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 번역은 나의 운명···10여 년의 세월 담아”

기사입력 2025.06.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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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민 원장(파주시 박태민한의원), 황제내경 영추집주·소문집주 완역
    <영추> 1천 쪽, <소문> 1천5백 쪽, 모두 2천5백 쪽의 방대한 분량
    소문집주, 인터넷서점 ‘알라딘’서 한의학 분야 서적 판매 1위 올라

    <편집자주> 최근 박태민 원장(파주시 박태민한의원)이 번역, 출간한 <황제내경 소문집주(黃帝內經 素問集注)>가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한의학 분야 서적 판매 1위에 오르는 등 많은 한의사들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본란에서는 박태민 원장으로부터 번역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봤다.

     

    박태민 원장님.jpg

     

    Q. <황제내경>은 한의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요?

     

    :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근본입니다. 신농의 <본초경>, 복희의 <주역>과 함께 ‘삼분(三墳)’이라 하여 가장 어렵고 난해한 책으로 꼽힙니다. 황제내경은 <소문>과 <영추>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론과 원칙을 담은 ‘경(經)’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제내경>은 약 2500년 전 의학이지만 한의학 치병의 근본 이론과 원칙이 모두 여기서 발원하였기에 ‘원전(元典)’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의학의 중심이론인 상한론은 물론 동원의 비위론, 경악의 대보론, 진음론 등이 모두 <황제내경>에서 발원했습니다.

     

    또 허준의 <동의보감>도 <황제내경>의 원문을 근거로 치법과 처방을 유도하고 있을 정도로 황제내경은 한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서적입니다.

     

    한의학이 과학적이냐, 실험을 거쳤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1473년생인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변환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문에서 귀유구(鬼臾區)는 천지의 오운육기를 ‘10대에 걸쳐 연구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기백(岐伯)은 ‘지구는 대기에 받쳐 천공에 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 1년이 되고 윤달을 만들어 약간 남는 편차를 조절했습니다. 동서남북 방위를 정하고 시간을 정했습니다.

     

    달력과 24절기가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60년의 주기를 알아내 기후 변화와 그로써 일어나는 만물의 변화와 질병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황제내경은 천문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Q.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지총의 집주를 완역하셨는데, 장지총은 어떤 인물인가요?

     

    : 장지총의 집주는 황제내경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국 청대에는 연구와 학문이 발달한 시기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리가 되길 꺼려하고 학문에 몰두하는 학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장지총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고사종과 제자들이 여유당에서 경전을 연구하고 토론하여 <황제내경>, <상한론>, <본초> 등에 관한 집주를 많이 출간했습니다. 진수원은 장지총의 서적을 전인이 알지 못한 것을 깨우친 것이 많아 ‘한나라 이후 최고의 서적’이라고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Q. <영추집주>에 이어 <소문집주>까지 번역하셨다.

     

    : 학창시절 선배들이 스터디 동아리 ‘이오율’을 만들어 후배들을 이끌어주었는데 그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방학이나 휴교할 때 선후배가 모여 노량진 수동한의원에서 선우기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가며 <황제내경> 장마합주(장지총*마현대)를 꽤 오랫동안 공부했습니다. 워낙 내용이 어렵고, 한문 실력도 미미하여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했으나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그 이후 <황제내경>은 내 책상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고, 끝까지 공부해나갔습니다. 이오율을 만들고 이끌어주신 육동신 선배가 출간된 <소문집주> 책을 보고서 ‘이오율 최고의 결과물이 50년 만에 드디어 나왔다’며 많이 기뻐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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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영추집주> 번역 후 <소문집주>를 나중에 번역한 이유가 있는지요?

     

    : <영추>는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기의 변화를 보고 치병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먼저 번역을 시작하고 방대한 양이라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추집주>에는 나의 임상과 연결하여 30강을 넣어서 펴냈습니다.

     

    <소문>은 영추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던 음양과 오행 위주의 설명과 함께 오운육기로 실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습니다. 이를 이해하면 전체적인 한의학의 구조가 잡힐 거라 생각합니다.

     

    Q. 번역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시는 이유는?

     

    : 한의대 재학생들을 상대로 <영추> 강의를 하며 느낀 점이 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는 이해하는 듯해도 한문이 어려워 진전이 더디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한의학계의 문제 중 하나가 한문 해독 능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안병국 교수님이 항상 전공문맹이라고 한탄하셨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더하면 더했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원전이나 한의학 서적을 보지 않아 한의학이 도태될 위기에 처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한글로 쉽게 풀어내어 많은 분들이 원전을 접할 수 있도록 번역, 편집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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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황제내경>은 한의사 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 <황제내경>은 현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임상을 잘 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봅니다. 처방을 많이 모은다고 임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원리를 잘 알아야 임상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있는 처방과 병증이 일치하는 환자는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황제내경>은 경(經), 즉 바이블(Bible)입니다. 경은 원칙, 법칙, 기준을 말합니다. 임상은 판단의 연속이기에 원칙에 충실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양 허실 한열 표리를 구분하고 보사를 행하여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는데, 이 책이 원칙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Q. 번역 과정의 힘들었던 점과 보람됐던 점은 무엇인지요?

     

    : 선배들이 번역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 숙제가 나에게까지 와서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시작했지만 순간순간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내용도 어렵고, 양도 방대했지만 시대가 달라 부실하고 애매한 부분을 맞닥뜨렸을 때 특히 어려웠습니다. 완역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도 있고, 잘못된 부분도 많이 있겠지만 마음만은 뿌듯합니다. 이것을 토대로 후학들이 좀 더 한의학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Q. AI 시대에 한의학을 특화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 AI는 기존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취합하여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은 질병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으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 상태를 맥으로 판단하여 처방하는 것이기에 모든 정보는 맥에 있다고 봅니다. 아직까지 맥에 관한 자료가 없기에 AI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이르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한의학의 장점이 앞으로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원장님께 ‘한의학’이란?

     

    : 한의원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보살이 진료를 받고 나서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장차 한의학의 대가가 되고 불경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굳게 믿은 것은 아니지만 기억에 오래 남았고, 아마도 내심 기대가 없지는 않았나봅니다. 

     

    40여 년이 지나 장지총의 <황제내경 집주>를 번역 출간하고 나서 ‘아! 어쩌면 이것을 예견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추>가 1천 쪽, <소문>이 1천5백 쪽, 모두 2천5백 쪽에 거의 10여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번역을 해냈으니 말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운명적으로 정해졌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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