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지난 1995년 3월 첫 발을 내딛은 꽃마을한의원의 명경의료재단이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여성 1호 한의학 박사이자 ‘서초동 삼신할미’라는 별명을 얻은 강명자 원장은 지난 30년간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며, 한의학의 무궁한 가능성을 확장해 왔다. 이에 본란에서는 강 원장이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강명자 원장(77)은 1985년 경희대 대학원에서 한의학박사를 취득한 국내 여성 1호 한의학 박사다. 꽃마을한의원과 꽃마을한방병원을 운영하면서 난임과 불임치료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어 ‘서초동 삼신할미’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불임(난임)치료 성공률이 40% 수준으로 많은 임신 성공 사례를 쌓았다.
현재는 부인과 진료뿐 아닌 건강검진센터, 치과 등으로 확대 운영하면서 진료 분야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제고시키고 있다.
특히 진료 활동 이외에도 대한약침학회장. 한방부인과학회장, 대한여한의사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늘 한의학의 발전과 한의계 의권 신장의 중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Q. 재단 30주년을 맞는 소회는?
: 재단 설립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지났다. 난임 연구, 의료관광, 의료봉사, 건강 강좌를 비롯 다산철학 학술대회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모시는 등 한의원만 운영했다면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직접 실행할 수 있었다. 그런 성과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줬다는 점이 큰 보람이었고, 많은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Q. ‘서초동 삼신할미’로 불리게 된 계기는?
: 당시만 해도 난임 연구와 치료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여성으로써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후 난임 치료 성과로 많은 부부들에게 새 생명을 안겨주었다.
임신 소식을 전한 환자분이 ‘삼신할미가 따로 있나요? 원장님이 바로 삼신할미죠’라고 하셨다. 서초동에서 개업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서초동 삼신할미’가 된 거다. 수많은 가족의 웃음을 지켜보는 게 삶의 큰 기쁨이었다.
Q. 30년간 쉽지 않은 일도 많았을 것 같다.
: 세상만사는 음양의 파도를 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힘든 음(陰)의 시기라도 반드시 양(陽)의 기운이 일어나 밝은 내일이 온다고 믿으며 버텼다. 이 믿음이 수많은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었다.

Q. 지난 삶에서 변명하고 싶은 것은?
: 한평생 의료에 몰두하다 보니 가족에게 충분히 정을 나누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는다. 딸들에게 엄마로서 따뜻한 시간을 주지 못했고, 남편에게도 많은 관심을 쓰지 못했다. 모든 가정사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내 길만 달려온 것 같다. 하지만 직접 표현하지 못했을 뿐, 남편과 딸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Q. 가장 큰 후회와 최고 행복했던 순간은?
: 살아오면서 모든 것이 내 노력만으로 된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힘, 곧 신의 손길이 늘 함께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돼 요즘은 신앙생활에 더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최고 행복했던 순간은 나의 삶이 MBC-TV ‘성공시대’에서 방영돼 널리 알려졌다. 그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니 세상이 모두 바뀌어 보였다. 그때 참 행복했다.
Q. 내게 한의학이란?
: 한의학은 내게 주어진 하늘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평생 노력을 많이 했어도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다시 태어나도 한의사가 되고 싶고, 그때는 모든 병을 정복하고 싶다.
Q.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한의학은 선조들의 지혜가 응축된 보물이자, 시대가 변해도 그 원리는 불변한다. 다만 현대인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려면 과학적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한의학의 설명을 위해서는 양자물리학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여러분들이 선택한 한의학은 진리에 가까운 학문이다. 잘 선택하셨다.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연구해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하시길 바란다.

Q. 부군께서 재단 설립과 운영에 큰 역할을 했다.
:명경의료재단 설립도, 검진센터 운영도 모두 남편 황경식 교수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서울대 철학교수로 사회정의를 전공한 남편이 비영리 의료재단을 세워 사회에도 공헌하고 한의학도 발전시킬 수 있으니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첫 걸음이 돼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그는 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아 30년간 묵묵히 헌신했다. 늘 조용히 뒤에서 도와준 남편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Q. 앞으로의 계획은?
: 그동안 임상과 연구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리해 후배 한의사들과 나누고 싶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