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 “지석영 선생, 조선 후기부터 이어져온 종두의 전통 계승” 강조
이태형 학술이사 “최신 기술·학문과 융합 발전하는 한의학…적극 활용해야”
[한의신문=강환웅 기자] 종두법을 도입한 한의사 지석영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되돌아보는 ‘제1회 지석영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이 15일 서일대학교 호천관 강당에서 개최된 가운데 이날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한의사 지석영 연대기’에 대해, 또한 이태형 대한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한국 종두법의 역사와 지석영’을 주제로 각각 발표를 진행했다.
김남일 교수는 발표를 통해 “지석영 선생은 1855년 서울에서 유의였던 池翼龍의 4남으로 출생해 아버지의 친구였던 한의사 박영선에게서 한의학과 한문을 배웠다”면서 “종두술은 스승이었던 박영선이 1876년 김기수 수신사의 수행의사로 일본에 가서 쿠가 카츠아키가 저술한 ‘種痘龜鑑’을 구해 지석영에게 보여줬고, 이후 1879년 부산 제생의원에서 종두법을 직접 배운 이후 1879년 충주의 처남에게 우두 시술을 처음으로 성공하게 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우두 시술 성공 이후 1880년 2월 우두국을 설치해 우두를 보급하기 시작했으며, 1880년 5월 김홍집의 수신사에 수행원으로 가서 일본 내무성 위생국 牛痘種繼所를 찾아가 種苗의 製造法과 採痘痂收藏法, 犢牛飼養法, 採漿法 등 완전한 種痘法을 학습한 이후 같은해 9월 귀국해 種痘場을 차려 본격적인 우두접종사업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남일 교수는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도입했기 때문에 의사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석영 선생의 생애를 조명해보면 평생을 한의사로서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석영 선생은 1914년 1월19일 발간된 ‘관보’에 따르면 의생면허 제6호 등록돼 있으며, 현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인 전선의생대회(全鮮醫生大會) 회장으로 1915년 선출되는 한편 동서의학연구회 회장 및 고문으로 활동키도 했다. 이와 함께 1916년 간행된 ‘동의보감’ 창간호에 게재된 ‘朝鮮醫學由來及發展論’을 비롯해 1933년 작성한 ‘漢方醫學講習書’에서도 한의사 지석영의 학문관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남일 교수는 “지석영 선생의 삶을 정리해보면 유의 집안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면서 한의사 박영선의 지도를 통해 학문적으로 성장하게 됐으며, 조선 후기부터 이어져온 종두의 전통을 계승했다”며 “평생을 한의사로 살면서 한의사 양성기관인 의학강습소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전선의회·동서의학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 한의학적 학술 활동과 한의사로서의 임상활동에 매진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태형 학술이사는 조선시대의 두창 치료 및 인두법·우두법 관련 내용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지석영 선생의 학술활동 및 우두법 도입 이후 한의사들의 치료적 개입 등을 설명했다.
이 이사는 조선시대 두창 치료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들 가운데 ‘언해두창집요’, ‘마과회통’, ‘시종통편’ 등을 중심으로 설명을 이어가면서, “이 가운데 허준이 저술한 ‘언해두창집요’를 보면 마마(두창, 천연두)에 걸린 왕자를 허준의 의학적 개입을 통해 해결코자 하는 부분이 보인다”면서 “당시에는 두창을 역신이라 하면서 떠받들어야 할 존재로 인식하면서 무속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허준의 의학적 개입은 획기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태형 학술이사는 지석영 선생의 학술활동 조명을 통해 ‘우두신설’ 발간, 상소문 上學部大臣書 작성 등을 통한 한의사로서의 삶을 조명했다.
이 이사는 “여러 문헌들을 고찰해본 결과 조선시대 정통의학을 시행하던 당시의 의사, 즉 한의사들은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당대 신규 기술인 종두법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도입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허준의 경우에는 무속에만 의존했던 두창에 대한 대처에 반발, 적극적인 의료적 개입을 주장했으며, ‘언해두창집요’와 같은 두창 치료 전문의서를 저술해 두창 치료에 유의미한 치료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약용의 경우에는 ‘임증지남의안’과 ‘의종금감’에 수록된 종두 관련 부분을 정리해 자신의 ‘마과회통’에 수록한 것과 함께 북경으로부터 우두법 관련 자료를 입수해 ‘신증종두기법상실’이라는 제목으로 ‘마과회통보유’에 수록했다”면서 “이종인도 ‘의종금감’을 포함한 당시 다양한 두창 치료 및 종두 관련 서적을 참고해 ‘시종통편’이라는 종두 전문의서를 저술했으며,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인두법을 시행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이사는 “지석영 선생의 경우도 자신을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섭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등 한의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저술 ‘우두신설’에서도 효과적인 우두 접종 이후 아이가 약하여 고름과 딱지가 제대로 생기지 않을 때 당귀와 녹용이 군약이 되는 ‘귀용군자탕(歸茸君子湯)’을 복용케 했고, 접종 후 제대로 상처가 합해지지 않거나 아물지 않을 때는 ‘생기산(生肌散)’이나 ‘금화산(金華散)’과 같은 한약 처방을 쓰도록 게재하고 있다”며 “이러한 일련의 역사를 살펴볼 때 조선에서는 지석영의 종두법 이전에도 인두법이 어느 정도 확산돼 있었고, 종두뿐 아니라 적극적인 한약 치료를 병행해 효과적인 종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적으로 적극 개입했으며, 지석영 선생 또한 종두법을 통해 두창 혹은 천연두에 대항해온 한의학의 의료적 전통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 이사는 “감염병에 대처하는 이같은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 현대의 한의사들은 코로나19 당시 환자들에게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를 시행하는 것에 제한이 있었으며,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권한 또한 주어지지 않았다”며 “이는 역사적으로 전염병과의 대치 최일선에서 당시의 최선의 의료적 성과를 토대로 대처해 왔으며, 현대의 백신 접종에 해당하는 인두법과 우두법 등 종두법을 발전시켜 온 한의사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허준, 정약용, 이종인, 그리고 지석영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 발전과 더불어 한의학이 함께 발전하는 것은 과거뿐 아니라 현대에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한의학이 최신 기술 및 학문과의 교류를 통해 다학제적 차원에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현대에도 반드시 장려돼야 한다”면서 “코로나19 진단 논쟁뿐 아니라 한의사들의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여러 관측 장치의 사용과 물질의 활용은 한의학의 발전뿐 아니라 더 나은 의료와 국민건강복리 증진을 위해 발전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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