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54)

기사입력 2021.07.0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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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近代 100년간의 中醫藥變遷史
    “홍콩 中醫學의 100년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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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95년 11월과 1996년 1월 간행된 『醫林』 제229호와 230호에 謝永光의 「홍콩의 近世 100餘 年間의 中醫藥變遷史」를 上下로 2호에 걸쳐 게재되어 있다. 이 글은 근현대 홍콩의 中醫藥의 變遷史를 요약 정리한 글이다. 

    謝永光 先生(1928∼1998)은 홍콩(香港)에서 태어난 저명한 香港史의 전문가로 針灸學家이며, 中醫教育家이다. 그의 저술로는 『戰時日軍在香港暴行』, 『三年零八個月的苦難』, 『香港抗日風雲錄』, 『香港淪陷: 日軍攻港十八日戰爭紀實』, 『香港戰後風雲錄』 등이 있다. 

    지면 관계로 謝永光의 「홍콩의 近世 100餘 年間의 中醫藥變遷史」를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1884년 시작된 醫藥登記條例: 이 조례는 西醫의 표준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었고 中醫나 中藥을 제한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서양 의료행위를 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법에 의거하여 등기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단 이 조례의 제3조에는 ‘中醫의 경우 이 조례의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고 주를 달아놓고 있다. 개항 때부터 1945년까지 실제적으로 보건을 담당한 것은 中醫였다. 1872년 문을 연 東華醫院에서는 전적으로 中醫만을 사용하여 환자를 진찰하였고 사용한 약도 모두 中藥이었다. 1896년 전체 인구의 45%를 넘는 사람들이 東華醫院의 中醫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는 통계도 있다. 

    ○홍콩의 1940년대: 동화의원에서 中醫 16명을 초빙하여 매일 3시간씩 외래 진료를 하도록 하였다. 진료와 투약에 있어서 中醫가 西醫보다 거의 8배나 되었다. 1941년 12월8일 시작되어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한 후 1942년 7월에 ‘總督府홍콩中醫學會’가 성립되어 中醫의 자격 기준을 고치고 中醫登記를 실시하여 중의가 계속하여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東華痘局의 활동: 천연두가 홍콩에서 크게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자 홍콩의 名士 何甘裳은 사회단체의 지도자들과 연합하여 중국인들이 예부터 사용해오던 중의약 치료법을 정리하여 홍콩 총독에게 보내 ‘東華痘局’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여 비준을 받아내었다. 1910년 건물이 준공되어 정식으로 개막하여 천연두 퇴치에 공헌하게 되었다.

    ○戰後 홍콩의 中醫學: 홍콩中文大學에 中藥硏究센터가 설립되었다. 홍콩大學專業進修學院 근처에는 中醫藥證書課程을 開設하여 중의약 단체들이 상설 중의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시정국도서관에서는 장기간 중의단체와 연합하여 중의강좌를 개설하였다. 『現代中醫藥』, 『中國新醫藥』 등 中醫藥 雜誌의 간행도 이어졌다. 그밖에 『大衆議藥』, 『生活與健康』 등의 잡지도 간행되었다.

    ○50년대부터 시작된 外地와의 교류: 1953년 독일 침구학회 부회장 Heribert Schmidt가 3월 홍콩을 방문하여 홍콩의 중의계 인사들이 3천명 모여 성대한 환영연을 베풀었다. 日本의 한방의학자 坂口弘은 1954년 외국학자로서 두 번째로 홍콩을 방문하였고, 이어서 日本의 間中喜雄博士와 인도의 AD. Edal-Behram 박사 등이 융숭한 환영을 받았다. 1955년 일본동양의학회에 홍콩의 중의계의 張公讓, 陳存仁, 謝永光, 羅世民 등 네명이 초청장을 받아 점차 국제적 교류를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 韓國의 서울에서 제3회 세계침구학술대회가 열려 홍콩에서 20여명의 대표단을 구성하여 참여하였다.

     

    ○1980년대 이후 대륙관의 교류: 1984년 8월 홍콩의 중의계는 최초로 대륙에서 열린 전국 제2회 鍼灸麻醉學術硏討會에 참가하였다. 1985년 謝永光은 中國中醫硏究院 개원 30주년 기념식에 초대되어 특별강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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