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별 형신의 특성을 살려 나가는 ‘이론적 다원주의’
김명희 연구원
한의학정신건강센터(KMMH)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박사 수료
유엔(UN)본부는 지난달 21일 개최된 총회에서 인공지능(AI)의 안전한 사용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회원국 모두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생성형 인공지능 AI’를 의료분야에 활용하려면 △자율성 보호 △인간복지 안전 △형평성 △허위정보 경계 △지속가능 대응성에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WHO 지적대로 불확실하고 정확하지 않은 AI기술을 자칫 한의학에 접목할 경우 오히려 근본학리가 왜곡될 수 있어, 한의학은 철저히 ‘이론적 다원주의’ 관점에서 구조역학적 특성을 살려 연구하고 해석해 나가야 한다.
한의학은 수립될 때부터 ‘신체의 생장화수장’과 ‘정신의 혼신의백지’를 오기능의 발생기능, 추진기능, 통합기능, 억제기능, 침정기능으로 분석, 이를 역학적 상생상극 조율을 통해 구조역학적 동의생리학 이론으로 다뤄왔다.
한의학은 ‘무슨 병에는 무슨 처방식’의 질병 중심이 아니라 인간 체계를 전일로써 발현하는 현상으로 관찰하고 개체별 생활환경 현상을 분석, 이를 임상에서 수천 년을 두고 실증해 왔던 만큼 현대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의과학으로 다뤄 가야 한다.
정신건강한의학은 한의학의 복잡계적 특성을 살려 우울증, 번아웃,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의 치료에 AI가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뿐만이 아닌 동의생리학리의 자발적 자기대사력의 상생을 통해서만이 행복한 삶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한의학이 현재와 미래의학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원소의 결합체’ 또는 ‘나열식 해부학적 체계’를 취하지 않고 천인상응 형신일원(形神一元)의 구조역학적 이론체계를 통해 임상데이터를 구축하여 의과학의 깊은 연구를 열어가야 한다.
임상사례
진료 중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상기된 얼굴의 60대 남성이 ‘뭐라 뭐라’ 소리지르고 있었고 옆에서는 부인이 남편 팔을 붙들며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우선 진료실로 들어오게 한 후 먼저 부인에게 전후 사정을 들었다.
“의사인 남편은 4년 전 대학병원에서 조현병으로 진단받고 향정신약물을 복용하며 휴직 중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난동을 부리는 등 증상이 더 심해져 약물을 증량했는데도 여전해요. 이러다가는 또 다시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시켜야 하는 지...걱정이에요”라며 “선생님, 제발 남편을 어떻게든 진정시켜 주세요”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의사: (환자와 눈을 똑바로 맞추며)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환자: (초점 없는 눈빛으로) 관세음...보살...
한의사: 관세음보살을 보고 싶으세요?
환자: 여기...관세음...보살?
아내: (한숨을 쉬며) 그동안 형제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벽촌 시골에서 자란 장남인 남편은 장학생으로 의대를 졸업한 뒤 개원하면서 동생들을 모두 대학공부까지 시켰는데도 ‘형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 있냐?’고 대들었고 남편이 부모님께 마련해 드린 재산마저 ‘부모님은 늘 큰 형만 편애했다’라며 모두 빼앗아 갔어요. 지금은 모두들 형과 의절한 뒤 연락마저 없어요. 동생들을 끔찍이 아꼈던 남편은 그 일로 쇼크받아 무척 힘들어했어요. 옆에서 보는 저도 마음이 정말 속상해서...아이 참...
한의사: (환자와 눈길을 맞추며) 지금도 관세음보살같이 자애로웠던 어머니가 생각나고 늘 그리우신가 봐요.
환자: (감정의 눈물이 맺힌다)...
다음날 환자와 내원한 아내는 “어제도 약하게 난동을 부리긴 했지만 우선 급한대로 선생님이 지어주신 한약을 복용하고 남편의 눈빛을 맞춰가며 안심시키니까 차츰 진정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환자를 보니 면적설홍(面赤舌紅)하고 맥은 활부삭긴난하초허(活浮數緊亂下焦虛)했다.
한의사: (환자와 눈을 맞추며) 형제 많은 집의 장남으로 고생하신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셨네요. 자수성가하시고선 가족들의 생계와 교육까지 책임지셨고요.
아내: 법 없이도 살 양반이에요. 남편은 우리 가정보다도 항상 부모형제들을 먼저 챙기고 헌신했어요. 그런데도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동생들은 큰형과 형수인 저에게 대들고 욕하고. 남편은 아마 그런 게 더 감정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요.
환자: (한의사를 편안히 바라보며) 어머니가 사랑...사랑으로...
한의사: 어머니가 큰아들을 무척 사랑으로 키우셨네요.
환자: (소통, 교감의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의사: (다정히 눈빛을 맞추며) 환자분은 정말 어머니께 받은 많은 사랑을 그대로 동생들에게 몽땅 쏟아 부으셨네요. 너무너무 감동적이에요. 그동안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환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맺힌다)...
아내: 지금까지 남편이 이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선생님 눈빛을 보면서 진료받는 모습은 이번 한의원 진찰이 처음이에요. 실제 선생님 말씀을 듣고 치료, 복약하면서 남편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어 안심이 되네요.
‘혼신의백지’는 생활환경을 분석한 상생치유법
복약 6개월 후 내원한 환자는 더듬거림 없는 명랑한 목소리로 “안정을 되찾아 치유되고 있어 정말 기쁘네요. 요즘엔 나로 인해 고생한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며 자녀들과 대화도 많이 하니 감정이 편안해져 잠도 푹 잔다”며 “이제 곧 요양병원 촉탁의로 나가기로 했다”며 고마워했다.
위 사례에서 보듯 어렵게 자수성가한 장남으로 그동안 부모의 역할을 도맡아 해 왔던 환자는 생각지도 않은 ‘동생들과의 갈등’에서 온 배신감, 억울, 분노, 의절의 슬픔을 달고 살아왔으나 필자와의 지지적 눈빛으로 소통, 교감과 침구시침, 복약하여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도록 해 자발적 자기 대사력 회복으로 치유됐다.
‘심한 불면증, 두통, 전신 신경통’을 앓고 있던 환자에게 필자는 내경의 ‘상혼(傷魂)하여 광망부정(狂忘不精)으로 정상(正常)을 상실(喪失)한 칠정상’으로 진단하여 ‘간양상항, 울화병, 과로로 인한 정혈구허’로 변이증후군을 변증·분석해 이를 오신의 ‘의백지’기능을 안정시키는 EFT요법, 지언고론요법, 경자평지요법, 정서상승요법, 오지상승위치, 이정변기요법 및 사신총, 신문혈, 신정격, 가감지백지황탕 2배방을 1일 4회 복용으로 침구·방제해 정확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정신건강한의학이 미래에도 세계화,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신체 일변도의 치료에서 벗어나 형신일원의 구조역학적 동의생리학리를 바탕으로 한의학 임상에 적용할 때 비로소 ‘정상과학시대’에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의과학 혁신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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