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한의사는 거의 없어”

기사입력 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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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 웰빙 & 웰다잉 27
    “뭐가 목적이건 간에 대외적으로 연락이 닿는 한의사들이 거의 없어”

    김은혜 원장님(최종).jpg

     

    김은혜 치휴한방병원 진료원장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원장의 글을 소개한다.


    몇 년 전, 우연히 정계 인사들과 다양한 전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사유 모임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정치에 관심도, 지식도 전혀 없는 사람으로서 식당 문을 열자마자 나 같은 문외한조차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 그렇게 많을 줄 진작 알았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MZ세대 한의사로서 다른 세대, 다른 직업군을 가진 분들과 가볍게 이야기하는 자리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각자의 타이틀을 가지고 맛있는 거나 먹자, 하는 마음으로 오실 거다.” 

    분명 초대장을 줬던 사람의 소개가 맞는 말이긴 했는데, 온갖 기사들의 썸네일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는 풍채 좋은 분들을 코앞에서 마주하니 자연스레 뚝딱거려졌다. 


    또한 결과적으로 20명 남짓한 인원들과 테이블을 둘러앉은 후, 음식의 첫술을 뜰 수 있었던 건 약 2시간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그 공백의 시간 내내, 그들과 ‘가볍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쭈뼛거리며 착석하자, 어색한 분위기를 무릅쓰고 호탕한 인상을 가진 한 분이 총대를 멨다. 

    “우리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나 합시다!”

    (짝짝짝) “와- 좋아요!”


    “오- 몇 살이에요?”


    그렇게 시작된 인사에, 돌아가면서 짧은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XX회계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계사, XXX입니다.”

    “오- 요즘 연말정산 시즌이라 바쁘시지 않아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중요한 일하시네!”

    “저는 XX병원에서 근무 중인 의사, XXX입니다.”

    “반갑습니다. 무슨 과에요?”

    “내과입니다. 호흡기.”

    “오! 내 친구도 거기 있는데, 걔가 말하기를 아직도 코로나가(…중략…)”

    “가정법원에서 근무하는 검사, XXX입니다.”

    “혹시 모르니 연락처 좀 줘요~”

    “저는 개인 사무실 차린 변호사입니다.” “저는 XX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세무사입니다.” 등등 그렇게 대한민국의 모든 전문직들이 모여 나누는 인사가 오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한의사이고 XX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은혜입니다.”

    “오- 몇 살이에요?”

    “XX입니다.”

    “MZ네, MZ! 혹시 대화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줘요~ 옆에 분도 젊어보이시는데, 학생이에요?”

    “안녕하세요, XX대학교 대학원생 XXX입니다.”

    “무슨 전공이에요?”

    “철학과입니다.”

    “아 그럼, 지금 미국에서(…중략…)”

     

    김은혜원장님2.jpg


    “나만 혼자여서 괜히 주눅 들더라~”


    돌이켜보면 이미 첫 인사 때부터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전문’ 분야 종사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 MZ세대 한의사의 타이틀로 앉아있는 나는, 단지 ‘MZ세대’의 대표일 뿐인 기분이 들었다(정작 내 옆에 진짜 MZ 0X년생 친구가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대학원생에게도 본인의 시선으로 고찰한 사회의 실태를 묻는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그 누구도 내게는 무슨 과를 전공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그걸 누군가가 일부러 의도했을 것이라고 굳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하나 기억나는 건, “지인이 한약 먹고 임신했다는데, 그거 진짜 그럴 수 있냐?”라는 질문이 왔었던 순간이다. 그 물음에 쓴 웃음을 지었던 건, 그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납득할 만한 (또는 원하는) 대답을 완벽한 기승전결로 쳐내기에 내 지식이 짧았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그 자리에서 내가 유일한 한의사였다는 점도 영향이 적지 않았다. 각 테이블 당 20명, 총 3개의 테이블에서 모든 직업군의 최소 2명 이상이 서로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 한의사만 제외하고. 

    MZ세대인지 한의사인지 뭔지 모를 집단의 대표자로 혼자 앉아있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같은 전문 분야의 종사자끼리 나란히 앉아서 서로 어깨를 치며 맞장구를 치고, 눈을 마주치며 작은 담소를 나누며 그 무리만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참 뒤에 이 모임의 초대장을 줬던 사람에게 농담인 척, “나만 혼자여서 괜히 주눅 들더라~”고 말하며 물어봤다. 그에게 돌아왔던 대답은 이것이었다. 참고로 그 사람은 방송계 종사자였다. 

    “뭐가 목적이건 간에 대외적으로 연락이 닿는 한의사들이 거의 없어. 한의원은 많은데,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한의사는 거의 없어.”


    가장 조용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


    한의사가 타 전문직 대비 실제 인원수도 적을뿐더러 그 중에서도 의료 외 분야에 대한 참여가 떨어지는 편임은, 내부적으로도 많이 얘기가 나왔던 부분이다. 


    특히나 본인의 전문 분야만 잘하면 도태된다고 하는 작금의 흐름에서는 문제점으로 제기되었기도 했다. 이에 최근에는 세대를 막론하고 한의계 내부의 갈라파고스를 깨고 나오고자 했던 선두 주자들이, 꽤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집단이든 가장 조용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라는 말이 있듯, 이런 변화가 필히 긍정적인 흐름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는 없으나 그럼에도 달갑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마침내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는 우리의 분위기에, 말 한마디라도 응원의 기운을 보낼 수 있는 변화도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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