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한의사회지를 10년만에 續刊하다”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68년 12월1일 경상북도한의사회(당시 회장 여원현)는 『경상북도한의사회지』 제2호를 간행한다. 본래 1959년 창간호가 나온 뒤 거의 10년 가까운 공백 기간을 뒤로 하고 제2호를 간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경상북도한의사회 呂元鉉 會長은 다음과 같은 감회를 적고 있다.
“…創刊號를 펴낸지 於焉十年 그동안 꾸준히 玉稿를 모아 왔고 會史를 꾸며 왔으나 豫算을 確保할 길이 없어 미뤄오다가 다행히 本道 學術委員會의 熱意는 마침내 會誌 第二號를 刊行하게 되어 기뿐 마음 限量이 없다.…”
부회장 겸 학술위원장으로서 편찬위원이었던 崔福海는 ‘會誌續刊에 際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여원현 회장의 기부금으로 속간이 가능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대한한의사협회 배원식 회장의 격려사, 경상북도한의사회 부회장 조경제, 대구시한의사회 홍길수 회장의 축사가 이어진다.
10여년의 공백을 딛고 간행되었기에 오랜 기간 축적된 각종 자료들과 논문들을 실어 전달하려는 노력이 드러난다. 지난 10년간 있었던 보수교육 관련 사진, 정기총회 사진, 각종 모임, 학술 강좌 등 흑백 사진들이 앞부분에 정리되어 있다.
게재된 글들과 논문을 통해 1968년 무렵 한의계의 현안이 드러난다. 金秀旭은 「迫害를 回顧하며」를 통해 일제강점기 한의학의 수난과 투쟁의 과정 그리고 해방 후 한의사제도의 제정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朴濬은 「大邱藥令市의 沿革에 對한 小考」를 통해 대구약령시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가하고 있다.
1967년부터 제기된 의료유사업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료유사법안반대성토대회기’라는 특집기사에서는 최복해, 김영목, 박준, 정희수 등이 聲討文을 작성하여 극렬 반대의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최복해는 국회의장의 집을 방문하여 의료유사법안 반대의 의견을 전달하고 온 내용을 정리한 「國會議長宅尋訪記」를 적고 있다. 이어서 경상북도한의사회 명의의 「한의과대학 설치에 관한 청원서」와 부대서류가 공지되어 있다. 禹濟鎭은 「다시 活路를 開拓하자」, 朴濬은 「苦言 한마디」로 한의계의 분발을 촉구하는 격문을 게재하였다.
方漢哲은 「許浚醫學賞施賞式參觀記」, 鞠明雄은 제1회 허준의학상현상논문당선작인 「치험임상상으로 본 한의학의 전망」이라는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이어서 학술논문들이 게재되어 있다.
「漢醫學脈診論解釋」(故 池二洪 先生), 「臨床의 科學性을 論함」(蔡且出), 「中風治法」(李昌彬), 「陰陽五行流注에 對하여」(李貢鎬), 「蟲垂炎에 對한 治驗」(李羲仲), 「祝 漢方醫學發展」(李鍾壽), 「驗方要抄」(松岡), 「凉味萬斛의 醍醐湯」(鄭華植), 「運氣生理學에 關한 小考」(卞廷煥), 「癲癎에 對한 小考」(李尙明), 「한방의학과 스트레서學說」(韓元格), 「甲狀腺과 副甲狀腺」(徐文敎), 「止血과 消炎症作用의 陽陵泉穴과 梁丘穴의 利用에 관하여」(朴鎭海), 「電子診斷器의 原理解說 및 使用法」(午子院長), 「積聚名藥」(具滋道) 등이 그것이다.
제2호의 백미는 11쪽에 걸쳐 정리하고 있는 ‘경상북도한의사회 會史’일 것이다. 이 자료에는 국민의료법이 통과된 이후 한의사국가고시가 시행되고 한의사면허가 성립되면서 경상북도한의사회를 조직하고 활동한 역사를 상세히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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