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한의학 <17>

기사입력 2023.03.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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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기후학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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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기후와 의학


    “강풍(風)을 동반한 호우”, “한(寒)랭전선”, “폭서(暑)”, “고온다습(濕)”, “건조(燥)주의보”... 일기예보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중풍(風)”, “상한(寒)”, “서(暑)병”, “습(濕)담”, “번조(燥)”...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위아래에 나열된 말들에는 공히 기후와 관련된 바람, 건조, 습기 등의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사실이지만, 기후를 말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한의학이 몸과 앓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겹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한의학의 내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공용어 현상은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단지 흥미로운 것을 넘어 고찰해보아야 문제들을 제시한다. 

    어떻게 의학의 언어와 기후의 언어가 통용 가능한가? 이 물음에 대해, 단지 분과 학문이 덜 세분화된 근대 이전 지식의 현상이라며 질문을 회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질문은 동아시아의학이 어떤 의학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장을 제공한다. 또한, 동아시아의학의 사유와 실천으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인류세의 한의학> 연재글을 위해 중요한 논의 거리를 제기한다.


    통상 동아시아의학에서 육기(六氣)로 표현되는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의 여섯 기운은 몸 안의 상황에도 사용되고, 몸 밖의 상황에도 사용된다. 한의학 서적을 펼쳐보면 몸 안팎의 육기는 도처에 있다. 육기와 함께 한의학의 주요 개념인 사시(四時)도 기후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몸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의 기후변화를 의미하기도 하고, 계명(鷄鳴)-평단(平旦)-일중천(日中天)-황혼(黃昏)의 하루의 변화를 말하기도 하고1), 유-청-장-노년의 생애와 몸의 변화를 말하기도 한다. 보다 직접적으로 몸에 관한 내용으로서, 사시는 간심폐신(肝心肺腎)의 장부와 연결되기도 한다. 몸 안팎에 공통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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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나드는 “기후(氣候)”


    동아시아의 의학서적들을 읽어가다보면, “몸의 기후학”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동아시아의학에서 기후와 의료의 연결은 가시적이다. 실제로 기후는 몸에도 사용되는 말이었다(<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3> “기후의 의미” 참조). 조선의 역사기록에서 몸의 상태를 의미하는 “기후”를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른에게 올리는 인사말로 기후를 사용하였고2), 지금도 “몸과 마음의 형편”이라는 의미로 몸에 사용하는 기후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후가 다의적인 용어라서 날씨에도 사용하고 몸에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면, “기후”의 의미를 놓치게 된다. 오히려 기후라는 말 자체에 날씨에 사용할 수도 있고, 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기후”에서 “후(侯)”는 징후, 증후와 같이 일어날 조짐, 일어난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척“후”병은 적진의 “상황”을 살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후”의 의미를 생각할 때, 기후는 기의 정황에 관한 것이다. 기의 정황이 몸 바깥에서 날씨로 나타나기도 하고, 몸 안에서 건강과 질병의 양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침에 오늘 날씨가 “어떠냐”고 가족에게 묻듯이 (혹은, 일기예보를 검색하듯이), 몸의 상태가 “어떠냐”고 물을 때 기후를 사용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서도 “기후”를 검색해보면 어찌 하(何)가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성상의 기후가 어떠하시냐고 신하가 묻고, 왕이 자신의 몸의 상태에 대해 답하는 장면들이 있다.


    기후는 어찌어찌한 상태이므로, 기후에는 이미 변화가능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징후, 증후 그리고 적진의 상황이 변할 수 있듯이, 항상 변화하는 것이 날씨다. 또한, 몸의 기후도 변할 수 있다. 그래서 기후는 변화하는 와중에 있는 지금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승정원일기』에는 지금의 몸의 기후를 묻는 질문들이 있다. 영의정 최명길은 서병(暑病)을 앓던 인조에게 “기후가 지금은 어떻습니까(氣候今則何如)?”라고 묻는다. 기후는 변화하고, 변화해왔고, 변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을 특정하여 묻는다. 인조가 대답한다. “지금은 회복되었다(今則差復矣).”3)


    그러므로 우리가 최근 아주 많이 사용하는 “기후변화”라는 말은, 본디 기후의 의미에서는 동의 반복일 수 있다. 기후는 변하기 마련이고, 이미 기후 안에 변화가능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동의 반복은 번역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번역 이전의 언어인 “클리이밋 체인지(climate change)에는 “기후변화”와 같은 동의 반복이 없다. 이유는 클라이밋은 공간적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기후라고 번역되는 클리아밋의 영어사전에서의 의미는 “특정한 날씨 패턴을 가진 지역, 혹은 특정 장소와 지역의 보통의 날씨”이다. 클리이밋의 관점에서는 열대기후, 온대기후, 한대기후와 같이 비슷한 위도의 영역에 분포되어있는 특정 성격의 기후를 강조한다(열대, 온대, 한대의 대(帶)는 띠 대자다. 띠 모양의 지대를 의미한다). 


    기후가 날씨에도 사용되고, 몸에도 사용되는 것은 “후(侯)”보다는 “기(氣)”의 의미에서 기인한다. 동아시아의 기는 몸 안과 몸 밖의 경계를 가지지 않는다. 또한, 몸 안의 기와 몸 밖의 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날씨 기후와 몸 기후의 논의가 가능한 것은 기로써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동아시아의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기일원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동아시아에서 기는 경계를 넘나드는 개념이다. 철학에서도 사용되고, 기후학에서도 사용되고, 의학에서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기후”는 이런 의미도 가지고, 저런 의미도 가지는 다의적 용어라기보다는, 기후 자체가 넘나드는 말이라고 해야한다. 기후가 어떤 경우에는 날씨에도 사용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몸에도 사용되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보다는, 기후는 넘다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언어이므로, 다른 영역, 다른 컨텍스트에서도 사용가능하다.


    몸의 기후학이라는 표현이 사용가능한 동아시아의학에서, 몸은 경계가 분명한 몸이 아니다. 기후의 언어가 몸 안팎으로 사용가능하다는 것은, 또한 몸 안팎의 경계가 다른 의학과 달리 분명하게 그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넘나드는 “기후”가 포함된 “몸의 기후학”이라는 말 자체에 몸을 바라보는 어떤 관점이 들어 있다. 


    “기후”와 인류사, 지구사를 함께 말하기


    최근 기후위기와 인류세의 논자들은, 생산, 정치 등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역사와 기후로 대표되는 지구의 역사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세계적 역사학자인 디페쉬 차크라바티(Dipesh Charkrabarty 2021)는 『행성적 시대 역사의 기후(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사 기술방식을 요구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근대 문명이 실천해왔던, 지구사(자연사)와 인류사가 나누어진 체계로는 더이상 이 시대에 조응하는 역사를 기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구사와 인류사가 만나는, 즉 세계화(globalization)의 글로벌과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의 글로벌이 만나는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사와 인류사의 나뉨은 근대 이후 자연과 사회,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러한 근대적 분할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에 세계와 존재들을 전일적으로 바라보는 동아시아의 “기후”의 사유가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몸의 기후와 날씨의 기후를 함께 말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학의 기여 가능성은 열려있다(몸의 기후학 II에서 계속). 


     

    1) 『내경(內經)』 「금궤진언론(金匱眞言論)」의 논의를 가져왔다.

    2) “기체후일향만강”이나 “기후 안녕하십니까” 등의 표현이 문어체의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3) 『승정원일기』 인조17년(1639) 7월 14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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