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기후위기 시대에 천인상응(天人相應)은 뼈아픈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천인상응은 본디 긍정의 언어다. 지향을 가지고 있었다. 도덕적 함의까지 포함할 수 있었다. 자연[天]의 이치에 응(應)하는 것이 건강의 요체라는 것은 한의학의 기본 원리다. 그 전제를 구현하기 위한 지향은 한의학의 이론과 진료의 실천에 녹아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속에서, 사시(四時)의 이치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 하늘과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긍정적 상응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고 있다. 자연의 순조로운 이치가 흐트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이치에 기대어 건강을 구할 것인가?
최근 발표된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특히 기후위기가 건강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보고서는,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건강문제에의 영향으로, 기온상승으로 인한 온열병(6차 보고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수반된 가뭄과 홍수 등 물의 문제는 수인성 질병의 폭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는 식량 생산량을 저하하고, 이것은 다시 영양결핍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그 리포트는 지적한다. 또한, 재난과 질병, 식량부족 등 고난의 상황은 인류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의 영향을 빼고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환경파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COVID-19 같은 팬데믹이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은 기후위기 속 건강문제를 더 암울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하고 심각한 질병들은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삶을 장악할 주된 문제가 될 것이다. IPCC 6차 보고서는, 자연의 순조로움이 흐트러진 상황이 아픈 몸과 연결되는 구체적인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세의 건강문제들은, 긍정적 천인상응에서 부정적 천인상응으로 이행하는 기후변화의 결과다. 이제 ‘천인상응’이 관념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뼈아프게도, 부정적 천인상응의 시대인 인류세가, 천인상응이 관념적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마치 호흡이 순조로울 때는 호흡을 인지하지 못하듯, 호흡이 거칠어지고 빨라질 때, 호흡하기 힘들 때, 호흡의 존재를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산업화 이후, 태움과 버림으로 점철된 인간 활동이 자연[天]에 악영향을 야기하고, 그로 인해 인간[人]이 다시 아프게 되는 서로 응함[相應]의 상황이, “천인상응”을 뼈아프게 드러내 보인다.
육기(六氣)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이러한 상황은 보다 분명해진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감당하기 어려운 육기(六氣)의 시대를 의미한다. 기후위기는 육기의 위기다. 몸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는 육기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기후위기는 몸 밖 육기의 위기이면서 또한 몸 안 기운의 위기이다. 이러한 안팎의 위기가 IPCC 6차 보고서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온열병에 의한 사망자 수의 증가만 경고하고 있지만, 육기로 바라보면 보다 구체적으로 기후위기 시대 건강의 위기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사기(邪氣)로서의 육음(六淫)이 가시화되는 시대일 것이다. 온난화로 인한 육기의 변화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기(邪氣)화된 육기를 직면해야 함을 의미한다. 온난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서(暑)기와 화(火)기는 다시 조(燥)기와 습(濕)기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
또한 바람[風] 기운의 변화를 조장할 것이다. 육음의 기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락이 사기를 받으면 장부로 들어가고 그 허실에 따라 냉이나 열이 뭉쳐서 병이 되는데, 병도 상생하기 때문에 변화하여 심하게 된다1)”라고 『동의보감』에서 논하고 있듯이, 육음은 다시 장부로 들어가 다양한 질병을 양산할 것이다. IPCC 6차 보고서와 육기, 육음 개념을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의 실패는, 경험하지 못한 질병들의 시대에 우리를 맞닥뜨리게 한다.
질병의 시대일 수 있는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일시적이고, 소극적 변화가 아니라 심각한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의 일상을 이루는 많은 부분을 뒤집어엎는 변화가 요구된다. 하지만 일상은 무겁다. 매일매일 사는 일상이지만 말같이 일상은 가볍지 않다. 플라스틱, 비닐, 석유, 석탄, 가스 등 우리의 탈 것, 먹을 것, 머무를 곳에 이용했던 것들에 대한 줄임과, 나아가서는 사용 중지까지 요구되지만, 이런 변화가 오늘 당장 일어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가 없다. 전기, 난방, 이동에 제한이 온다면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상은 다른 일상이 될 것이다.
오늘 당장 이 일상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기후위기의 상황이 우리를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노력(‘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에도 불구하고, 파국적 기온상승의 예측이 한층 가시화되고 있다. 기후과학자들이 마지노선으로 잡고있는 1.5℃ 이하로의 기온상승 제한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1℃ 이상 상승하였고, 기후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연구결과가 줄을 잇고 있다. 가속도와 함께, 1.5℃ 상승까지의 예상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심각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각과 말의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과 언어의 변화 없이 우리는 모두 선량한 반환경주의자2)일 수 있다.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말에 스며있는 차별을 돌아보고 재고할 필요가 있듯이,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생각과 언어에 내포되어 있는 ‘환경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전 연재 글(인류세의 한의학<5> “환경위기와 천인상응”)에서 강조했듯이, 환경과 인간을 떼놓고 보는 생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친환경’이라는 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환경과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정도’의 문제가 내재해 있다. ‘친환경’은, 환경과 먼 거리에 있는 ‘조금’ 친환경도, 그 포괄적 말 뒤에 숨어버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조금’ 친환경도 ‘많이’ 친환경도 모두 환경과의 거리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인간과 환경, 주체와 세계의 도식으로는 기후위기의 해법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뒤집어엎는 생각과 말이 필요하다. ‘환경을 보호하자’가 아니라, ‘내가 환경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기후다’라고 말해야 한다. 천인상응과 육기 개념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 환경과 내가, 기후와 내가 둘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몸 밖 날씨에도 몸 안 건강에도 ‘기후(氣候)’를 사용했던 동아시아의 관점에서(이전 연재 글, 인류세의 한의학<3> “기후의 의미” 참조) ‘내가 기후다’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몸은 나의 기의 상황이다. 그리고 육기 개념이 말해주고 있듯이, 내 기의 상황은 바깥의 기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외부를 나누어 말하기 힘들다. IPCC 6차 보고서의 건강문제에 대한 심각한 경고는 이 경계없는 연결성을 말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지속되어 부정적 천인상응의 상황이 된다고 해도, 이 상응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서로 응함으로 연결된 관계는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끊을 수 없는 상응의 관계라면, 다시 긍정적 자연[天]과 인간의 관계로 되돌리는 길밖에 없다. 상응을 다시 긍정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말과 생각이, 부정적 상응 관계에 영향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말과 생각이 필요하다. ‘내가 기후다.’
1) 『동의보감』 「내경편」 기(氣)문에서 인용하였다. 번역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고전DB(mediclassics.kr)의 번역을 따랐다.
2)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2019)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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