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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9일 (월)

신미숙 여의도 책방-35

신미숙 여의도 책방-35

2022년과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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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밤이 길어졌다. 살살 퇴근을 준비해도 미안하지 않을 시간, 오후 5시 반이 되면 진료실 바깥으로 여의도 빌딩숲에서부터 불어온 칼바람을 품은 겨울 하늘이 유난히 까맣다. 12월 초부터 진료실에는 재즈풍의 캐롤을 틀어놓는다. 송년 모임과 신년 행사들이 교차하는 매년 이 즈음의 날들은 지난 한 해에 대한 아쉬움과 ‘그러니까, 내년부터는 달라질꺼야!’하는 억지스런 눈부릅뜸이 희망이라는 단어와 한 데 뭉쳐 자주 심장을 두드려댄다. 


아침 일찍부터 메스꺼움(惡心)으로 내원했다고 주장은 하고 있으나 마스크 위에 소주향 디퓨저를 끼얹고 오셨나 싶을 정도로 술냄새가 또렷하다. 숙취로 인한 무거운 몸을 잠시라도 뉘일 수 있을까, 없을까 내 눈치를 보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상토하사(上吐下瀉), 토사곽란(吐瀉癨亂) 혹은 송년회식 후유증으로 별칭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과음 다음 날 아침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려고 심호흡을 해보았다가 엎드려 보았다가 핫팩을 배에 올려 보았다가 물을 벌컥벌컥 마셔보았다가 화장실에 앉아보았다가 어떤 짓을 해도 개선되지 않는 그 온갖 불편한 증상들의 총합을!! 


‘나, 금주할거야!’ 혹은 ‘다신 안 마셔!!’ 그랬다가도 해독의 기쁨이 몰려오고 다시금 복부가 편안해지면 해장국와 해장술의 유혹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과음의 후유가 한바탕 지나가고 정상적인 위장상태로 바로바로 회복되는 건강체들과는 달리 먹고 배설하는 이 주요 기능에 이상이 생긴 만성 질환을 가지고 수십년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일상은 얼마나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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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생생한 궤양성 대장염 투병역사 담은 ‘먹는 것과 싸는 것’

 

프란츠 카프카의 문장을 가려 뽑은 『절망은 나의 힘』(2012년)이라는 괴팍한 제목의 책을 접한 이후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이라는 부제 때문에 『절망독서』(2017년)까지 이어서 읽게 되었다. 최근 『먹는 것과 싸는 것』(다다서재, 2022년 3월)이라는 너무도 리얼한 책 제목에 반하여(!)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니 가시라기 히로키, 반가운 이름! 카프카의 투병과 좌절에 대한 글귀들을 구구절절 성찰하고 인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자가 앓았던 질병 때문이다. 20세 때부터 궤양성 대장염을 앓기 시작하여 13년간 관해와 재연을 반복했던 투병의 역사를 너무도 솔직하게 쏟아놓았다. 책을 읽으면서 만성 질환 환자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반성했다. 또한 환자들 개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해, 억측과 속단 그리고 강요와 포기가 개입되고 있을지...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궤양성 대장염은 일단 걸리면, 평생 낫지 않는다. 그래서 난치병이다. 병에 걸린 뒤, 나는 수많은 어려움과 부자유를 경험했다. 궤양성 대장염의 설사는 느닷없이 집채만 한 파도가 닥친다. 노크도 없이, 조금이라도 좋으니 시간을 달라고 얼마나 바랐던가. 


만성 통증 환자는, 저녁이 되었다고 통증이 물러가지 않는다. 통증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불안과 긴장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차이는 정말 크다. 고통이라는 말에 ‘단계’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5단계의 고통보다 10단계의 고통이 훨씬 힘들다는 식으로.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1단계의 고통이라 해도 계속 끊이지 않으면 굉장한 것이 된다. 그러니 단계뿐 아니라 시간이라는 요소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병 때문에 궁지에 몰리다 얻은 것이 깨달음만은 아니다. 점차 주술적 사고도 강해지기 십상이다. 누구도 미신을 믿는 사람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병에 걸린 사람은 누가 봐도 이상한 치료법이나 신흥 종교에 쉽게 빠져든다.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해”라고 아무리 얘기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병에 관해서만 생각해보면, 건강한 상태란 한 종류밖에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에 비해 병은 굉장히 종류가 많다. 수가 많은 것뿐 아니라 불행에는 ‘제각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구석이 있다. 즉, ‘모두의 불행’이 아니라 ‘나만의 불행’으로 분단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환자라도 서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나는 병에 걸린 뒤에 몇 번이나 깜짝 놀랐다. ‘인간에게는 이런 통증도 있구나!’ 그 중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병에 걸리면 주위에서 사람이 줄어들어 말 그대로 고독해지기도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환자라는 존재는 무서운 견본인 셈이다. 가능하면 못 본 척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래 감정 아닐까. 


‘마음가짐이 느슨하니까 병이 난 거다.’ ‘마음만 먹으면 병은 나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종종 입에 담는 극단적인 말인데, 이 말을 들으면 환자는 괴로운 동시에 상대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모든 병의 원인이 마음일 리는 없다. 또 모든 병이 마음가짐에 따라 나을 리도 없다. 신체적인 접근으로 병이 낫지 않는 것은 의학의 한계이고 당사자에게는 책임이 없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접근했는데 낫지 않는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몸에 병이 있어 고생하는데, 어느새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환자는 ‘밝게 있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환자의 주위 사람들에게는 무척 편리한 요구다. 환자는 병에 걸렸다는 슬픈 사건의 한복판에 있는 건 변함이 없는데도, 밝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울고 싶은데 웃으라는 것이다.


그런 성격이라 그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그런 병이니까 그런 성격이 된 것이다. 병에 의해 형성된 성격인데 병에 걸린 뒤에 보고 그 병에 걸릴 만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지만, ‘병에서 마음이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다. 


낫지 않는 병에 걸리고 놀란 점 중 하나는 “낫지 않는 병이에요”라고 말해도 “아뇨, 나을 수 있어요”라고 부정당한다는 것이다. 병이 낫지 않는 경우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계속 비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병에 걸리면 행복의 기준이 매우 낮아진다. 일의 성과니 경쟁이니 하는 것들이 훨씬 하찮아진다. 


요즘은 각각의 진료과가 전문적이기 때문에 각 진료과가 맡은 책임만 완수하려 한다. 그 때문에 책임 외의 증상에 대해서는 의외일 만큼 봐주지 않는다. 


조심해봤자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예 조심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최악의 컨디션으로 떨어진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다. 제어 불가능이라는 사실만 알 뿐이다. 


아픈 사람이 이상한 치료법에 빠져들면, 서양의학으로는 병이 낫지 않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스스로 제어하는 느낌을 되찾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제어할 수 있어요.”이런 말은 정말 강하게 아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환자의 그런 절실함을 모르면 이상한 치료법에서 돌아오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도 한약치료 가능』(동아일보, 2016년 2월 15일), 『크론병, 한의학적 치료법 믿지 않아 10여 년간 연구하고 논문으로 증명』(민족의학신문, 2020년 2월 6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난치성 장질환에 관한 한의학적 연구도 가끔 보고는 된 적 있다. 다만 난치질환 환자들로 구성된 환우회에서는 정통 의료계에서 잘 치료되지 못하는 분야에의 한의학계의 도전이나 성과를 무조건 폄훼하고 비난하기 일쑤라서 자칫 ‘주술적 사고’나 ‘이상한 치료법’ 취급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의치료가 환자들에게 진실로 인정받는 방법은?


한의학이야말로 관해를 유지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안전한 치료방법이라는 인식이 일반론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미 성과를 많이 쌓은 개원가는 물론이고 관련 학계의 기초연구와 임상보고를 지속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환우들에게 쇼닥터들의 광고는 절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찐으로 효과를 본 체험기와 비광고성 정보만이 조심스레 공유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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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의 영화계는 13년만에 개봉한 『아바타2』 이야기뿐인 듯하지만 11월 말에 개봉한 영화 『올빼미』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2022년과 헤어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미스터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사극 스릴러물인 『올빼미』는 맹인 침술사(천경수, 류준열분)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영화이다. 낮에는 잘 안 보이다가 밤이면 훤히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주맹증(day blindness)을 앓고 있다는 설정에 대해서는 안과 의사의 자문을, 류준열이 침 놓는 장면에서는 한의사의 자문을 얻었다고 한다. 


초반의 쫄깃한 긴장감은 좋았으나 중반으로 가면서 개연성은 희박해지고 환타지가 가속화된다. 극중 주인공은 허벅지에 대량출혈의 상처를 입고도 절뚝거림 없는 전력 질주가 가능했고, 인조(유해진분)의 왼손 필체를 알아내기 위해 오른손에 마비를 일으키는 침을 놓았으며 세자가 죽은 후 4년이 지나 병세가 악화된 인조 앞에 다시 나타나 침 시술을 통해 결국은 인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어느새 영화는 사극의 외피를 입은 류준열의 히어로물이 되어 있었다.   


동원 가능한 모든 진단기기와 검사를 통해 ‘A가 A이고 B는 B이다’라고 명명백백하게 판정가능한 질환만 있다면 의사도 환자도 지금보다 훨씬 편리해질 것이다. 그러나 꽤 많은 질환들은 표준화된 검사를 거치고도 간단하게 진단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오류로 인하여 가끔 오진도 발생하며 의사별 병원별 각기 다른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도 다반사이다. 


암흑 속에서 벽을 더듬어 길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과 신중함을 보여야 하는 영역도 적잖게 존재한다. 한의학의 시대적 소명은 영화에서의 주맹증이라는 설정처럼 밤이라는 틈새에서의 한정된 그러나 중요한 역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한의원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파이어족으로 합류한 지인들의 소식이 한두명씩 들려온다. ‘난 언제 파이어족이 되어보나? 그런 날은 오나?’하며 그들의 크고 작은 성공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부럽다. ‘아니야, 올해도 큰 사고없이 잘 살아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넌 이 일을 좋아하쟎아!’라며 정신승리를 하려고 애도 써본다. 그랬던 내게 짧은 글귀로 위로를 준 사람이 있다. 바로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이다. 삶의 모토를 낮밤으로 구분하여 낮의 모토는 “정신은 건조하다”, 밤의 모토는 “잘 숨어서 산 인생이 잘산 인생이다”라고 말했다. 


30년간의 건조한 낮밤을 반복한 결과 루만은 『사회의 사회』라는 최후의 저작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사회학 이론의 영역에서 난공불락의 성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순간의 유명세보다 건조한 꾸준함은 위대함을 남긴다. 2022년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오늘의 나에게 ‘건조한 꾸준함’이라는 모토를 선물로 주고 싶다. 유명해지지 않은 채로 그리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삶을 오늘까지도 잘 유지하고 있다면 대단한 작품을 설사 남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삶은 그런대로 괜찮은 삶인 것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2023년, 한의학이 보다 진화·확장할 수 있기를 기대”


지난달 사촌 오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2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제 겨우 52세이다. 소화불량 이외의 증상은 거의 없었고 신문 건강섹션에 자주 등장하는 등통증도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등 아프면 췌장암일까.. 다른 증상 함께 봐야 한다』매경헬쓰, 2022년 10월 25일,『이런 등 통증은 췌장암 의심해 보세요』헬쓰조선, 2022년 11월 7일). 평소와 다른 수준의 상복부 통증과 체중감소로 정밀 검진을 받게 되었고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췌장암 말기로 전신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 가족력도 뚜렷할 게 없었고 술, 담배도 적당했으며 운동으로 평소 건강관리도 잘해 왔었던 사촌 오빠는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암진단 자체를 받아들이고 말고 할, 본인의 심리를 추스릴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 2015년에는 암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불운(bad luck)일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Cristian Tomasetti, Bert Vogelstein, "Variation in cancer risk among tissues can be explained by the number of stem cell divisions", Science 2 January 2015: Vol. 347 no. 6217 pp. 78-81, DOI: 10.1126/science.1260825). 존스홉킨스 키멜 암센터의 과학자들은 통계모델을 만들어, 인체의 다양한 조직을 대상으로 하여, 주로 줄기세포가 분열할 때 발생하는 무작위 돌연변이로 인한 암의 비율을 측정했다. 그 결과, 모든 조직에서 발생하는 성인의 암 중에서 2/3는 주로 불운(不運), 즉 발암 유전자의 무작위 돌연변이 때문에, 나머지 1/3은 환경요인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흡연이나 불량한 생활습관도 발암 위험을 증가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 의하면, 상당수의 암들은 생활습관이나 유전요인과 무관하게, 주로 불운(즉, 발암유전자의 무작위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암들을 뿌리뽑는 최선의 방법은 조기검진이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로 치료할 수가 있다”라고 보겔스타인(Bert Vogelstein) 박사는 말했다. 


암도 난치성 장질환도 운이 없어서 발병한 것이라면 너무 억울하고 허무하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발병은 누구에게나 그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기에 가끔 또 자주 두려워진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스스로에게 끝까지 유지해야 할 마음가짐은 겸손과 감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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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아트뮤지엄, 가끔 친구들과 커피 한 잔 하러 들르는 파주의 명소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책들도 할인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상설, 비상설 전시회도 7천원이면 관람이 가능하다.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이번 겨울의 전시 주제는 『틈의 풍경 between, behind, beyond』이다. 『틈의 풍경』을 관람하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 끼여서(between) 늘 존재의 애매함을 과시하는 한의학은 시대에 뒤처진다는(behind the times) 비판을 자주 받아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현대의학을 넘어서는(beyond)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나만의 해석을 덧붙여 보았다. 

 

2023년에도 한의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건조한 꾸준함’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도 영화 『올빼미』의 류준열처럼 구경꾼에서 이야기의 주도자로 진화, 확장될 수 있기를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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