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하늘은 가깝다. 연기가 나면 바로 하늘에 닿는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위성사진에도 선명하다. 지구 반지름(6400km)에 비하면, 구름 일고 바람 부는 하늘은 땅에 닿을 듯하다. 천인상응의 하늘은 이 하늘을 말한다. 비 내리고, 때로는 혹한과 혹서의 하늘이지만 그 와중에도 사시(四時)의 흐름을 잃지 않는, 소한 대한의 꽁꽁 언 추위 뒤에도, 발진(發陳)의 봄이 오고야 마는 하늘이 그 하늘이다. 그래서 생명들을 생명이게 하는 장덕부지(藏德不止)의 하늘이다. 간직한 덕이 그침(止)이 없어서, 생명들이 생(生)하고 또 생(生)한다1).
날씨가 있고, 기후가 변하고,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나는 하늘은 결코 멀지 않다. 인간과 상응하는 자리에 있다. 상응의 관계이므로 우리는 아마존의 화재를 걱정한다. 광활한 숲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시 산소를 내놓는 순환이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마존의 화재는 많은 부분 인간이 원인이다.
목축과 농사지을 땅을 확보하기 위한 방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면, 이것은 폐를 태우는 일이다. 화재로 인한 아마존의 파괴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고 있는 하나의 동아줄을 놓쳐버리는 일이다. 인간의 활동(방화를 포함해서)은 하늘에 닿아, 더워진 하늘이 다시 인간에 닿는다. 천인상응에서, 서로 응한다는 ‘상응(相應)’은 이러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늘의 움직임이 땅과 인간에 닿듯, 인간의 행위도 하늘에 닿는다. 서로 응한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한 명일 것이다. 인류학, 사회학, 과학학,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가, 이제 기후위기에 그 학문적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라투르가 최근 강조하는 크리티컬 존(critical zone)은 천인상응과 매우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크리티컬 존은 날씨가 바뀌고, 강과 산과 평지가 있고, 바다가 있는 영역이다. 이곳은 다양한 생명들의 터전이다. 크리티컬 존은 과학 용어에서 시작하여, 이제 라투르 같은 인문사회과학자들도 깊은 관심을 가지는 융합적 논의 주제가 되고 있다. 이 영역 밖에서는(예를 들면, 깊은 땅속이나 대류권 밖의 대기에는) 생명이 존재하기 힘들다.
크리티컬 존은 지구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라투르는 당구공 같은 지구의 모델은 기후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며, ‘크리티컬 존’을 적극 지지한다2).
여기서 ‘당구공’은 라투르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런 지구를 본 적이 있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다른 크기의 당구공 모양의)과 나열되어 있기도 하고, 우주에서 찍은 동그랗고 파란 지구가, 검은색 배경 위에 있는 경우도 있다. 구 모양의 지구는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상정한다. 하지만 지구는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對象)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 속에 있고 기후변화의 와중에 있다. 라투르는 기후위기의 문제는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지구 안에 있다. 지구 안에서도 천(天)과 인(人)이 상응하는 크리티컬 존 안에 있다.
사실, ‘지구’온난화라고 하지만 지구 전체가 온난화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다. 지구온난화는 당구공 같은 밖에서 본 동그란 지구 전체의 온난화가 아니라, 크리티컬 존의 온난화이다. 크리티컬 존은 지구반지름에 대비해서 보면 아주 얇은 막이다. 라투르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바이오필름(biofilm)이라는 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지구표면의 얇고, 민감한 영역이다. 거기에 공기가 흐르고, 비가 내리고, 얼음, 물, 땅들이 있다. 한마디로 하면 거기에 만물(萬物)이 있다. 만물들이 생하고 자라고 움직이는 장소가 크리티컬 존이다.
크리티컬 존과 마찬가지로, 천인상응은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상정하지 않는다. 천인상응에는 서로 인트라-액션하는3) 관계에 방점이 있다. 천인상응은 생명들과, 생명들의 터전인 하늘 사이 얽힘을 강조한다. 즉, 크리티컬 존이 한의학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생각과 실천들의 주 관심사의 영역이다. 같은 지평에서 서로 주고 받는 관계가 세계를 말하는데 핵심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저기 바깥에서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
그동안 인간은 지구 안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저기 바깥에서 시선을 던지는 존재로 간주되곤 했다. 그만큼 특별한, 비인간 존재들과는 다른 존재로, 인간은 스스로를 생각해 왔다. 천인상응은 저 바깥으로 나간 인간의 시선을 다시 지구 안으로, 크리티컬 존으로 당기는 관점이다. 천인상응의 관점은, 당구공 같은 지구를 저기 우주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바로 여기서 접촉하고, 일어나고, 변화하는 상황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관심사가 ‘상응’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
천인상응은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말이다. 기후위기 속 뜨거워진 하늘은 뜨거워진 몸을 의미한다. 천인상응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표된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6차 평가보고서도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지 않을 때 온열 관련 사망자의 증가를 피할 수 없다고 그 보고서는 경고하고 있다. 하늘의 온도 상승은 몸의 체온을 상승하게 한다. 상응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천인상응이 또한 인천상응(人天相應)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세는 인천상응의 지질시대적 표현이다. 인간의 영향력(특히 악영향)이 자연의 변화에 주된 역할을 하는 시대를 강조하기 위해 인류세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인천상응 또한 인류세의 그러한 문제를 바로 지시하는 용어다. 하지만, 천인상응 대신 인천상응을 따로 내세울 필요는 없다. 상응이므로, 서로 얽힘의 관계이므로, 선후가 따로 없다.
인류세는 천인상응의 천인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시대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그 상응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는 것이 인류세이다. 본디 천인상응이 전제하는 것은 천과 인의 고무적인 관계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시가 순조롭게 흐르듯, 몸의 사시도 순조롭게 흐르는 것을 건강한 상태로 보아왔다. 몸의 육기와 몸 밖의 육기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는 반대의 상황이다.
인간은 탄소를 태우고, 또한 그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아마존마저 태워 하늘을 열받게 한다. 기온이 상승된 하늘은 다시 온열병 같은 문제로 인간에게 상응된다. 천인상응이 부정적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천인상응의 긍정적 전제마저 바꾸려는 시대가 인류세이다. 이것은 ‘장덕부지’와는 멀어진 시대를 의미한다. 생명을 살리는 덕이 없는 시대는 몸도 마음도 아플 수밖에 없는 시대다. 이번 IPCC 보고서는 온열병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가 야기할 수인성질환, 알레르기질환, 정신질환 등의 건강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천인상응은 다양한 질병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은 남아 있다. 천인상응은 상응이므로 관계의 변화도 가능하다. 기후행동을 통한 천인상응을 말할 수도 있다. 아마존의 방화가 하늘을 변화시키듯, 기후행동은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이 하늘에 상응한다. IPCC의 6차 보고서는 암울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인간뿐만 아니라, 크리티컬 존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다.
천인상응은, 기후위기 속 하늘[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직시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다. 기후위기가 천인상응을 소환하고 있다.
1) ‘장덕부지,’ ‘발진,’ ‘사시’의 용어들은 모두 『내경(內經)』에서 인용하였다.
2) Latour(2017) Facing Gaia: Eight Lectures on the New Climate Regime.
3) ‘인트라-액션(intra-action)’에 관해서는 이전 연재글 “환경위기와 천인상응”에서 상술하였다. 이미 연결되어 있는 물(物)들이 다시 출렁이며 변화를 드러내는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새롭게 제안된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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