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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이상곤 갑산한의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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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허준의 스승은 누굴까?-3



허준은 말한다. “우리나라는 동쪽에 치우쳐 있고 의학과 약의 도가 끊이지 않았다.” 정기신론은 바로 우리 한의학의 뿌리이면서 면면히 흘러온 전통의학일 가능성이 많다. 이 같은 논리를 주도한 인물은 유의인 정작이다.



이는 16세기 중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 이북지역의 사상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성리학이 중심이였지만 도가·불교·양명학 등이 서경덕을 조종으로 널리 퍼졌다.

서경덕의 제자 중 서얼이였던 박지화는 도가 양생법에 매우 해박하였으며 유의 정작의 스승으로 그의 형인 정염과 절친한 사이였다. 즉 정작의 뿌리는 박지화이며 그는 동의보감의 이론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동의보감 초기편찬위원회가 정유재란으로 무산되고 난후 허준은 단독으로 저술작업을 계속한다. 전체적인 기획만 하고 구체적인 논리와 질병의 고리가 없는 상황에서 도가적인 논리를 유지하는 것은 허준 자신이 정작에 못지 않는 도가적 소양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미암일기’에는 1568년 30대 초반의 허준이 노자, 조화론 등의 책을 선물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점은 그의 정신적 토양을 가늠할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정작에 못지않은 의학실력과 도가 양생사상을 연마한 사람은 정렴이나 박지화, 서화담뿐이다. 정렴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서화담은 연배가 맞지 않는다. 박지화만이 허준에게 가르침을 줄 자격이 맞는 셈이다.



사대주의 성향이 강한 조선시대 중반에서 민족적 성향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동의보감의 민족적 색채 또한 박지화와 관련이 깊다. 선조는 동의보감 편찬을 하교할 때 “요즈음 중국의 의학서적을 보니 모두 조잡한 것들을 모아 볼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집례에서도 거론하였지만 중국에서 수입된 한의학은 금원사대가의 의학이다. 중국의학사에서 볼 때 가장 왕성한 의학학설이 출현한 시기다.



사고전서 총목에 “유가의 문호는 송에서 나뉘었고 의가의 문호는 금원에서 나뉘어졌다”라고 할 정도로 의학 발전이 왕성한 시기임에도 이를 조롱한 것이다. 그 자신감은 무엇일까. 문화는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방유취’를 통해 중국 한의학을 모두 수집하여 백과사전식으로 흡수하였고 향약집성방으로 토종약물에 대한 분석을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서경덕을 위시한 경기북부 일군의 학자들이 양생 도학 단학에 입각한 민족선도에 대한 학문적 역량을 축적한 자신감으로 조선의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작의 행장을 지은 허목은 허준과 같은 양천 허씨로 송시열과 예송논쟁을 벌였던 대표 유학자다. 그의 아버지는 허교로 포천현감을 지냈으며 박지화에게 의술과 도가수업을 받은 제자다.



허목은 후일 동사(東史)를 지었는데 단군문화 정통론을 내세워 단군세가 등 상고사계통을 확립하였다. 일화에 우암 송시열은 허목과 대립하였지만 심하게 병이 나자 의술로 이름이 높은 허목에게 처방을 부탁하였다. 허목은 비상이 든 약을 처방하여 주변사람이 펄쩍 뛰는데 그 약을 먹고는 우암이 나았다. 허목이 유학자로서 민족사학과 뛰어난 의술을 겸비한 것은 박지화의 제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의보감의 민족적 성향은 박지화, 허목의 아버지 허교, 허준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양생도인법은 단학, 황정경과 관련이 깊으며 동의보감에서 질병 조목마다 기재되어 있는 특징이다. 허목의 집안은 같은 문중인 허균과도 밀접하다. 허목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허교는 거창군수로 있을 때 서울에 올라와 사형이 언도된 허균의 후손을 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허균의 아버지 초당 허엽은 서화담의 제자로 오랫동안 수학한 바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박지화는 서화담의 제자다.



허균은 허준과 11촌간으로 가까운 집안이다. 나이는 십여세 아래이지만 허준을 내의원에 추천하며 평생 도와준 미암 유희춘의 제자다. 적서의 구별이 뚜렷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더라도 서얼철폐를 주장한 그의 사상적 특징에 비추어 서로 어울렸을 가능성은 높다.



특히 그의 서얼철폐 주장은 유희춘을 매개로 서로 어울렸을 가능성이 큰 허준의 신분특성과 미묘하게 맞물린다. 홍길동전으로 이름을 떨친 허균은 대역죄로 죽기직전 한정록 20권을 완성하였다.



이 책에는 50여 가지의 양생법이 실려 있는데 이중 불알을 만지는 회교(이슬람)건강법이 실려 있다. 외신을 만지는 양생도인법은 동의보감 정기신편에 유사한 방식이 실려 있는 점을 감안하면 허균과 허준, 허목, 서화담과 박지화는 다양하게 얽혀 있다.



동의보감의 논리전개 방식은 전대의 학설을 널리 흡수하고 자신의 의견은 간략히 개진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같은 논리전개방식은 서경덕 학파의 특징이다. 박지화는 서경덕의 제자다. 여기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허준을 내의원에 추천하였고, 허균의 스승인 미암 유희춘의 스승은 김안국이다. 허준의 조부였던 허곤의 사위아들로 허준과 5촌 당숙이 된다. 김안국은 후일 외할아버지 허곤의 행장을 기록하고 양천 허씨의 세보를 처음으로 수보할 만큼 양천 허씨 가문과 밀접하였다.



특히 1544년 화담 서경덕을 후릉참봉에 천거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양천 허씨 집안과 서경덕, 박지화, 정작은 지역적·학문적으로 밀착되어 있었다. 서경덕의 학문경향은 궁리와 격치를 중시하고 전대의 학설을 널리 흡수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개진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방식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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