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론은 한의학의 약효분석 방법 중 하나다. 옛날에는 약물의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므로 사람의 오감을 동원해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氣)라고 하면 너무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여서 애매모호해 잘 와닿질 않지만, 요즘 말로 하면 감(感), 느낌, feeling 정도의 뜻이 아닌가 싶다. 미(味)야 혀에 느껴지는 맛감각을 뜻하는 것 일 게다.
필자는 약 150여종의 한약을 각 약물별로 농축하면서 감초와 녹용을 농축한 후 맛을 보면서 특이한 점을 느꼈다. 감초와 녹용의 성미(性味)를 본초학책에서 보면 감초는 성평(性平), 자후미온(炙後微溫), 미감(味甘), 무독(無毒)이라고 되어 있고, 녹용은 성온(性溫), 미감함(味甘鹹), 무독(無毒)이라고 쓰여 있다. 즉 감초의 성질은 중간정도 되고 구우면 약간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맛은 달고 독이 없다는 의미이고, 녹용은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고 짜며 독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감초가 달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인데 녹용을 농축해 맛본 사람이라면 이런 의심을 아니할 수 없다. 녹용은 사슴의 뿔이므로 아무리 혈액을 빼냈다 하더라도 혈액 등 체액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오래 달여 농축하면 정말 짠맛이 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녹용이 달다고 표현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뼈국물과 같은 녹용 달인 물이 달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점을 오래동안 곰곰이 생각하다 우리말의 뜻이 같은 말이라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즉 달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달다는 뜻도 되지만 맛있다는 뜻도 된다는 사실이다. 달다는 말은 글자는 같아도 문맥상 △매달다 △긴장, 불안으로 애타고 답답함, 열받아 뜨거워짐, 부끄럽거나 흥분, 분노로 뜨거워짐 △말에 토를 달다에서처럼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해줄 것을 요구하다 △꿀이나 설탕처럼 달다는 뜻 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그 뜻이 확장되어 꿀이나 설탕처럼 달다는 뜻 뿐만이 아니라 음식이 입에 당기도록 맛있다거나 더하여는 기분에 마땅하여 기껍다는 뜻까지도 있다.
이렇게 놓고 생각해보면 녹용이 달다는 것은 꿀이나 설탕처럼 달다는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뼈국물이 설탕처럼 달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옛 사람들은 왜 녹용의 맛을 달다고 표현해 놓았을까?
맛보면 설탕처럼 달지 않은데 달다고 표현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옛사람들은 뻥이 심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상상으로 또는 이론적으로 써놓은 글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의 달다는 것은 누구나 맛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을 달다고 표현한 것이다.
오랫동안 이유를 ㅤㅊㅏㅊ지 못하다가 어느날 탁 와닿는게 있었다. 이거구나! 녹용을 맛보고 달다고 한 것은 미원이나 다시다처럼 조미료 맛이 나는 것을 달다고 표현한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해보니 모든 의문이 풀리지 시작했다. 역시 뻥이 아니고 실제 오래 달여서 맛본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구나. 이런 옛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표현을 뻥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미안해졌다.
녹용을 맛보면 실제 달다. 즉 조미료와 같이 맛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수에 뼈를 고은 것과 같아서 감칠맛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달다는 것은 설탕이나 꿀처럼 달다는 말이 아니라 조미료를 넣은 것처럼 맛있다는 것을 달다고 표현한 것이구나.
이 점을 깨닫고 나서 감초를 다시 살펴보니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초의 효능을 보면 생으로 쓰면 청열해독, 밀자시 보비익기, 윤폐지해 그리고 특이하게도 다른 약에는 없는 효능인 조화제약(調和諸藥)이라고 쓰여 있다. 도대체 감초가 어떠하길래 모든 약을 조화시킨다는 것일까. 무슨 특이한 성분이라도 있어 모든 약을 조화시켜 어울리게 한다는 말인데, 이것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학생 때에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줄줄이 외우기 바빴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지금 왜? 왜? 이유를 따져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다. 당연히 다 알고 있다고 여기고 지내며 그냥 약방의 감초라고 처방마다 요식행위처럼 감초를 집어 넣었는데 사실 왜 모든 약을 조화시킨다는 것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외우라고 해서 외운 것이고 옛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다시 곰곰이 따져보면 감초는 무슨 안 어울리는 다른 약들은 특이한 성분으로 어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약의 고약한 맛을 맛있게 먹기 좋게 한다는 뜻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요즘말로 하면 감초는 감미료 맛처럼 한약의 맛을 좋게 하여 여러 가지 고약한 한약을 맛을 먹기 좋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조화제약(調和諸藥)인 것이다.
한마디로 약방의 감초의 역할은 감미료였던 것이다. 요즘처럼 감미료가 없어 단맛이나 조미료 맛을 낼 수 없었던 탓에 한약 중에서 가장 단맛을 가진 약중 하나인 감초가 감미료 역할을 수행하여 약방의 감초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옛날이야 감미료가 없었으므로 그렇다손 쳐도 요즘같이 감미료가 넘쳐나는 시대에 지금도 여전히 조화제약을 외치며 비싼 감초를 꼭 넣어야만 한는 것일까. 감초보다 더 조화제약을 잘하는 감미료가 넘치는 시대에 말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의 조화제약이라면 감초보다 더 맛있고 흔하고 싼 것이 많으므로 다시 말을 새로 만들어야 할 성 싶다. 약방의 감초가 아니라 약방의 감미료!
요즘 세상에 음식이든 음료수이든 건강식품이든 감미료가 빠지면 먹을 만한게 없다. 그만큼 거의 모든 먹거리에는 감미료가 들어 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감미료에 맛들여져서 실제 맛보다 감미료 맛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취향을 거부하는 곳이 딱 한군데 한약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조화제약을 외치며 겨우 감초 가지고 맛을 내려고 하니 말이다.
감초는 비위를 도우고 열을 약간 내리기도 하며 항이뇨작용을 하는 등의 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화제약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보면 이제 감초는 약방의 감초 자리를 내놓아야만 한다. 감초보다 더 나은 감미료가 널렸기 때문이다. 또한 한약에서 감초의 역할을 내려놓고 감초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적어도 조화제약이라는 효능은 내려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약방의 감미료!
이렇게 생각을 달리하고 보니 다시 학생 때 배운 본초학책 그것도 별 의미도 없어 보였던 기미론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여겼던 것과는 달리 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 보게 되었다. 지금 이해가 안되지만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흔히 아이디어가 머리에서 나온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디이란 손발끝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이디어란 상상이나 공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손발로 경험하면서 고생하면서 그 고생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옛사람들의 글을 우습게 보면서 뭘 모르는 비과학적인 사람들이 쓴 글이라고 치부한 것이 부끄러워진다. 그 시대 상황에서 고생고생하며 깨달아간 것을 적어 놓은 것을 아무런 공감없이 그저 글자 해석만 돼도 한의학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한 것에 대해서도 되돌아 보게 된다. 말에도 귀가 있다. 글이나 말은 그 자체의 해석뿐만이 아니라 그 속뜻인 말귀를 알아들어야 뜻이 통한다. 아무리 글자를 잘 해석해도 듯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의대를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야 다시 본초학을 떠들어 본다. 한글자 한글자마다 노고가 배어 있음을 느낀다. 이걸 ㅤㅊㅏㅊ기 위해 별짓을 다했을 것이므로..
이런걸 실감하기 위해 오늘도 약을 달이며 농축하며 약이 처음 끓는 모양, 중간에 끓는 모양, 거의 농축되었을 때 끓는 모양 그리고 변해가는 색깔과 맛을 살핀다. 옛사람처럼 알려면 그만한 고생을 해야겠지.. 고생을 할수록 진료하면서 느끼는 것보다 더 한약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 수천년동안 내려온 저력이 그냥 생긴게 아닐 것이다.
사서 고생이라고 고생을 할수록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위안을 삼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서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매번 느낀다. 옛사람들의 글이 옳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 글이 옳다. 그것을 머리로 이해하려들고 말귀는 못알아 듣는 내가 틀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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