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俗漢醫學原論』의 凡例에서 한의학에 대하여 상식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도록 간명하게 해설을 하였다는 것은 趙憲泳이 실용성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취사선택하여 책을 저술하였으며 이는 나아가 그가 추구한 民衆醫術化와도 관련이 있다.
어려운 한의학 내용을 현실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요약이 이루어져 간명해질 수 있는데, 현실의 접목이란 곧 자신 스스로 실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임상진료의 내용을 종합한 『東洋醫學叢書 : 五種』의 체제를 보면 부인병, 위장병, 폐병, 신경쇠약증 등 각각에 대해서 우선 병증의 특징과 한방치료의 주안점을 밝히고 있으며, 치료 시 곤란한 점과 주의할 점 등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證治에서도 단순 나열식이 아니라 임상에서 다빈도로 치료하게 되는 증후나 질병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處方도 실제 사용하여 효과를 경험한 것 위주로 선정하였다. 이와 같이 한의학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저술한 이유는 전문가인 한의사 또는 한의학자만을 위함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던 것이며 이를 스스로 ‘民衆醫術化’라고 하였다.
신창건, 趙憲泳 사상을 ‘정치적 의학사상’ 규정
民衆醫術化의 배경에 대해서 신창건은 “趙憲泳의 정치적 의학사상”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사회가 여러 모순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에 대한 맥락 위에서 趙憲泳을 주목하였다. 즉, 기존의 학계에서 趙憲泳을 한의학 부흥논쟁의 주도자로서만 평가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신창건은 趙憲泳의 의학사상을 소위 ‘정치적 의학사상’으로 규정하였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趙憲泳은 신간회 해산 후 스스로 東洋醫藥社를 개설한 이후 의학계몽 활동을 하였는데, 1935년에 간행된 『民衆醫術理療法』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醫藥의 社會化, 醫療術의 常識化는 全人類의 共通된 要求이며 우리에게는 더욱이 그 要求가 切實하지 않을 수 없다.
著者가 일찍이 이에 着眼하여 民衆醫療術硏究에 留意한지 數年만에 이 治療法을 얻어서 濔來 그 普及에 努力해 오던 바 그 効果가 實로 期待以上으로 偉大하여 醫療費를 負擔키 어려운 貧寒한 病者, 鄕村의 病者들에게 醫療施設의 不足을 補充할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現代醫藥으로 治療하지 못하는 慢性的 難病이 治療되며 疲勞의 恢復, 生理作用의 自然的 調整 等에 奇効가 있어서 强健術로도 優秀한 것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理療法은 누구든지 自己 손으로 容易히 實行할 수 있고 조금도 危險이 없으며 費用은 全然 안 들거나 極히 少額으로 能히 治療의 効果를 얻을 수 있으니 이러한 治療法을 하루 바삐 一般에 普及시키기 爲하여 이 小冊子를 만든 것이다.
醫術의 目的은 疾病의 治癒, 健康의 恢復增進에 있다. 病者의 要求하는 것은 學理的 說明보다 健康의 恢復 그것이다.
그리고 事實은 어떠한 理論보다도 權威 있는 것이니 우리가 여러 번 實驗하여 實際에 그 治療의 効果를 確認하게 된다면 우리는 迅速히 그 療法을 利用할 것뿐이다.>
전문의료 역할과 간단한 의학지식 보급 역할 구분
의약의 사회화와 의료술의 상식화를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스스로 민중의료술을 연구해 왔으며, 그 목적은 누구든지 자신 손으로 쉽게 실행할 수 있으며 위험도 없고 비용도 크게 들지 않아 가난한 사람이나 멀리 떨어진 외지의 사람들에게 부족한 의료의 시행을 보충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35년 『新東亞』에 발표한 『農村家庭의 常備藥과 簡易治療法』도 이러한 관점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상비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간단한 의학지식을 보급하여 일반인들이 스스로 치료를 하도록 지도하는 목적은 『東醫寶鑑』의 서문에서 “窮村僻巷無醫藥, 而夭析者多, 我國鄕約多産, 而人不能知爾. 宜分類並書鄕名, 使民易知.”라고 말한 것과 상통한다. 즉, 許浚은 궁벽하여 의약을 갖추지 못한 곳에 요절하는 자가 많으므로 향약명을 병기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소외된 사람들에게까지 의료의 혜택이 미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 의학상식의 보급을 통한 의료계몽과 전문적인 의학치료 사이에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趙憲泳은 1935년 『新東亞』에 발표한 『漢方醫學의 危機를 앞두고』에서 解放主義와 嚴選主義의 병행을 언급하면서, 누구나 한의를 연구 이용할 수 있게 하여 배타적 면허제도에는 반대하되, 직업적으로 한의약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인격적, 학술적으로 철저히 자격을 검증해야 하고, 이에 비하여 일반한의는 민간요법 치료사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관청의 관리감독을 받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전문의료의 역할과 간단한 의학지식을 보급하는 역할을 구분하여 본 것이다.
한의학이 친숙하게 민중에게 다가갈 수 있게 노력
趙憲泳은 신문, 잡지 등 대중매체에 많은 기고를 하였으며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일제강점기 한의학계는 한의학강습소를 설치하여 한의학 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 당시 발간된 대부분의 한의학 잡지는 한의학 강습과 연계되어 전문한의사를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趙憲泳은 이러한 한의계의 전문 잡지보다는 東亞日報, 朝鮮日報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들과 『新東亞』, 『春秋』 등의 대중잡지에 보다 활발히 한의학을 소개하는 내용을 기고하였는데, 상식적인 한의학 지식의 보급을 위한 것이었다.
기고한 주제들도 「임신 많은 봄철에 낙태는 어떻게 막을까」, 「우스운 듯하면서 마음 놓을 수 없는 각기와 부종」, 「이번 겨울에 유행하는 감기의 치료법」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대중들이 쉽게 관심을 가지는 질환들에 대하여 치료법을 소개한 것들이었다.
알기 쉬운 한의학 상식이 널리 보급될수록 일반인들의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따라서 한의학의 전문지식도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의학 부흥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趙憲泳은 민중과의 거리감을 좁힘으로써 한의학이 보다 친숙하게 민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방향은 올바른 것이었고 한의학의 근대화 과정에서 시대를 앞선 생각이었다고 평가된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었을 때 한의학을 아끼고 이용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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