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철 한의학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 사태가 발생한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지난 20일부터 의료기관 등을 제외하고는 대중교통까지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었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4월 말 또는 5월 초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현행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조정할 계획을 세우는 등 코로나19가 종식돼 완전한 일상으로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코로나19 대응에 대해서는 확진자 수와 사망률을 잘 통제해 국제사회에서 성공적 방역모델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는 국민들의 자발적 방역 참여와 더불어 의료인들의 헌신이 큰 몫을 담당했다. 특히 코로나19 진단과 치료에 있어 제도적 차별과 배제 속에서도 전국의 한의사들 역시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 국가방역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의계에서는 한의과 공중보건의사(이하 한의과 공보의)가 코로나 초기부터 전국 각지에서 검체채취, 역학조사, 한의치료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정부 지원 없이 자체 예산 및 회원들의 십시일반 성금 등을 통해 ‘20년 4월2일 코로나19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 운영과 함께 ‘21년 12월22일에는 코로나19 한의진료접수센터 개소를 통해 전국 각지의 회원들과 함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따뜻한 한의인술을 전파했다.
여러 법적·제도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돌보겠다는 일념 하에 국가 공중보건위기에 적극 참여하려는 적극적인 의지 표명에도 정부에서는 한의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의료인력 부족 속에도 한의사 참여 ‘외면’
실제 코로나19 초기 한의사들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명시돼 있는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20년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될 당지 대구시에서는 환자를 돌볼 의료인력 부족을 호소하여 55여명이 한의사가 검체채취 업무에 참여신청 하였으나 한의사는 투입인력에서 배제되었으며, 한의과 공보의는 대구·경북지역 투입을 위해 조기 임관되는 공중보건의사 인력에서 배제 되었다. 정부에서도 한의사의 감염병 환자 검체채취는 면허범위 밖 치료행위에 해당될 우려가 있다는 견해를 밝히며, 일선 의료현장에서 코로나19 재난 대응을 위한 의료인력 부족난에 시달리면서도 한의사의 참여의지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와 함께 그해 11월 ‘선별진료소에서 검체채취를 한 공직한의사 및 공중보건한의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인가’라는 국정감사 서면질의에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염병 환자를 진단할 수 있고 역학조사관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역학조사와 검체채취에 한의사 투입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수요, 지역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방자치단체 실정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검체채취는 의과 면허를 소지한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는 대한의사협회의 지방자치단체에 항의공문 발송 등으로 한의과 공보의는 지역에 따라 아예 제외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의사의 감염병에 대한 방역 참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명확히 규정돼 있다.
감염병 관리법에 한의사의 역할 명시
동법 제2조 제13호에서는 ‘감염병환자란 감염병의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하여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으로서 제11조 제6항의 진단 기준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진단이나 제16조의2에 따른 감염병병원체 확인기관의 실험실 검사를 통하여 확인된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돼 있다. 또한 동법 제79조의4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제1종 감염병 등에 대하여 보고 또는 신고 의무를 위반하거나 거짓으로 보고 또는 신고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그리고 이들의 신고를 방해한 자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11조 제6항 및 시행규칙 제6조에 의하면 감염병 진단 사실을 신고하려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은 전자문서를 포함한 신고서를 질병관리청장에게 정보시스템을 통해 제출하거나, 관할 보건소장에게 정보시스템 또는 팩스를 이용하여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러한 법령이 명확히 명시돼 있음에도 정부의 입장 번복과 명확하지 않은 지침으로 인해 역학조사와 검체채취에서의 한의사 참여 논란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의과 공보의들은 전국 각지에서 검체채취, 역학조사, 한의치료 등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임상 한의사들은 코로나19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와 코로나19 한의진료접수센터를 통해 코로나19 확진자 및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의 아픔을 돌봤다. 전화상담센터 및 진료접수센터의 진료환자는 각각 2,326명, 8,423명으로 총 1만749명이다. 특히 한의진료접수센터를 통해 진료받은 8,4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택치료자 중 94.4%가 한의약 진료에 만족한다고 응답키도 했다.
감염병 신속한 대처 위해 모든 의료자원 활용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감염병, 제2의 코로나가 나타날 것이며, 신종 감염병의 발생 주기도 3년 이내로 단축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 사스, 신종플루(Novel swine-origin influenza A(H1N1)), 메르스, 코로나19는 2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발생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유발했다.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성인 진화(변이)에 의해 코로나19 종식이 되기도 전에 우리가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재앙적 질병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때는 코로나19 그 이상의 전파력과 독성을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이렇듯 감염병의 특성상 초기에 신속한 대응을 통해 차단과 확산 방지에 모든 의료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미국의 의철학자 펠레그리노(E. Pellegrino)에 따르면 의료인의 윤리실천은 환자의 고통에 당위적으로 응답해야 하며, 그 이유는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존엄한 권리의 수호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적으로 규정된 의료인으로서 의무와 윤리실천을 위해 무엇보다 의료인의 권리와 권한은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조건으로 사회와 국민들에게 부여받은 것임을 알기에 한의사 들은 코로나19 사태에서 공익을 위해 자기희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은 법과 제도의 구속, 정부의 철저한 외면, 상대 직능단체의 폄훼 등으로 인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의료인으로 코로나19의 방역과 환자들의 치료에 최선을 다해 왔음에도 적절한 보상은 고사하고 아직까지도 법제도의 족쇄에 옭아매놓고 있다. 언제 또다시 우리의 일상을 무너트릴 신종 감염병이 올지 모르지만 국가방역시스템에 한의사 참여를 보장하고 한의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울 삼아 우리 모두 노력해 나가야 한다.
감염병 대처에서 한의약 활용방안은?
또다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종 감염병 사태에서는 중국이나 대만, 일본 등에서 전통의약의 활용을 통한 효과적인 대처를 했다는 것을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얻은 의학적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국가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한 기본계획과 같은 정책 수립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의약을 반영시키고, 더 이상의 법률 해석에 따른 직능간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한의과대학에서 이수한 감염병 교과과정이 평생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수교육 필수과목으로 지정·운영해 한의사들의 감염병 대응 역랑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정부에서는 우수한 의료인력인 한의사의 강점이 국가 방역체계에서 잘 발휘될 수 있게 명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이에 따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래에 발생될 감염병 대비를 위해 지금부터 정부 부처, 학계, 산업계 등과의 적극적인 연계를 통한 역량을 결집해 국가 감염병에서의 한의약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정책적 기틀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최근 한의사가 신속항원검사를 시행하여 고발당한 사건이 의료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왔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을 존중하며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 관련 행정소송에 법조계의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방역과 의료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밤낮없이 고생한 한의의료진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