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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7일 (토)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61)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61)

林鍾國의 韓國鍼灸醫學史論
“임종국 교수 침구의학 역사의 스토리라인을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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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임종국 교수(1938〜2022)는 평안남도 출신으로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해 1960년에 9기로 졸업하고 대한한의학회 학회장, 경락경혈학회 및 대한침구학회 초대 회장을 했던 침구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다. 그는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명예교수였다.


침구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임종국은 1973년 새해부터 한의신문에 ‘鍼灸醫學史’라는 제목의 논문을 3차(1월15일자, 1월30일자, 2월15일자)에 걸쳐 게재해 이 분야의 개척자적 면모를 과시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그 해 9월에 열렸던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에 ‘韓國鍼灸醫學의 略史’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아래에 이때 발표한 논문을 소개한다.


“한국민족의 전통의학으로 발전하여온 침구술은 腫物 및 疼痛을 치료하기 위한 과학적인 치료법의 하나로 인정되는 석기시대의 石鍼, 骨鍼 등의 응용 경로가 있었고, 활의 촉에 독약을 발라서 사용된 시대에 독을 제거하기 위한 穿刺療法이 있었다. 그 다음 經絡鍼灸術은 서기 561년(고구려 평원왕 3년)에 知聰이 중국의 醫書를 輸入하여 옴으로써 經絡理論을 습득하여 穿刺治療法과 같이 경락자극 침구술이 전래하여 왔다. 


經絡은 生体에 있어서 氣(力, 先生氣血電流)의 循環路 즉 回路이며 經絡線上에 나타나는 過敏点 또는 反應点을 經穴(治療点)이라 命名하였고 經絡이 內的으로는 各臟器와 連結되어 있어 各疾患에 應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침구학은 역사적으로 발전책이 이루어져 왔고 현실적으로 한의사제도가 成熟하여 발전하여온 오늘날까지 大衆의 生活 속에 뿌리 깊이 하여 疾病治療方法에 널리 活用되어 왔다.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西紀 1544〜1610年(420年 前)에 舍岩氏의 舍岩鍼法(五行鍼)을 발전시켜 현금 한방의학이 輸入된 各國에서는 五行鍼으로 통칭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기 692年(효소왕 元年)에는 처음으로 한방의학을 국가정책으로 교육하였으며 이때 ‘千金方’의 輸入으로 鍼의 補瀉法 널리 應用하기 始作하였다.


서기 960年(光宗12年)에 처음으로 國家試驗으로 登用시켰던 3人의 한의사는 한국역사상 최초로 合格한 의료인이며 制度의 創始였다.


西紀 1136年(仁宗14年)에는 醫藥에 처한 考試方法과 試驗科目을 一定하게 規定하였으며 合格 不合格을 결정하는 明細한 規則을 만들었다. 그 후 국가의 모든 政策이 쇄신되었고 차차 文化가 발달하였으며 중국의 한약재료를 수입하기보다는 국산약재를 이용하려는 인식이 높아져 의학의 자주적 기본 사업으로 서기 1398年(太祖7年)에 침구경험이 包含된 ‘鄕藥濟生集成方’이라는 의서가 나왔다. 


이어서 西紀 1433年에는 世宗大王이 한국 고유 의학의 ―大集成인 ‘鄕藥集成方’을 刊行하였다. 한편 그때까지의 東洋醫學의 大集成인 ‘醫方類聚’를 西紀 I477年에 침구학이 포함된 의서를 편찬하였다. 


西紀 1438年(세종20年)에는 의학고시에 침구학을 必須科目으로 하는 規定을 보았다. 西紀 1447年에는 全循義와 金義孫이 合作한 ‘鍼灸擇日編集’과 유성용의 著 ‘鍼灸要訣’이라는 침구의서가 있다. 西紀 1644年에는 許任 著의 ‘鍼灸經驗方’이 있다.


한국의 침구학 發展史上 뚜렷한 것은 침구술에 能한 著明한 醫人들이 宣祖때 가장 많았다. 西紀 1596年(宣祖25年) 許浚 둥이 王의 命을 받아 1613年(光海君 5年)에 처음으로 完成을 본 ‘東醫寶鑑’ 중의 鍼灸篇은 가장 많이 응용되었으며 침구학 발달의 全盛期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내려오다가 1948年 東洋醫大의 設立으로 東洋醫學율 專攻으로 敎育한 한의학사 1300名을 배출하고 현재 대한한의사협회 회원 총 3千名을 포용하고 있다.

 

1965年 東洋醫大는 慶熙大學校와 倂合하여 綜合大宇校內에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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