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풋풋했던 사춘기의 아련한 추억들과 함께 다소 후회스런 기억들이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도 생각이 난다.
필자의 모교는 아주 예전의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던 학교였다. 시대가 변하고 대입 제도도 바뀌고 교육과정도 개편되었지만 세상의 변화를 홀로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교내의 문화나 학생 인권 측면에서도 그랬겠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늦은 밤 까지 전원 남아야 하는 야간 자율학습 제도였다. 아침 7시 10분까지 등교하여 밤 10시에 학교를 나와야 했는데 집은 그야말로 잠만 자는 곳이어야 했다.
사교육에 기대지 않더라도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것이 잘 안 맞는 학생도 있을 수 있고 장소를 바꿔가며 공부하는 것이 집중력에 더 이로운 학생도 있을 것인데,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믿어주기 보다는 오래도록 이어왔던 전통과도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켰다.
일부 한의대 입학생, 학업 부적응 모습 보여
이른바 SKY라고 하는 소위 명문대학교에 입학을 많이 시켰던, 특히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대학에 한 해 20명 넘게 진학시키고 있는 입시 결과 때문이었는지 모교의 선생님들은 ‘야자’에 대해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한 입시 결과가 ‘야자’로 인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설사 동의한다 하더라도 꼭 그렇게 타율적인 야간 자율학습을 운영해야 했었는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해 줄 것은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의과대학의 학생들은 타 메디컬 계열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입학 이전에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이던 모범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학 이후 10% 내외의 학생들은 학습 부진을 겪거나 학업 부적응 모습을 보인다.
특히 본과 1학년 학생들은 갑자기 늘어난 학업량과 엄격한 평가에 당황하며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2년 전 Medical Education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의과대학 1학년들이 느끼는 학업부진에 대한 원인으로 비효율적 학습, 잘못된 학습 기술, 잘못된 이해 전략, 특정 과목의 부족, 자기 조절 능력 부족,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부족, 메타 인지 능력 부족, 회복 탄력성 결여, 스트레스 관리 실패, 학업량 관리 실패, 부적절한 학습 환경, 결함 인식 및 개선 실패, 도움 요청 실패, 기타 개인적 요인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학습 부진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이처럼 학생 개개인이 느끼는 학업의 어려움은 매우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 문제를 파악하여 적절한 지원이 공급된다면 학생들의 학습 능력과 학업 성취도는 높아질 것이다.
해외의 연구에서 제시된 원인이지만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이나 한의과대학의 학생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원인들이라 생각한다.
고등학생까지의 사교육에 의존하던 습관이나 익숙하지 않은 자기 주도적 학습방법은 의과대학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또한 아직 1학년이기에 구체적인 진로나 자신만의 미래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거나 미래를 지나친 낙관으로 바라볼 때 목표의식 없는 학생이 되기 쉽고 그 결과는 학업 부진으로 나타나게 된다.
대학 생활이 곧바로 취업 준비로 이어지는 일반 학과의 학생들과 달리 의대나 한의대의 학생들은 어느 정도 진로가 정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조절, 시간 관리, 학업량 관리 등에서 실패할 수 있다.
‘적극-발달적 접근’ 방식으로 학습 지원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는 학습 지원의 접근 방법으로 ‘부족-반응적 접근’ 방식과 ‘적극-발달적 접근’ 방식을 비교하여 제시하고 있다. ‘부족-반응적 접근’ 방식은 일부 소수의 학습 부진 위기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다음 평가의 통과를 목표로 한다.
재교육, 재시험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지원하는데, 위기 학생이 낙인으로 찍힐 가능성이 존재하고 앞으로 동일한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접근 방식이 가지는 한계라 할 수 있다.
반면 ‘적극-발달적 접근’ 방식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실패에 대한 재교육 이상을 제공하여 학생들이 학습 기술을 습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모든 학생의 개인적, 직업적 성장을 목표로 하며 의과대학 초반부터 정기적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학습 지원 방식은 ‘부족-반응적 접근’ 방식의 낙인 효과와 반복되는 실패의 가능성을 낮춘다.
저자들은 ‘적극-발달적 접근’ 방식이 비록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면이 있지만 실패를 치료하기보다 예방이 낫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학습 지원을 추천하고 있다.
학교의 학습 지원 프로그램은 1학년 전 기간에 걸쳐 교육과정에 포함되어야 하며, 위험군 학생의 조기 감지 및 그룹/개별 교정 조치를 실시하고 출구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1학년 이후에도 후속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학생 개개인 특성 살리는 지원 프로그램 설치
각 학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습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한의과대학에서의 학습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적극 도입하여 운영해야 할 것이다.
일단 적절한 학습 목표를 설정하여 교육과정 안에서 최대의 학습 효율을 내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과도한 학업 부담과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개편은 교육에서 언제나 중요한 주제였지만 한의대의 교육과정 개편과 그 방향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요즈음 새삼 다시 그 중요성을 새기게 된다.
또한 각 교과의 평가와 임상 실습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도 학습 지원의 아주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선택과목의 확대를 통하여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워갈 수 있는 교육을 받는 것도 바람직하며, 진로나 전공 선택의 문제와 학습 부진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각종 멘토링 프로그램의 운영도 주목할 만하다.
유급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의 실수와 오류를 스스로 극복하게 하고 학업에 더욱 잘 적응하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의료인으로 배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의학이라는 방대한 학문을 배우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느끼게 된다. 전국의 한의과대학 재학생들이 그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욱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내며 실력 있는 의료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특히 학교라는 교육 현장이 더욱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되어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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