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17일 저녁,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 대만의대병원 국제회의센터에서는 70명 가까운 한국대표단이 부르는 ‘펑요우(朋友)’가 울려 퍼졌다. 조우화지엔(周華健)과 안재욱이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다. 과연 한국사람 노래 잘 한다.
바로 앞에 일본대표단이 앙코르도 없이 염불 같은 두 곡을 부른 것과는 매우 비교된다.
올해는 타이베이에서 제88주년 國醫節 기념행사와 제10회 台北國際中醫藥學術論壇이 동시 개최됐다.
國醫節의 역사는 1920년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외 유학을 다녀왔던 余雲岫, 魯迅, 孫中山, 胡適, 梁啓超, 嚴復, 丁文江, 陳獨秀 등 중국 대표 지식인들이 中醫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1928년 國民黨 정부의 왕징웨이(汪精衛) 行政院長이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연설했고, 그 대표적인 주장이 中醫를 폐지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는 서의사가 천명 정도이고 중의사는 80만명이 있었다.
물론 전국에서 엄청난 반대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衛生部에서 第一次 中央衛生委員會議를 소집하여 각 市의 위생국장, 각 省의 병원장, 의대 학장 등 전국 각지의 저명한 西醫 포함 120명의 위원을 모으고 사흘간의 회의를 거쳐 中醫를 도태시키는 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상하이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반대가 들불처럼 일어나자 결국 국민당 정부는 그 의안을 폐지시키기에 이르렀다.
당시 국민당 내에서 中醫 폐지 반대를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천리푸(陳立夫) 선생이다. 그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최측근 참모였고, 30대 후반에 교육부 장관을 지내면서 40대 초반에는 TIME 표지를 장식했던 명망가이다.
49년 패전한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넘어와 총통 정치고문과 孔孟學會 이사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末年에 타이쫑(臺中)의 中國醫藥大學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봉직했다.
그 대학 출신들이 중의사와 서의사 면허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대륙에서도 기념하지 않는 國醫節 행사를 대만에서 하는 것은 오로지 천리푸 선생 때문이다.

필자가 30년 전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약대학의 교환교수를 할 때 여러 번 뵈었고 귀국 후에는 도올 김용옥 선생과 타이베이 쓰린(士林)의 댁을 방문하여 같이 담소를 나눈 적도 있었다. 90년 대만을 떠나올 때 써주신 휘호는 족자에 남아 지금도 필자의 집무실에 걸려 있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손님이 올 때면 그 족자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곤 한다. 그분의 100세 생신잔치에 초청받아 갔었는데, 그때 하객들에게 나눠준 “我怎麽會活到一百歲: 내가 어떻게 100세를 살 수 있었는가?”라는 책은 그분의 양생비결이 담겨 있고 건강강좌를 할 때면 인용하고 있다.
중국에서 현재의 중의학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준 지도자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라면 대만에서는 단연 천리푸 선생이다. 한국에도 그런 어른이 계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3월18일 개회식 때 라이칭더(賴清德) 행정원장(국무총리에 해당)과 천쓰종(陳時中) 衛生福利部 장관 등 정부 고위층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재작년 행사에는 당시 총통 당선자였던 차이잉원(蔡英文)이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었다.
의사 출신인 라이 행정원장은 원고 없이 즉석연설을 하는데, 내용이 깔끔하고 중의계의 실정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대만의 중의계가 政府와 평소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작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동양의학회(ISOM) 이사회에서 대만의 린자오껀(林昭庚) 교수가 차기 회장으로 선출될 때에도 차이잉원 총통이 電文을 보내 격려할 정도이다. 이어 축사한 천 장관 역시 의사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매우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한국 보건복지부의 한의약정책관에 해당하는 衛生福利部 中醫藥司長인 황이차우(黃怡超) 박사도 양밍의대 교수 출신 의사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대만 전체 중의사가 만명이고 그 가운데 복수 면허자가 4000명이니 양 의료계간의 갈등이 한국처럼 심각하지는 않다.
이번 행사에 36개국의 400명 가까운 외국인들이 참가했다.
그중에서 한국대표단이 가장 큰 규모이다. 전 · 현직 협회장, 학회장, 대의원총회 의장, 감사, 서울시회장 등 한의계 대표인사들 포함 약 70명이 대거 참가해 본 행사의 주가를 올려 주었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서울시한의사회는 타이베이시중의사공회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다져오고 있다.
올해에는 양국의 지부 협회들까지 단체로 교류협정을 체결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대만과의 斷交가 있었던 1992년 11월 제7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가 타이쭝에서 열렸었다.
당시 개회식 때 안학수 협회장께서 “외교는 짧고 우정은 길다”는 축사를 하자 그들은 섭섭했던 마음에도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응답했었다.
역시 한국과 대만이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일 수밖에 없다.
인간적 친선 교류 위주인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참가자들은 포럼 기간을 전후로 개인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주로 방제학과 침구학 분야의 유료 강좌이고, 처방 설명과 침법 위주로 청중들 간에 제법 인기가 있었다.
역시 중국인들은 실리적이고 실속이 있다. 우리들은 우정의 단계에 머물고 그들은 師弟간의 존경과 배려와 실리를 주고받는다.
또 그들은 행사 때마다 명예이사장, 명예회장 등 ‘명예’ 자가 붙은 자리를 많이 마련한다. 선배들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그것은 전통이고 또 그 전통은 이어지는데, 그 사회는 과거와 현재를 엮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선후임간의 지독한 단절이 편만한 우리 한의계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이다.
개회식이 끝나고 본회의장에서 필자는 ‘한의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소회의실에서 ‘韓醫藥育成法’에 대한 좌담회가 中華民國中醫師公會全國聯合會 주최로 열렸다.
김정곤 전 회장이 한의약육성법의 추진과정에 대해, 최혁용 회장은 그 현재와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한의약육성법에 “과학적으로”라는 표현이 추가된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향후 韓醫藥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최 회장은 그를 기반으로 한의사가 환자 치료를 위해 역할과 도구의 제한 없이 침과 한약을 중심으로 충분한 의료를 실시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그와 병행하여 중국식 의료일원화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처럼 한국과 대만의 전통의학계가 서로 배우면서 사다리를 제공함으로써 각기 양국의 전통의학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거의 1세기 전의 위기를 현재와 미래의 지속적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國醫節을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국의절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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