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부속 한방병원장 김 성 수
세계의학자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의학 성장 기대
문화적·학문적 특성 등 존중… 제도적 지원 필요
한국의 전통의학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전통지향적인 성향과 한국 전통의학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의학이 국가적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의학은 500년경 중국에서 전래되어 온 의학과 의술이 한국에서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새로운 의학 이론으로 정립되어 발전하였는데 대표적인 서적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있습니다.
향약집성방은 과거에 편찬된 한국의 의서들을 종합 정리하여 새롭게 출판한 것으로, 한국의 약재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고 동의보감은 중국에서 가장 발달된 의학이라 할 수 있는 금원사대가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아울러 역대 의서들을 총괄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편집하였는데, 이렇게 뛰어나고 보기에 편리한 서적은 일찍이 없었으며,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동의보감이 편찬됨으로써, 한국 한의학은 그 독자적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한국 한의학은 1900년경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사상의학의 출현입니다.
사상의학은 사람을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 네 가지 체질로 구분하여 각 체질에 따른 건강관리, 생리, 병리, 진단, 치료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기존의 체질론과는 다른 새로운 체질 이론을 도입한 독창적인 한국의 한의학으로 현재도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체질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한의사들이 한약 처방을 구성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임상에서 환자를 볼 때 경험하는 어려운 점 중 하나가 같은 질병에 응용할 수 있는 A라는 약과 B라는 약이 있을 때 A라는 약을 투여하여 낫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A약이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B 약이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고 또는 A나 B가 아닌 C라는 약으로만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사상체질에서는 체질로 인해서 약에 대한 반응과 효과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하며 그 체질적 차이를 감안하여 동일한 병이라 하여도 치료방법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국 한의학의 특징으로 공격이 위주가 되는 서양의학에 비해 보(補)하는 약물이 다양하게 활용된다는 점인데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봄과 가을에 약물을 통해 미리 몸을 보충하면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잘 견딜 수 있고 면역력을 강화해준다는 사실이 국민들 사이에 예로부터 상식화 되어있어 수술이나 양약을 복용한 후에도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보약을 복용하기도 합니다.
경희의료원의 세계화 방안
이와 같이 한국의 독창적인 의학 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믿음으로 인해 한국에는 총 11개 한의과대학에서 매년 700명의 한의사들이 배출되고 있으며 본인이 원장으로 있는 경희대학교 부속 한방병원은 약 350병동의 규모로 매년 수만명의 환자들이 내원하여 치료받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최초로 개원되고 최대 규모의 한방병원이기에 설립 초창기부터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으며 이에 대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원에는 외국 의사들이 방문하여 우리 의료진이 환자의 체질을 구분하고 이에 따른 처방을 내리고 침술을 시행하는 등 다양한 질환군의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보고 한방병원의 진료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는데 2003년과 2004년에는 총 305명, 2005년에는 72명, 2006년에는 29명의 환자가 방문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독자적인 진료실과 담당 의료진을 배치하고 있어 2003년과 2004년에는 총 774명, 2005년에는 887명, 2006년에는 615명의 환자가 본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이를 위해 본원에서는 17개의 외국보험회사와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향후 그 숫자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매년 1~2명의 의료진을 교환교수로 파견하여 대체의학의 최신 경향을 배우고 반대로 한국 한의학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경희대학교의 창립자이신 조영식 총장께서 한의학과를 설립 초기부터 신의학(제3의학) 창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셔서 본원에서는 현재 환자가 내원하면 양방과 한방을 동시에 진료를 볼 수 있는 협진 체계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중서의의 개념으로 양방과 한방의 진료를 동시에 보는 의사도 있지만 본원의 협진 체계는 동시 진료를 넘어 한방과 양방의 상호 장점을 살리고 단점이 보완된 새로운 의학을 도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방 해외 의료 봉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현재에도 봉사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작년에는 아제르바이젠에서 국가적 지원으로 한방병원이 개설되어 본원 의료진을 파견하여 진료 중에 있습니다.
결론
이제 내용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동양의학은 막강한 물질적 생산성으로 무장한 서양의학의 힘에 눌려 그 가치가 경시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양의학 일변도의 사회가 서양의학 자체적으로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각종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과 그 가치에 대한 재평가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동양의학이 세계의 주류의학으로 제자리를 찾는데 필요한 조건이 세계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가 여부입니다.
이러한 동양의학의 세계화는 세계 속에서 동양의학이 우수한 의학체계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궁극적으로 각국에서 동양의학의 세계화를 통해 지향해야할 바는 자국의 독자적인 전통의학이 세계 보편의학으로서의 동양의학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어느 한 나라의 지역의학, 동양의학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다 독창적인 의학으로 발전시켜 세계인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인이 각 국의 전통의학의 이론체계를 이해하고 그 효과를 인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근본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동양의학 임상효과에 대한 근거의 체계를 구축하는 과학화·표준화 과정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각 국 고유의 전통의학의 학문적 특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치료 기술의 개발과 이에 대한 임상연구들이 충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세계의학자들이 공유하는 보편의학으로서 동양의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동양의학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국가, 지역의 문화적·학문적 특성이 존중되고 정체성이 유지되면서 상호 공존과 협력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전 세계적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