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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인문학으로 바라 본 침구의학···의사-환자 관계성 정립

인문학으로 바라 본 침구의학···의사-환자 관계성 정립

경락경혈학회, ‘제3차 온라인 학술아카데미’ 개최
자침치료에 내재된 의사-환자 관계성의 의미, 경락경혈의 존재론 등 발표

경락경혈 박히준.png


경락경혈학회(회장 박히준)가 지난 25일 ‘인문학으로 침구의학 바라보기’를 주제로 ‘기초연구자와 임상 한의사가 함께하는 제3차 온라인 학술아카데미’를 개최, 침 치료 임상과 인문학의 연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김송이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학술아카데미에서는 △자침치료에 내재된 의사-환자 관계성의 의미(김재효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교수) △경락경혈의 존재론(김태우 경희대학교 기후-몸연구소·한의과대학 교수)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박히준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학회에서 그동안 연구와 임상이라는 두 개의 꼭짓점을 잇는 선을 주로 다뤄왔다면 이번에는 이에 더해 인문학이라는 면을 덧입히는 개념을 다뤄보고자 한다”면서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한의학, 특히 경락경혈학과 침구의학에 인문학을 어떻게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락경혈 발제1.png

 

자침치료에 내재된 의사-환자 관계성의 의미 

김재효 교수는 동·서양 의료에서의 국내외의 생의학적인 임상 연구를 통해 의사-환자 관계성이 침 임상과 연구 분야에 앞으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조기치신(調氣治神)’으로 표현되는 자침치료의 목표는 신체내 각 기관의 기능과 활동에서 균형을 조정하고, 정신 기능 조절을 통해 환자의 정신과 정서 상태를 안정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중국의 침구의학자 청딴안(承淡安, 1899~1957)은 △정신감응 △정신집중 △물리자극 등의 중요한 요인이 자침치료의 효과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현대적 표현으로 의사-환자 관계성에 의한 정신감응에 해당한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근대의학은 과학주의와 임상의학의 결합 과정에서 과학주의는 의료에 내재된 인문주의적 토대를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독일의 정신과의사인 칼 야스퍼스(1993-1969)는 인류 역사에서 의료행위는 자연과학적 지식과 함께 휴머니티적 에토스라는 두 가지 토대 위에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며 근현대 의학이 과학주의에 치중하며 환자의 고통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이와 달리 자침치료를 비롯한 한의약의 의료는 의사-환자 관계성에 상응하는 전통적인 진료 모형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다양한 임상연구 사례로 제시했다. 


자침치료 과정에서 의사-환자 관계성과 맥락적 의사소통이 환자의 고통과 병환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특히 침의 체성감각적인 물리자극 효과뿐만 아니라 환자의 정서적 변화를 촉발하는 자극 효과가 병행되며 이는 자침치료의 비특이적 효과(Chae Y and Olasusson H. 2017)를 나타낸다. 이는 한의사의 공감적 표현, 환자와의 신뢰 형성, 안전한 자침치료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더욱 강화됐다. (Ho R et al. 2022) 


최근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에서도 의사-환자의 상호작용이 전제될 때 만성요통 환자에게 자침의 진통효과가 강화되는 결과가 밝혀졌으며, 이를 통해 치료과정에서 의사-환자의 관계성이 다양한 차원에서 작용됐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미국의 Ted Kaptchuk 교수는 ‘가짜침’을 포함한 자침의 효과는 치유의식(Healing ritual)으로서 신체 감각에 대한 환자의 주의력을 조절하며, 의사는 자침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독특한 서사(narrative)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파악한 상상력, 감정, 감각, 도덕성, 심미적(aesthetic)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함으로 치유의 과정을 극대화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자침치료의 비특이적 효과, 위약효과 등은 의사-환자 관계성 속에서 환자의 마음의 힘을 통해 치료 효과를 향상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경락, 경혈 이론을 비롯한 침구의학의 다양한 중재치료기술을 객관화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evidence based medicine) 축적만큼이나 의사-환자 관계를 중심으로 인문학적 토대와 근거가 동시에 다뤄져야 한다”면서 “이는 의료행위의 본질에 존재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특성을 완전히 드러내고, 나아가 한의학 임상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락경혈 발제2.png

 

경락경혈의 존재론 

김태우 교수는 지난 15년의 국내·해외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 인류학의 존재론과 한의학을 연결해 한의 임상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 


김태우 교수는 “한의학은 한마디로 ‘존재론의 논의’로 볼 수 있다”면서 “이는 몸이라는 존재에 대한 지식과 실천”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우리는 통상 존재론이라고 하면 선형적 인과론(‘인’과 ‘과’ 사이 시간성과 일방향성을 기본으로하는 인과론)에 부합하는 실재론을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존재론은 하나가 아니며, 복수의 존재론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최근에는 실재론을 전제하지 않는 과학 연구와 다른 방향성의 연구도 가시적으로 대두된 바 있다. 예컨대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얽힘에 관한 연구로, 이는 실재론, 인과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동아시아의학이 실재론과는 거리가 있는 존재론에 바탕한다고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치(治)’의 상형은 물이 흐르고 거기에 영향을 주려 하는 모양으로 돼 있는데 물의 흐름이 순조롭지 못할 때 다시 순조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동아시아 의학에서의 치료의 목적은 인위적인 무엇을 하기보다는 순조로운 흐름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치’의 개념은 동아시아의 몸-존재에 대한 이해와 침치료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한의학의 많은 개념들이 개별적이 아닌 연결돼 사용된다는 것과도 상통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정 △기 △신이 각각 존재하기보단 △정기 △신기 △정신과 같이 연결성 속에 존재하며, △기혈 △기미 △심신(心腎) 등도 연결성을 드러낸다고 예시를 들었다. 

 

특히 김 교수는 동아시아의학의 연결성과 관계성을 위한 흥미로운 개념으로, ‘인트라- 액션(intra-action)’을 소개하면서, 한의학에는 최근 인문사회과학의 논의 속에서 새로운 연구와 침법의 혁신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이를 위해선 △실재론을 유일한 존재론으로 전제하는 경락경혈에 대한 연구를 넘어 △인터라-액션과 같은 관계성의 관점으로 경락경혈의 존재와 침의 효능에 대한 연구를 모색하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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