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의학과 미술은 ‘치유’라는 개념에서 닮아있다. 한지죽으로 생명을 해석하고, 연출하는 우지연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한지채색 작업을 하는 우지연 작가다. 동양화를 전공해서 화선지, 종이류를 많이 접해보았는데, 좀 더 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전통적이면서도 질박하고 흡수성이 뛰어난 한지죽을 선택해 꽤 오랫동안 한지작업을 해오고 있다.
Q. 작품에서 나타나는 질감의 형태가 굉장히 강렬하다.
내 작품은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시각적 특징을 보이는 미니멀 회화와는 차별화된, 물성을 극대화한 촉각적인 특징이 있다. 한지죽은 촉각적 질감의 형태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재료다. 한지죽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한지죽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입체성과 물질성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더불어 내구성, 질박함,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흡수성과 깊이감 등 물질이 주는 순수성과 진실성이 있고, 자연친화적 아날로그의 특징을 가진 재료이기 때문이다.
Q. 왜 작품에서 산(山)을 소재로 다루고 있나?
예전에 샹들리에를 주요소재로 인간의 욕망, 과시주의를 표현했다. 화려하고 메탈릭한 소재들을 질박한 한지에 표현하는 작업을 꽤 오랫동안 이어왔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하나 뿐인 동생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 붓을 잡기조차 힘든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그 이후로는 ‘생명이 있는 것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키워가면서 지난날의 감정과 기억,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 생명을 표현하는 소재로 산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생성과 소멸, 채움과 비움의 반복과정, 즉 순환을 이어가는 생명력 넘치는 곳이며, 어떤 비밀스러운 기운을 간직한 세계다.
‘깊고, 짙은’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어울리는 산을 나의 내면과 세상이 만나는 하나의 삶의 장 또는 존재론적 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 작업의 근간은 반복과 쌓음이다.
이 반복의 개념은 산의 외형적 모습이나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적 흐름에서도 포착된다. 예를 들어 나뭇잎과 그것이 이루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시간 흐름 속에서도 그 반복은 어떤 규칙적 운율을 머금은 채 그들만의 미감을 뽐내곤 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닮아있다. 이런 반복적 흐름 속에는 다양한 행위와 희노애락의 감정들뿐만 아니라 삶의 불가해성과 무한복잡성의 모습들도 담겨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반복의 흐름 자체가 호흡하며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Q. 이번 전시회의 제목이 ‘BREATHE’이다.
그렇다. 산을 비롯해 이번 전시의 소재 중 하나인 버드나무 가지 등 살아있는 자연의 모든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작업으로 연결시켜 표현했다. 동생을 떠나보내고 나서 많은 고민과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결론적으로, 위대하게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위대하고 더불어, 살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동양화가로서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표면적인 것도 그렇지만 정서적인 특성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한국 옛 것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현대에도 거부감 없이 재해석해 표현할 수 있다.
Q. 평소 한의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한의학에 상당한 관심이 있고 또 필요에 따라 한의원을 자주 가는 편이다. 양방은 처방적인 부분은 강하나 예방적인 부분은 조금 약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중간지점으로 한의학이 대두되는 것 아닌가 싶다.
작업을 할 때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히 큰 데 앞으로도 한의학의 도움을 받아 체력관리를 잘 해나가려 한다.
Q.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동양화가로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어떤 분야든 너무 국수주의로 흐르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작업적인 목표도 전통적인 것을 너무 고리타분하거나 뻔하게 표현하지 말고 현대적으로 모던하게 풀자는 것이다.
같은 관점으로 한의학의 우수성은 모두가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양방과의 협진이나 일반인, 특히 젊은 세대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
상당수 한의사 분들께서 이런 부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는 것 같다.
Q. 한의신문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나도 몸과 마음이 다운되면 붓조차 들기 싫어진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한의신문 독자 한 분 한 분 모두가 저의 이번 전시주제처럼 호흡하며 살아있는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건강을 잘 돌보며,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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