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26

기사입력 2020.08.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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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해로 밀려오는 난맥상(亂脈相)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아직 바이러스 감염병 유행이 종식되지도 않았는데, 지루한 장맛비에 태풍까지 더해져, 온 국토가 침수되고 산사태가 빈발하여 인명이 희생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연중 지속된 역병에다 사상 초유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첨단을 달리던 과학문명도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종일 이어지는 재난특보와 수해상황을 지켜보다 옛 사람의 문집 속에서 수재에 관한 몇 편 글에 주목하게 된다.

     

    『심재집(心齋集)』(5권2책)은 조선 후기 이곤수(李昆壽)의 시문집인데, 1967년에 이르러서야 손자인 이경의(景儀)가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그래서 겉모양은 도포를 입은 선비인데, 본문은 단장한 새색시처럼 깨끗하고 산뜻한 표정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 매산 홍직필과 노사 기정진에게 배운 성리학자이기에 수많은 시문과 경의문답 등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필자가 눈길을 둔 글은 권3 잡저(雜著)에 수록된 「치홍수론(治洪水論)」과 「도산도수론(導山導水論)」, 그리고 권4 통문(通文)에 실려 있는 「압록원방천조주역사행나걸시문(鴨綠院防川造舟役事行儺乞施文)」등이다. 


    물의 자연스런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 선결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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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관심사가 홍수와 수해인지라 먼저 홍수론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洪이란 글자는 가로지른다(橫)는 뜻과 같다. 물이 옆으로 흐르거나 거꾸로 나오는 것(橫流而逆行)을 홍수라고 한다. 홍수는 큰물(홍수洚水)을 말하니 물이 가로질러 역행해서 홍수가 나면 난리가 일어나니 다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스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한다. 

    그에 대한 답은 역시 물의 자연스런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 선결요점이다. “물의 성질은 본디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것이니 내려 보내는 것이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본성에 따르면 다스려지고 이를 무시하면 어지러워진다.”      

     

      그가 진단한 홍수의 원인과 치법은 다음과 같다. “하류가 좁게 막혀있어(壅塞) 본성을 따르지 않아 어지럽게 된 것이니 치수란 하류의 옹색한 곳을 터주고 물의 본성에 따라 이끌어주면 그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토기가 왕성한데 수로가 미진하면 물이 범람하고 옆으로 흘러나오게 된다고 했으니 인간이 자신의 편의만을 위해 산길을 끊고 물길을 막아 도로를 만들고 물이 모이는 곳에 제방을 막아 아래로 흘러갈 물을 가두어 두었으니 범람을 자초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이 바다로 흘러 내려갈 길로 이끌어야 하듯이 세상일의 흐름도 이와 같아 자연스러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글의 요지이다. 


    옛 사람의 지혜, 치산치수론 여전히 유용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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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의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의가 있으니 허준이 펴낸 『찬도방론맥결집성』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홍(맥)이란 물과 같으니 혈과 기가 몸 안에서 흐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이 물길을 따라 흐르지 않고 역행하여 홍수가 되는 것이니 오직 기혈은 평상을 유지하여 사나워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사열(邪熱)이 편성(偏盛)하게 되면 영위가 갈 길을 찾지 못해 기가 막히고 혈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다(氣壅而血溢). 그러므로 그 맥동이 깊이 누르거나 들어 올리거나 모두 극대하여 피부에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물이 뒤섞인 느낌이 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앞의 글에 이어 「도산도수론(導山導水論)」에서는 물을 다스리는 치수법이 도수론이라면 산도 역시 이끌 수 있다는 도산론(導山論)을 주장하고 있다. 

     

     “물이란 움직임이 있어 흘러갈 수 있으니 동쪽으로 길을 터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물길을 트면 서편으로 흐름이 일어나는 것이다. 산은 움직임이 없어 옮겨갈 수 없으니 동쪽 산을 서쪽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므로 이끌어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산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산에는 근맥(根脈)과 조리(條理)가 있어 물길에 원맥(源脈)과 주리(湊理)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길로 말미암아 이끌 수가 있는 것이다. 반드시 산을 옮기고 물길을 바꾸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산자락을 마구 깎아 길을 내고 물을 막아 가두는 것이 개발의 상징이자 발전상으로 내세우던 현대문명이 자연이변 앞에서 속수무책인 것을 보면 옛 사람의 지혜가 담겨있는 치산치수론이 여전히 유용한 논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압록원방천조주역사행나걸시문(鴨綠院防川造舟役事行儺乞施文)」은 저자가 사는 고장 앞을 흐르는 압록원 방천을 막아 홍수의 피해를 줄이는 한편 통행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배를 건조하자는 내용으로 발의한 통문이다. 


    기와 혈 다스려 영위가 잘 순환될 수 있게 양생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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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원은 전라도 곡성현에 있는 나루터로 물이 푸르고 물고기가 흔해서 오리와 철새가 많이 날아들어 압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지만 원래는 섬진강과 보성강의 푸른 물줄기가 합류되는 지점이라 합록(合綠)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고장인데, 주변에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아 물이 불어 넘치고 길이 끊기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제방을 쌓아 강물이 넘치는 것을 막고 배를 만들어 촌민들이 물고기를 팔아 소금을 사갈 수 있도록 나루터를 조성하고 배를 고쳐서 오고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건의문이다. 

     

    물길을 터주는 일이나 제방을 쌓는 일이나 구명선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재난대비책은 큰일이 닥치기 전에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일들이다. 

    내 몸 안의 기와 혈을 다스려 영위가 잘 순환될 수 있도록 양생에 주의를 기울이고 건강을 관리하는 일은 누구나 각자 힘써 행해야할 스스로의 재난대비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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