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장경악 의술의 전승”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이향견문록』은 조선후기 유재건(劉在建, 1793〜1880)이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명록이다. 저자 유재건은 가세가 몰락해 서리 계급으로 전락한 인물로서, 시문에 능하여 서리로 규장각에 봉직하면서 『열성어제』를 편찬했고, 개인적으로는 『법어』와 『풍요삼선』을 편술했다. 『이향견문록』의 구성을 보면 권1은 학행, 권2는 충효, 권3은 지모, 권4는 열녀, 권5·6·7은 문학, 권8은 서화, 권9는 잡예(의학·바둑·음악·주술), 권10은 승려·도류의 순으로 분류해 인물의 행적을 적고 있다.
이 내용 가운데 권9의 醫師를 담고 있는 부분에서 ‘同樞 李喜福’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동추 이희복의 자는 자후이며, 유복자로 태어났다. 공은 어머니가 병이 많았기 때문에 『景岳全書』를 읽어 그 이치를 깊이 깨달아 큰 처방을 써서 효험을 보았고, 어머니는 장수를 누렸다. 내(저자 유재건)가 소시적에 의술에 뜻이 있어 때때로 공을 찾아가 의논하면, 공은 늘 이런 말을 하곤 하였다. ‘張景岳의 고견은 丹溪와 河間의 허물을 씻었으니, 명나라 제일의 良醫이다.’ 대개 공의 의술은 腎臟을 보호하는 것을 위주로 했는데, 인삼과 숙지황을 세상 잘 다스리는 어진 재상으로 大黃과 附子를 어지러운 세상에서의 유능한 장수로 여겼다. 공이 쓴 『傳忠錄』과 『求正錄』 등의 책은 모두 『素問』과 『靈樞』에 근본을 두었고, 동상에 관한 처방은 張仲景을 위주로 한 것이다. 근년에 장중경의 책을 사와 그 책의 처방을 쓰는 이들이 많은데 큰 효험이 있다고 한다.”(이상 번역문은 이상진 해역, 『이향견문록』하권, 자유문고, 1996을 전재함)
위의 글에서 우리는 『景岳全書』를 전문으로 연구해 환자를 진료한 조선후기의 의사인 이희복이란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희복의 개인정보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기에 더 이상의 내용을 알아내기에는 부족하지만 위의 내용만 가지고 볼 때 이희복은 『경악전서』를 바탕으로 의사를 한 인물로 파악해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저자 유재건은 장경악의 의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서술하고 있다는 면에서 조선후기 장경악의 의술을 바탕으로 하는 의학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후기에 장경악의 학술적 영향은 이 시기 주도적 의서인 『제중신편』(1799년 어의 강명길 출판)과 『방약합편』(1885년 아들 황필수가 부친 황도연의 연구를 정리함) 등에 고르게 나타난다. 게다가 근현대 한의사인 洪鍾哲(1852〜1919)은 “『景岳全書』 연구를 통해 한의학의 현대화에 힘쓴 醫家”로 손꼽히고 있다.
장경악은 人蔘, 熟地黃, 附子, 大黃의 운용을 중시했다. 장경악은 “무릇 人蔘, 熟地黃, 附子, 大黃은 실로 약 중의 四維이니, 병이 위험한 형세에 이르러 庸醫가 능히 구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할 때 이 네 가지 약이 아니면 투여할 수 없는 것이다.”(『景岳全書.本草正』)라고 했다. 그는 人蔘, 熟地黃을 세상을 다스리는 훌륭한 재상에 비유했고, 附子, 大黃은 전란을 평정하는 훌륭한 장수에 비유했다.
일찍이 청강 김영훈 선생(1882〜1974)은 한국에서 『의학입문』, 『경악전서』, 『동의보감』의 세가지 서적을 모두 중요하게 다뤘는데, 이것은 『경악전서』를 한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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