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224)

기사입력 2022.03.2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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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東醫學論
    “향약의학, 동의학, 한의학으로 이어지는 전통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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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韓國의 한의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혼재해 있다. 순수하게 한국적인 요소, 중국적인 요소, 일본적인 요소, 인도적인 요소, 아라비아적인 요소, 서양의학적인 요소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한의학의 중심 과제는 언제나 ‘韓國人의 건강과 疾病 퇴치’였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외국에서부터 전래된 것을 무조건 추숭하지 않고 이를 어떻게 한국인의 입장에서 수용해 한국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東醫學”이라는 의사학적 실체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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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0년에 간행된 『東醫寶鑑』이 시작을 연 “東醫學”의 독자적 전통에 대한 선언은 세계 의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일대의 사건이었다.

    『東醫寶鑑』에서 許浚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는 치우치게 동쪽에 있지만, 의학의 도가 실과 같이 끊이지 않았기에, 우리나라의 의학도 東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래로 한국인의 마음 속에는 중국과는 기후와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맞는 의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광범위한 공통 인식이 오랜 기간 존재했다. 고려시대에 널리 퍼졌던 “鄕藥醫學”도 그러한 예이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초기까지 간행된 “鄕藥”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醫書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가 깊다. 『三和子鄕藥方』, 『鄕藥古方』, 『鄕藥惠民經驗方』, 『鄕藥簡易方』, 『鄕藥集成方』 등과 “동쪽 사람(韓國人)의 경험방”이라는 意味를 갖고 있는 『東人經驗方』 등을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허준의 『東醫寶鑑』에 보이는 많은 처방들은 中國醫書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 차이가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량의 차이뿐 아니라 藥物의 증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香砂養胃湯을 예로 들면, 『東醫寶鑑』에는 白朮 一錢, 縮砂, 蒼朮, 厚朴, 陳皮, 白茯苓 各 八分, 白豆蔲 七分, 人參, 木香, 甘草 各 五分으로 되어 있는데, 원출전 『萬病回春』에는 여기에 香附子, 茯苓 각 八分이 더 들어가 있고, 縮砂와 白茯苓이 빠져 있다. 그리고 그 주치증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이러한 것은 中國에서 온 처방과 그 주치증에 관한 내용을 許浚이 韓國人에 맞게 재정리한 예이다. 『東醫壽世保元』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東醫壽世保元』에는 補中益氣湯이라는 처방이 나온다. 이 처방은 본래 中氣가 下陷하여 나타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인데, 李濟馬는 少陰人의 腎受熱表熱病에 속하는 亡陽證의 초기 증세를 치료한다. 이제마의 補中益氣湯은 원방에서 柴胡와 升麻를 藿香과 蘇葉으로 대체하고 분량도 늘린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의학 가운데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과 외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을 구별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외국으로부터 전래되어 토착화된 것은 그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그 원형을 찾는 것이 어렵게 돼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학이 자체적 이론체계를 갖춘 의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조상들의 우리 풍토에 맞는 의학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노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中醫學과 東醫學은 그 성장과정과 내적 논리에 차이가 있다. 中醫學이 중국의 풍토와 중국인의 체질에 맞게 만들어지고 발전한 의학이라면, 東醫學은 한국인의 체질에 맞게 완성된 의학이다. 

     

    그러므로, 중국의학이 한국에 수입된 후에 토착화되는 과정은 한국인에 맞는 의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단일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東醫學은 그 역사적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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