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뮤지컬스타!

기사입력 2018.11.23 13:22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40대 한의사의 뮤지컬체험기
    김상호 교수 / 대구한의대 부속포항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우리 동네 뮤지컬 스타를 꿈꾸다 ‘어링불 도깨비’

    C2190-46
    어느 순간에 공연은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정말 끝인가 정말 내가 공연을 했구나 하는 신기함과 한편으론 너무 빨리 끝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관객들이 함께 박수치고 웃어주니 리허설 때보다 공연에 힘이 실렸다. 엔딩곡을 부를때 정말 모든 감정과 힘을 다해 부르게 되었다.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라는 공간이 가진 놀라운 감동이었다.
    처음에 아내가 뮤지컬 아카데미를 소개했을 때 나와는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고 분명하게 No를 외쳤다. 그렇게 모집이 완료되고 아내가 연습을 나가는데 남자배우가 부족하다고 내게 다시 한번 의사를 물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주저주저하면서도 아내의 권유에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자라서, 또 아내 덕분에 그렇게 뮤지컬 아카데미에 발을 내딛었다. 아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또 정신과의사로서 예술치료를 경험해보고도 싶었다.

    ‘우리 동네 뮤지컬 스타를 꿈꾸다! <어링불 도깨비>’ 공연은 포항문화재단이 2016 문예회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시작되었다. 단순히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뮤지컬을 직접 배우고 만들어가는 참여형 교육사업이다. 해뜨는 고장인 이곳 포항은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담겨있는 곳이다. 어링불은 포항의 옛이름으로 지금 포항제철소 일대, 장장 20여 리(약8km)나 되는 어룡사는 모래벌판으로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였다. 조선의 풍수학자 이성지가 이 지역을 돌러보고 범상한 곳이 아니며 이런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 명이 살 곳이니라, 서쪽 문명이 동방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 수백 년 후 포항제철소 부지가 되고 대나무 같은 굴뚝이 치솟아 올라가고, 수십만의 사람이 모여 살게 되었다. 도깨비는 우리 옛말로 돗가비. 즉 돋우어 쳐다보일 만큼 키가 크다는 뜻으로 옛 신라의 제철 기술자들을 뜻한다.

    연습은 약 3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두시간 동안 수업이 이뤄졌다. 연기, 안무, 성악 세 파트의 전문가 선생님이 번갈아가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지도해주셨다. 세 가지 모두 낯선 부분이라 어린 학생들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특히 춤과 연기는 무척이나 어색했다. 교육을 통해 연기, 말하는 법, 춤과 노래, 발성까지 다양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연출자 선생님께서 연기를 지도해주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도 강제로 끌고가기 보다 배우들 스스로, 그리고 전체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등 3학년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이 함께 모여 수업을 듣고, 공연을 만들어간다는 다양성이 뮤지컬 아카데미의 특징이다. 수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서로 배려하고 대화하며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공연전날 잠자기에 앞서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낼이 공연이라고 생각하니 우선 연습이 부족함에 안타까웠고 실수하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무대에 서기에 긴장되었다. 하필 공연을 앞두고 강의가 많아 말을 많이 했더니 안타깝게도 목이 부었다. 더 좋은 컨디션으로 공연을 맞이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몸이라는 게 생각대로 되진 않는다. 부족했지만 3개월간 성실하게 참여한 연습시간을 떠올리며 배우는 과정이 단 한번의 공연보다 중요하다는 연출감독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잠을 청했다.

    드디어 공연 당일 토요일. 혹시나 진료가 밀려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할까봐 긴장하며 진료했다. 진료를 마치고 도착한 분장실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공연을 앞두고 다들 많이 긴장해서인지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기나긴 분장을 마치고 이제 마이크를 달러 갔다. 한참 기다려 마이크를 달고 테스트를 하는데 몸이 힘들어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대사하려니 역시 어색하여 목소리도 작고 책읽는 것처럼 말하니까 감독님이 “실제 공연하는 것처럼 하세요”라고 한마디 하셨다.

    맞다. 매순간 우리 삶은 연습이 아니라 맞실전같이 살아야한다. 그런데 참 쉽지 않다. 어느새 마지막 리허설이 시작됐다. 약간씩 실수가 있다. 나도 노래를 크게 하지 못했고, 춤도 조금 틀리고 계속 실수가 생겼다. 그래도 1주일 전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못했는데 이젠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 놀랍기도 했다.
    공연 시작 전 다들 많이 긴장했다. 옆에서 긴장을 풀어주고 격려해주려고 애썼다. 어느새 생각보다 시간은 빨라 벌써 우리 차례가 되었다. 연습처럼 함께 웃으며 무대로 나갔다. 두번째 대사를 앞두고 있을땐 혹시 대사가 기억안나면 어떻게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대사가 잘 튀어나왔다. 더 훈훈하고 더 잘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휴우, 드디어 내 등장 부분은 끝났고, 무대옆 포켓에서 공연을 지켜봤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오열하는 연기를 마치고 온 동료 배우(고등학생)가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손이 부르르 떨리는데 모습을 보며 정말 자기 역할에 몰입되어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그래서 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노력했고 공연을 기대했던 아이가 대견해 따뜻하게 꼭 안아줬다.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드리는 커튼콜 시간이 왔다. 아내를 안고 입맞춤했다. 그리고 아내를 안아 공연장을 돌았다. 나이 40세가 넘어 이렇게 춤을 추고 몸을 움직이게 된 것은 뮤지컬과 아내, 지도해주신 선생님들의 선물이다. 뮤지컬이 아니었다면 아내를 이렇게 특별한 공간에서 안아줄 순 없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갈 때 쯤 바로 이 뮤지컬 공연과 약 3개월의 연습 기간동안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모두가 결혼 10년을 맞은 우리 부부에게 주는 세상의 하나뿐인 10주년 기념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잡스의 유명한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 ‘갈망해라, 바보처럼 도전하라’는 마지막 말을 대부분 많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첫번째 이야기는 바로 “conneting the dots”, ‘점과 점을 연결하라’는 자기 삶을 말했다. 공연은 숙제를 남긴다. 공연동안 배운 것들과 그리고 여운과 감동, 이 멋진 점을 어떻게 연결해갈 것인가.

    고령화와 치매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이며 부담이다. 60대 연령층에서 활발하게 참여한다면 단순히 뮤지컬 교육이 아니라 치매 예방같은 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연기를 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복합적인 체험은 뇌를 다양하게 자극하여 뇌건강과 치매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공연날 무대 주인공이 되는 기쁨 또한 커다란 선물이다.
    이번에 연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발음을 또렷하게 하는 법이나 눈 마주침의 중요성 등이 실제 진료할 때 환자와 소통에 큰 도움이 되었다. 보이스 코칭을 전문가들에게 별도로 교육받는 의사들도 많다. 또한 학생들 임상실습 때 ‘의사-환자 역할극’ 준비나, 실기시험에 많이 활용되는 ‘표준화환자’를 통한 수업을 만드는 과정도 고민을 해보려 한다.

    진료실에서 많이 만나는 우울증이나 화병환자의 경우 부부상담이 필요한데 부부 역할극을 치료방법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꼭 공연이 아니더라도 한의사이자 선생으로서 자기 역할을 더 멋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 더 재밌고 멋지게 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꿈을 갖는 것, 그런 노력을 통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그런 경험을 나누는 멋진 경험과 치유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아내와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참 좋았다. 많은 아쉬움을 잘 갈무리해서 다시 돌아간 자기 자리에서 그 여운과 경험을 새해가 될 때 싹틔워갔으면 좋겠다. 주인공인 내 삶의 공연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어링불 도깨비… 멋지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