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의 학교폭력 경험에 놀랐지만…담임 선생의 싸늘한 반응에 전학 결정
학폭 피해의 상처는 너무도 깊고 폭이 넓어서 회복에 아주 오랜 시간 걸려
박윤미 한의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육아와 한의학, 인문학 등의 분야를 오가며 느꼈던 점을 소개하는 ‘육아에서 찾은 소우주’를 싣습니다. 대전시 중구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 박윤미 한의사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후 뒤늦게 대전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중고등학생에게 한의 인문학을 강의하며 생명과 건강의 중요성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집 장남은 깡마른 체형에 공부에 별 관심 없는,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중3이 되면서 부쩍 친구 K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K는 체격도 좋고 농구도 잘하고 성적도 우수하다는 거였다. 본인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친구라서 부러운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당시, 나는 5살 막내를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큰 아이가 피해자로서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이가 집에서 유난히 짜증을 내고 학교를 자퇴하고 싶다고 해도 그저 사춘기라고 여기고 무시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모처럼 아이의 방을 꼼꼼히 청소하다가 침대 밑에서 반쯤 불탄 아이의 가방을 발견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던 갈색 아디다스 가방이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에 머리 속이 텅 비면서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날 저녁 불탄 가방을 들이밀며 아이를 추궁했고, 교실 안에서 학폭을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만에 전학·이사 마쳤지만…회복까지 오랜 시간 걸려
그날 밤을 하얗게 새우고 학급 담임을 찾아갔다. 여기서 2차 충격이 이어졌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담임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나를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어차피 끼리끼리 모이는게 세상사인거 아실텐데요, OO이도 어차피 다 같이 어울리는 멤버였어요. 지들끼리 어울려서 게임이나 하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놈들인데, OO이가 그 와중에 지들 무리한테 뭘 밉보였는지 얼마 전부터 부쩍 괴롭히는 것 같더라구요, 다 OO이가 자초한 건데 학교에서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집에서 아이한테 신경 좀 쓰셔야겠죠”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네 자식을 맡아서 돌보기 힘들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학교에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었기에 당장 부동산에 가서 집을 매매로 내놓았다. 그날 이후,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가해자와 만나는 것도 싫었지만 담임이 있는 교실에 아이가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이사 및 전학은 한 달 내에 완료되었다. 다행히 곧 여름방학이라서 나도, 아이도 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 함께 맛집도 가고 근교 나들이도 갔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한테 쌓인 앙금도 많았는데, 바쁘단 핑계로 아이를 이해하기보단 장남 노릇을 강요했구나 싶어 반성도 많이 했다.
다행히 전학 간 학교에서 새 친구들과 너그러운 담임선생님을 만나면서 우리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아픈 경험 끝에, 아이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본인이 힘을 키울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부터는 착실하게 공부를 했고, 결국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서 점차 전공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비례해서, 우리의 상처도 차츰 치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자는 그때 일을 되도록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학폭 피해의 상처는 너무도 깊고 폭이 넓어서 회복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우리는 그랬다.
다만, 우리는 가해자의 사과를 받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받아봤자 별 도움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당시에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OO아, 문제가 생겼을 때 10:0은 없어. 너도 뭔가 그들에게 원인 제공을 했을거야. 그리고 담임한테 너나 엄마가 무시당한 것도, 우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거야. 그걸 찾아내서 해결해야만 우리가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거야. 엄마도 찾을테니까, 너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렴” 이렇게 말했었다.
◇나를 깨운 논어의 한 문장
요즘 과거의 학폭으로 인해 무대에서 퇴장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을 많이 본다. 사필귀정이긴 하지만, 이것이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까 싶다. 피해자가 자존감을 되찾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학교와 지역 사회가 무엇을 해줄지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초등 고학년부터 논어, 맹자 등 동양 고전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가르쳐 주면 알게 모르게 학폭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불면증을 겪었고, 그때 논어를 꺼내어 읽은 적이 있는데,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과 시절, 정규 과목으로 논어를 배울 땐 한문도 어렵고 내용도 지루하기만 했었는데, 참 아이러니했다. 그제서야 책 속의 문장이 현실화되어 가슴으로 들어온 것이다. 논어 속의 한 문장을 소개해 본다.
‘군자 주이불비’(君子 周而不比), ‘소인 비이부주’(小人 比而不周). ‘군자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두루 사귀지만 그들과 함부로 결탁하지 않고, 소인은 무리들끼리는 잘 어울리지만 폭 넓게 두루 사귀지를 못한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보면, 성품이 너그러운 사람은 반 친구들과 두루 사귀지만 소수의 그룹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 반면, 성품이 옹졸한 사람은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니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다. 의도하지 않았다해도, 이 배타성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누군가 한명을 따돌림으로 내몰 수도 있다.
반친구들 누구나와 똑같은 정도로 친하게 지낼수는 없겠지만, 나와 같이 다니는 무리 밖에 속한 친구들에게도 밝고 예의바르게 대하는지를 스스로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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