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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6일 (화)

“불혹의 친구여 세상의 회유에 기죽지마라”

“불혹의 친구여 세상의 회유에 기죽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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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미담한의원 원장, “우리는 친구”



한의신문이 12월30일로 불혹의 나이를 맞았다. 전문지와 기관지 사이의 어중간한 모습에서도 전문지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온 세월이다.



협회의 얘기를 만족할 만큼 담아내지 못한다고 욕을 먹었고 밑으로부터의 얘기를 무시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그러나 한의신문은 어디까지나 언론이다. 독자들의 얘기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되지만 그들의 말을 무심코 흘려서도 안 된다.



정용철 미담한의원장(서울 성북구·상지대 93학번)은 한의신문과 나이와 생일이 같다. 그래서 한의신문에 대한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정 원장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이가 같다고 인터뷰하는 행운을 얻은 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이와 생일이 같아 정 원장을 주목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 없이 일부러 끼워 맞춘 것은 아니다. 그를 통해 한의신문이 일반 한의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가 살아온 인생 또한 궁금했다.



정 원장은 “한의신문을 보면 생동감이 없는 기사가 많다. 협회 관련 정책이나 회의 기사가 많기 때문이다”며 “일반 회원들은 실상 한방의료 정책 분야가 기관지에서 중시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사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고 뚝 잘라 말했다.



정곡을 찌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 원장은 “보통 한의사의 얘기들을 많이 실어 달라. 기자들은 발로 뛸 때 가장 멋있는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화제를 은근슬쩍 한의원 경영으로 돌렸다. 이번에는 정 원장이 잠시 딴 나라에 다녀왔다.



“어렵죠. 처음에 개원을 하면 환자도 알아서 오고 돈도 많이 벌고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간호조무사들은 자주 바뀌고 환자도 잘 오지 않고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또 환자 반응에 하루하루 희비가 엇갈리는 내 기분을 느끼면서 한의원은 경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죠.”



정 원장은 본래 건축학도였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두 번의 낙방 끝에 한의대에 입학했다고 했다. 암울했던 한약분쟁에 휘말려 유급을 당하면서도 한의사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러나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말 잘 되는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어요. 그러면서 그 많은 환자 중 일부는 나를 보고 오는 줄 알고 자신만만했죠. 그런데 막상 서울로 진출해 개원을 해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깨지고 당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지금은 먹고 살 만큼은 돼요.(웃음)”



그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사람냄새가 풍겼다. 상추 낀 이빨로 방긋 웃어도 밉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의사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꼈을 때가 언제인가. 정 원장은 “아들이 친구들한테 나도 우리 아빠처럼 위대한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기쁜 마음을 내비쳤다.



아이가 한의사가 될 미래에 변해있을 한의학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부터 정 원장의 최대 관심거리도 한의학이 좀 더 경쟁력 있는 학문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한의학적 색깔을 입힌 신기술을 많이 도입하고 한약의 제형 변화를 하루빨리 시켜야 돼요. 조화롭고 뛰어난 학문이 한의학이지만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재해석하는 것은 동시대 한의사들의 몫이거든요. 고유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독자들의 의식을 깨우고 트인 시야로 한의사들에게 세상이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 의무감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정용철 원장은 한의신문이 기관지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활짝 나래를 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불혹의 나이를 맞은 친구로서의 따뜻한 충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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