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회복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 희망찬 삶으로
김명희 연구원
한의학정신건강센터(KMMH)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박사 수료
정부는 “올 3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켜 국민의 신체에서 정신에 이르기까지 정신건강을 국정어젠다로 삼아 해결하겠다”라고 발표했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4년여가 지나가면서 사회우울증 등 무너지고 있는 마음건강 치료생태에 대해, 정부가 나서 새로운 정신건강 정책을 ‘국정의제’로 총괄 해결하기로 한 것은 ‘정신건강 의과학시대’가 범국가적 담론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양방 정신건강의학계 역시 공히 ‘국정의제’에 보조를 맞출 실천방안들을 도출하고 각기 학리와 연구 방향에 맞는 보다 효용성 높은 정신건강 임상의학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이미 수천 년을 두고 형신(形神)의 기층부로써 木의 발생기능 활동(生, 魂), 火의 추진기능 활동(長, 神), 土의 통합기능 활동(化, 意), 金의 억제기능 활동(收, 魄), 水의 침정기능 활동(藏, 志)의 오행기능을 인간 개체 생명력에 대해 ‘몸과 마음’의 구조역학적 동의생리학리로 관찰·연구해왔다.
정신건강한의학에서는 개체별 노·희·사·우·비·공·경 등 스트레스로 인한 욕구불만, 정서갈등, 충격, 억압, 긴장, 불안, 초조, 우울, 무기력감 등 모든 ‘몸과 마음’의 병증들을 개인의 특성과 환경 및 생활조건에 따라 혼·신·의·백·지 오기능의 역학적 상관관계의 조화를 통해 치유해 왔다.
오늘날 전 지구적 환경변화와 온난화로 기후가 위협받고 있는 인류세 시대에 있어서도 정신건강한의학은 우울한 지구생태환경에 대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상생으로 회복시킬 ‘희망의 의과학’인 것이다.
정부가 금년부터 보건안보개념으로 삼아 추진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 국정어젠다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정신건강한의학계도 효용성 높은 임상경쟁기반과 연구개발을 위한 배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상사례
40대 후반의 마른 체구의 남자가 노모의 부축을 받으며 힘없이 내원했다. 칠순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큰애가 대학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여태껏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머리 아프고, 잠도 못 자고 음식도 안 먹고 불안해하는 것은 여전하다”면서 “일단 밥이라도 먹을 수 있게 제발 살려 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환자를 망문문절 진찰해보니 면부황(面浮黃), 중초동결산맥(中焦動結散脈)하였다.
한의사: 아니,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요?
어머니: 일주일째 연락이 안 되어 부랴부랴 큰아들 집에 가봤더니, 글쎄 직장도 못가고 방 안에만 누워 있더라고요. 도대체 며칠 동안 밥도 안 먹었는지, 방구석에는 술병만 나뒹굴고 있었고 며느리도 집 나간 지 한참 되었다고. 손주도 군복무 중인데 나마저 늦게 갔더라면 아마 뭔 일이 나 있었을 거예요.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렁거려요.
한의사: 정말 어머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어머니: 곧바로 집에 데려왔는데도 길길이 뛰며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살아서 뭐하냐? 직장도 사표 냈다’며 화만 내고 있어요. 저렇게 말라 기운이 없으니 화장실 가다가도 몇 번씩 넘어지고. (한숨을 쉬며) 이 어미 속도 바짝바짝 타요.
한의사: 아휴, 심려가 많으시네요. 잠시 아드님과 상담해볼게요.
어머니: (눈물 맺힌 얼굴로 아들을 두고 진찰실을 나가며) 선생님만 믿을게요.
한의사: (환자와 눈을 맞추며) 그동안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환자: (힘없는 목소리로) 애 엄마가 작년 봄에 갑자기 파산 신청을 하고 집을 아예 나가버렸어요. 그간 저와 통 말도 안하고 지냈는데. 그때부터 속을 태웠더니, 지금 몸무게가 42키로 밖에 안돼요.
한의사: 저런, 어찌 그런 일이...
환자: 10년 전에도 아내가 사고 쳐서 사채업자들에게 제가 밤낮없이 시달렸거든요. 그때도 간신히 수습했는데, 이번엔 더 크게 사고를 치니, 그 일 이후로 저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는데, 이젠 울화통만 치밀어 술만 마시게 됐어요.
한의사: 많이 놀랐겠어요.
환자: (화난 목소리로) 네, 애 엄마가 차라리 자기 명품백을 사거나 사치하는데 돈을 썼으면 말도 안 해요. 평소 절약하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 많은 돈을 대출받아 어디에다 쓴 건지. 이번에도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며 늦게 들어오고 하더니 귀가 얇아 투자명목으로 또 사기당한 것 같아요. 아내가 사고 친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 잠도 안 오고 너무 고통스러워요.
한의사: (눈을 맞추며) 환자분은 그동안 소중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네요. 오랫동안 힘들었을 텐데도 어떻게 참고 견디셨어요?
환자: 처음에 아내가 일을 저질렀을 때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아들한테는 엄마가 있어야 하니까 너무너무 화가 나는데도 그 동안은 제가 꾹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한의사: 아들을 무척 사랑하시는군요.
환자: (눈물이 맺히며) 아들에게는 늘 아낌없이 많은 것을 주고 싶죠. 부모님도 장남인 저에게 특히 더 헌신하셨던 것처럼요.
한의사: 대단하세요. 환자분은 정말 책임감이 강한 훌륭한 가장이시네요.
환자: (눈빛을 반짝이며) 선생님과 진솔하게 상담하니 마음도 편해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가 생기네요.
혼·신·의·백·지는 마음건강의 창발적 자기대사력
복약 석 달 후 살이 올라 내원한 환자는 “선생님의 진심어린 공감 속에 정성으로 지어주신 한약을 복용하면서부터는 원망과 우울한 마음도 꺾이고 의욕이 살아나, 조만간 직장에도 복귀할 예정”이라며 “요즘은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뻐했다.
위 사례에서 보듯 필자는 ‘아내의 독단적인 금융대출과 파산’으로 시작된 억울함, 부부갈등, 무력감 등 스트레스로 인한 이상변이의 병증을 기초개념으로 외부로 향한 노(怒)의 울분과 내면을 향한 반추사고의 사(思)로 편항(偏亢)된 환자의 생활현상을 분석, ‘부모님과 아들에 대한 사랑, 가정에 대한 성실과 책임감’의 유스트레스로 전환시켜 자발적 자기대사력으로 회복시켜 치유했다.
‘심한 우울증, 경계정충, 불면증, 불사음식, 수차례 설변’을 겪고 있던 환자에게 필자는 내경의 ‘출척사려(怵惕思慮)의 정지변동이 정신면과 신체면의 병증으로 나타나 공구(恐懼)로 멍하니 맥이 빠지고 탈육(脫肉)’한 것으로 진단하여 ‘간담허, 화병, 사려과다, 비양허’로 변이증후군을 변증·분석하여 이를 오신의 혼·신·의 기능을 조화롭게 하는 지언고론요법, 정서상승요법, 오지상승위치, 이정변기요법 및 가감귀비온담탕으로 침구·방제해 정확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정신건강 국정의제 시대를 맞아 우울한 사회에서 벗어나 인류의 행복한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범 정신건강한의학계와 산·학·연·병이 다 함께 ‘신체에서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형신일원의 구조역학적 동의생리학리에 기반한 임상 실증 연구 성과를 높여 신보건의료의 국가정책을 공진화(Coevolution)하여 함께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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