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의 의학, 고려의학”

기사입력 2024.07.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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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 한의사가 말하는 한의학과 고려의학의 유사점과 차이점
    김한성 원장(서울 관악구 청양한의원)·박수현 원장(경기 성남시 묘향산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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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한의학과 석사 4학년인 하재운 학생과 김성은 학생이 대학원 특성화 실습 과정의 일환으로 한의신문 인턴기자로 참여해 북한에서 고려의학을 전공한 이후 국내에서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한성 원장(청양한의원)과 박수현 원장(묘향산한의원)을 만나 고려의학과 한의학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내 앞 길 내가 정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탈주>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한을 벗어나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남한으로의 탈주를 준비하며 외친 한 마디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북한에서 고려의학을 전공하고 규남과 같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탈북하여 한의학으로 민족의학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탈북민 출신 한의사 두 분을 만났다.

     

    서울 관악구의 청양한의원 김한성 원장님은 고려의학 전공 후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탈북해 제77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2022년에 개원하셨고, 경기 성남시의 묘향산한의원 박수현 원장님은 청진의대 한약학부에 재학하다 탈북해 2001년에 국내 1호 탈북 한의사로 개원한 뒤 2010년 탈북민 최초 박사학위를 받으며 한의학을 이어가시는 분이다.

     

    한의학과 고려의학은 각각 한국과 북한에서 발전해 온 전통의학 체계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공존하는 독특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두 전통의학은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서 발전해오면서 독자적인 특징을 형성했다. 이에 본란에서는 한의학과 고려의학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며, 이들의 발전 과정을 조명해보고자 탈북민 출신 선배 한의사 두 분을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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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성 원장(서울 관악구 청양한의원)

     

    Q. 북한에서는 전문의 수련 과정이 있나요? 학부를 졸업하면 진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합니다.

     

    A. 인턴, 레지던트 개념은 없고 조교원이라고 실습을 합니다. 여기처럼 전문의라는 직책은 따로 없죠.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정해줍니다. “너는 어느 과로 가라”고요. 졸업하고 나면 어느 병원에 배치되어 2년 정도 조련사로서 실습을 합니다.

     

    그러니까 한방 전공이라도 병원 사정에 따라 양의사가 필요하면 양의학을 하라고 합니다. 약학에 대해서도 다 배웠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습을 3, 4개월 정도 하고 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북한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병원의 필요에 따라 결정됩니다. 반면에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라서 내 선택이 중요하지만, 북한에서는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Q. 남북 간의 한의학 치료 방식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서로 보완될 수 있는지요?

     

    A. 대부분 비슷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남한에서 임상을 해보니 침 치료에 약간 차이가 있더군요. 북한에서는 침을 놓는 것이 보다 섬세합니다. 북한에서는 침의 굵기를 조절하는데, 환자의 질환에 따라 굵기를 다르게 합니다. 사법이나 보법에 따라 침의 굵기, 유침 시간, 자입 깊이를 조절하죠. 남한에서는 환자분들이 아픈 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대중적으로 상용화된 호침을 사용하여 환자에게 아픔을 덜 주는 방향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북한은 환자분들이 침을 맞고 아프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아서 “불통즉통”의 방법을 보다 따릅니다. 이는 통하지 않으면 아프고, 통하면 아픔이 멈춘다는 의미로 이 원리에 따라 환자마다 침의 굵기, 깊이, 시간 조절이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차이점이 치료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Q. 북한에서는 한약 약재가 부족하여 침술이 더 발달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침술이 더 발달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북한에서는 약이 부족하므로 침으로 효과를 더 내려는 시도를 많이 합니다. 침술이란 기교를 부리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젊은 환자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양자법을 사용합니다. 침을 넣었다가 십자를 그리며 뽑으면 환자가 씻은 듯이 나아집니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침 보사법을 실전에 많이 적용합니다.

     

    협진 측면에서 북한은 양방 의사들도 침을 사용하고, 양·한방 협진이 잘 되어 침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은 양방과 한방 사이에 벽이 있어서 협진이 잘 이뤄지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북한에서는 고려의학과 임상 협진이 잘 되어 있어 환자를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Q. 북한에서는 양방 의사도 침을 놓을 수 있고, 한방 의사도 양약을 쓸 수 있나요?

     

    A. 네, 특히 진료소 같은 곳에서는 양방 의사가 침을 놓고, 한방 의사가 양약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엄연히 나뉘어져 있지만, 각 분야를 모두 배웁니다. 고려의학부에서는 양·한방 약학과 침구학을 더 깊이 배우고, 임상학부에서는 양의사들도 침구 동의학이라는 과목을 배웁니다. 그래서 양방을 졸업한 후에도 침을 써보니 좋다고 느끼면 많이 쓰게 됩니다. 반면에 침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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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현 원장(경기도 성남시 묘향산한의원)

     

    Q. 북한의 의과대학 체제는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나요? 한국과 비교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한국에서는 치대, 약대, 간호대, 의대, 한의대가 각각 나누어져 있는데,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청진 의대라고 하면, 그 안에 모든 의료 관련 학과들이 모여 있습니다. 구강학부, 약학부, 간호학부, 의학부, 동의학부가 전부 하나의 대학 안에 있습니다. 구강학부는 치과에 해당하고, 약학부는 약사를 양성하며, 동의학부는 한의사를 교육합니다. 이렇게 한 의과대학 안에 다양한 의료 분야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Q. 북한에서 한약학과 학생으로서의 경험이 현재 한의사로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북한 대학에서는 '농촌 동원'이라는 활동이 있습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은 농촌에 나가 강냉이(옥수수) 심기나 모내기 같은 일을 하지만, 의대생들은 ‘약초 동원’을 나갑니다. 산에 가서 창출이나 삽주 같은 약재를 20kg씩 채집하는 과제를 수행하죠. 이런 과정을 통해 약재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쌓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삽주나 세신이 어디서 잘 자라는지 직접 알고, 그것을 직접 먹어보고 효과도 체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경험이 한의사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한국의 한의대생들은 대부분 마른 약재를 보고 배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쌓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한국과 북한 환자군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A. 아무래도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영양 부족으로 인한 문제, 식체, 설사병 같은 소화기 관련 질환이 주로 발생합니다. 병의 종류가 비교적 단순하죠. 대부분 체하거나 설사병에 걸리고, 피부병도 흔합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어깨 통증, 허리 통증 같은 근골격계 질환과 소화기 관련 질환을 주로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치료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약재를 구하기 힘들어 단방 위주로 많이 사용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다양한 약재를 활용할 수 있어 복합 처방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약재의 접근성과 치료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Q. 한국에 비해 북한에서 양·한방 협진이 잘 이뤄진다고 들었습니다. 한약과 양약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한약이 좋고 양약이 좋다는 식으로 따지는 것은 잘못된 접근입니다. 마치 농사꾼이 퇴비와 비료를 함께 사용하는 것처럼, 두 가지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퇴비도 먹고 싶고 비료도 먹고 싶어하잖아요. 사람으로 비유하면 퇴비가 한약이고 비료가 양약입니다. 퇴비와 비료를 함께 줘야 식물이 튼튼해지듯이, 사람도 한약과 양약을 적절히 함께 사용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료만 사용하는 사람은 퇴비를 쓰면 안 된다고 하고, 퇴비만 사용하는 사람은 비료를 쓰면 안 된다고 하죠. 실제로 식물 입장에서는 퇴비도 먹고 싶고, 질소비료도 먹고 싶어합니다. 환자도 마찬가지로 한약도 복용하고 양약도 복용하면 좋은 거죠. 환자가 한약과 양약을 같이 복용하는 게 불편하다고 하거나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치 전통적인 한옥에 현대적인 전기, 에어컨, 난방이 들어가니까 살기 좋지 않냐고요. 그래서 전통적인 한약과 함께 양약도 같이 복용해야 한다고 말해주면 이해를 잘 합니다. 옛날식으로만 하자고 하면 불편하니까요.

     

    Q. 한의학은 ‘믿음의 의학’으로 한의사에 대한 믿음이 클수록 환자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으며, 치료 효과 또한 크다고 하셨습니다. 한의사로서 환자와의 라포 형성을 위해 어떤 노하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환자분이 오시면 먼저 충분히 대화를 해서 경계를 풀어줘야 합니다. 경계하는 상태에서는 침을 놓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내가 침을 잘못 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없도록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예를 들어, 상담할 때 환자분 이름이 김명예라고 하면 “이름이 참 좋네요, 아주 명예스럽네요”라고 말하면 환자가 웃게 됩니다. 또 생김새가 텔레비전 배우 같다거나, 혹시 친척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농담을 건네면서 분위기를 풀어줍니다. 이런 식으로 친근감을 형성하면, 침을 놓을 때 경계심이 없어서 치료 효과가 더 좋아집니다. 처음 방문한 환자의 경우, 이런 노력이 특히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침을 맞고 나서 더 아프다고 느끼거나, 치료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는 환자와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하재운 학생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김성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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