럽 최고의 연구 기관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 국장을 지냈다. 


『나의 길고 아픈 밤―죽음을 미루며 아픈 몸을 생각하다』(원제는『Mes Mille et Une Nuits; 천일야화, 부제: 비극이자 희극인 질병』)는 췌장암과 투병하면서 쓴 마지막 에세이로 저자는 이 책이 출간되고 몇 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다. 대학병원의 거대한 로비에 환자가 되어 앉아있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그 커다란 외로움과 살 떨리는 소외감을!! 친절한 의사 한 명 만나기 어려운 차가운 공간에서 여기저기 찍히는 바코드 사운드로만 가득 찬 그 텅 빈 높은 층고의 썰렁함을 !!


뤼방의 2015년 10월19일 일기에는 “오늘 만난 정골요법사는 친절한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골요법사에게 복통의 원인이 배꼽 탈장이라는 말을 듣고 좀 불안해졌다.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외과의들을 다시 찾아갔다. 의사들은 정골요법사의 진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들은 내가 돌팔이를 찾아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2015년 11월2일 일기에는 “어처구니없던 기(氣)치료의 여파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다. 자칭 ‘기치료선생’은 내가 화를 속으로 삭이는 바람에 췌장이 손상됐다는 식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췌장의 경우는 화라는 감정에 해당한단다. 근거도 없는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모습에 나는 당연히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무당처럼 번잡스럽게 움직이는 동안, 그녀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기치료선생은 적잖게 당황했는지 나의 복통을 자신의 배로 옮기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도를 넘는 멍청한 짓거리”라는 기록도 있다. 프랑스에서도 정골요법사나 기치료선생이라는 분들이 활동 중이고 당연히 의사들로부터는 돌팔이, 환자들에게는 무당 취급을 받고 있으며 치료의 본류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의 한의사의 위치와 등치시킬 수는 없겠지만 서양의 대체의학 종사자들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 지금 내가 복용하는 약들은 대부분 치료 효과가 없다. 그저 상태를 유지하게만 해 줄 뿐이다. 게다가 통증을 가라앉게 하지도 않는다. 외려 통증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저 달콤한 모르핀을 제외하면, 이 약들은 언제나 병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 같다. 

- 내 삶이 상당 부분 의사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이 현실이 가장 끔찍하다. 치료를 연장하거나 혹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기준이 순전히 비용 문제가 되는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다. 

-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병원의 관료주의를 상대해야 한다. 

- 의학은 현 상태에서도 이미 광대한 지식의 보고이지만 나에게 삶을 연장해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통계적으로 예측되는 사망 시기를 뒤로 미루어주는 것이 현 의학의 최선이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치료차 진료실에 들르시는 날이면 그 어떤 유력 정치인들이 내원했을 때보다도 긴장을 많이 했었다. 국회 근무 초창기 시절 오십견으로 내원하신 의사 출신 의원님 한 분께 치료 과정을 자세히 설명드리려 했더니 의원님께서 “원장님, 저는 한방 좋아합니다. 효과 없으면 진즉 사라졌겠죠. 저한테 일일이 설명 안 하셔도 되니 치료만 잘 해 주세요. 우리 보좌관이 원장님 잘 하신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통증에는 진통제보다 침이 훨씬 빠르쟎아요. 동료 의사들 만나면 침은 웬만하니 인정해주자.. 라고 저도 추천하고 다니는데 그래도 욕을 먹어요. 아니, 갈 데가 없어서 한의사한테 가냐고 놀리기도 하고요. 진통제 몇 알 먹으면 될 걸, 침까지 맞냐고 하길래 안 맞아봐서 그렇다. 일단 맞아봐라. 다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라고 하셨다. 


모든 두려움 극복해내는 2024년 ‘기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3월18일자 『주간조선』의 특집 기사의 제목은 『인기 상한가 한의대, 한의대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였다. 저 기사 전후에 한의대에 입학하여 2024년의 오늘을 목격하고 있는 후배 한의사들 중에는 최근 여권을 탈당하며 제3지대로 자리를 옮긴 한 중진 의원의 고백처럼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의 다른 버전으로 “부모님도 속고 나도 속았다”라며 ‘그 때 한의대가 아닌 의대를 갔었어야 했는데, 의대를 가고도 남을 점수였는데 미쳤다고 한의대를 좋다고 다녔구나’라며 때늦은 후회에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년 전에는 우리 모두 예측하지 못했었다. 2024년 한의사와 한의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렇게까지 급변할 줄은!! 인생은 예측불허이고 삶은 늘 느닷없다!!

 

주간조선_2004년.jpg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탁월한 문장들 중 “우리는 뒷걸음질로 미래에 들어선다”는 글귀에 오늘의 시선을 고정해본다. 지난 20년간 나는 혹은 한의계는 시대적 변화에 올라타지 못한 채 뒤로 밀리고 옆으로 넘어지고 뒷걸음질치며 2024년이라는 오늘에 떠밀려 들어와 버린 건 아닐까? 지금부터라도 이전의 20년과 차원이 다른 노력과 도전을 한다면 앞으로 20년 후는 오늘과는 조금 다른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을까? 스스로를 글감옥에 가두고 하루 16시간씩 집필에만 몰두하셨던 조정래 선생님이 2023년 11월 신간 『황금종이』의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2030년에 등단 60주년에 맞춰 아마도 당신 살아서 쓰시는 마지막 소설이 나올 예정이라고 답을 하셨다. 80세를 넘기고도 창작을 멈추지 않으시는 생의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시는 그 징글징글한 꾸준함을 이길 자 과연 있으랴? 정치인의 노욕은 추악하기만 한데 예술가의 노욕은 이토록 숭고하다.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고 내가 반복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이 된다. 영국의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순간 두려움은 극복되는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예술하는 마음으로 2024년의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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