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침법(舍巖鍼法)의 전래와 무형유산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사암침법의 창안자 누구인지 확실한 문헌근거 부족
오늘날 ‘사암침법’ 전통침법으로 활발한 연구이어져
역사적인 시원 탐구와 체계적인 접근 노력 필요
지난 해 겨울 사암침법 수련회에서 사암침법 전래설에 관해 강연한 이후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사암침법 학술대회에 같은 주제로 새로운 생각 몇 가지를 덧붙여 발표하게 되었다. 동의보감 기념사업에 수반해서 진행되었던 한의학 분야 무형유산 가치 발굴조사에 세계무형유산 후보로 사상의학과 함께 사암침법을 우선 대상으로 추진했던 터라 한국 고유 침법의 발굴과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창안자인 사암이 누군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있었으나 이를 풀지 못해 답답해하곤 했다. 대부분 한의계에 알려진 바, 일반적인 인식은 1955년에 행림서원에서 발행한 『사암도인침구요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에서 발행인 행파(杏坡) 이태호(李泰浩)가 원작자를 사암도인(舍巖道人)이라고 표방하고 ‘역자의 서언(緖言)’에 말하기를 강원도에서 온 한 늙은 의원(一老醫)이 전해준 말(傳言)에 “사암은 사명당(四溟堂) 송운대사(松雲大師)의 수제자(首弟子)”라 한다고 적었다. 그는 또 스님이라 속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하면서도 스님의 속성은 임(任)씨이고 석굴 속에서 득도했다 하여 도호(道號)를 ‘사암(舍岩)’이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명대사의 문집이나 행적을 담은 그 어떤 기록에도 사암이라는 법명이나 도호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연변 사상의학계의 원로이자 조의(朝醫) 손영석(孫永錫) 선생에 따르면 사암은 평안남도(함경도?) 출신의 스님으로 그의 본명은 황정학이며, 북한지역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어오는 사실이라고 분명하게 잘라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몇 차례에 걸친 대담에서 채록한 것인데, 이 주장 역시 확실한 문헌근거가 확보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앞서 이태호가 사암침법을 확신하여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은 나름대로 피치 못할 인연이 있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한국전쟁중) 1.4후퇴 후 향리에 내려가 은거(隱居)하기를 2년 반, 1953년 6월에 중풍으로 인한 수족마비(癱瘓風疾)가 찾아와 무의벽촌(無醫僻村)에서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아는 몇 군데 경혈에 점을 찍어 주변 사람에게 침을 놓게 했는데(占記施鍼), 불과 3번 시술한 끝에 병석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三下起床). 이렇듯 자신의 신병에 활용해 보고나서 사암침법 효과가 뛰어남을 절감한 그는 곧바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금 400여 년 전에 나온 사암침법, 그리고 이 침법이 한국의 고유 침법으로 자리 잡기에는 많은 시일과 여러 단계의 전승을 거쳐야 했을 테지만 지금 알려진 것은 조선 후기 한참 세월이 지난 후대의 전사본(傳寫本) 몇 종류가 우리 곁에 놓여 있을 뿐이다. 사암이 이 침법을 창안한 이후 지산(智山 혹은 智妙病夫라 불림)이라는 침구 임상대가가 출현하여 침구임상 의안(醫案)을 곁들였기에 오늘날 이 침법을 해석하고 임상에 활용하는데 큰 도움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적(事蹟)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한때 이 침법이 근현대 침구의학자인 이재원(李在元)에 의해 일본의 야나기 소레이(幽谷素靈) 등에 전해졌는데, 오행보사법 혹은 오행침으로 둔갑하여 유럽 등 서구제국에 소개되고 보급되었다. 하지만 이 침법이 조선의 고유침법이라는 것은 물론이요, 사암이나 이재원의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은 채 오로지 일본의 침술로 알려진 것 또한 뼈아픈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조세형의 『舍岩침법의 체계적 연구』(1986)를 비롯하여 이 침법을 연구한 저술이 적지 않게 출판되었고 영문으로 번역된 바 있으며, 1995년에는 사암침법 체계정립 기념사업회가 결성되고, 경기도 안성에는 기념비도 수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올해에는 사암침법봉사단을 이끌던 임상한의사들을 주축으로 사암침법 학술대회까지 열렸으니 바야흐로 토굴 속에서 창안된 조선의 침법이 이제 세계로 나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세계 전통의학에 있어서 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하며 2007년 ‘중의침구’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했던 중의학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침구학의 발상지라 자부하는 한국의 고유 침법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암침법에 대한 역사적 시원을 탐구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작년 봄 전주에 자리를 잡은 아태무형유산원으로부터 원고 집필의뢰를 받았다. 유네스코에서 무형유산 등재 심의위원들에게 배포할 세계의 전통의학에 관한 영문서를 발행하려 한다는 취지이기에 열일을 제쳐두고 참여하기로 하였다. 지면에 제한이 있어 한국의 전통의학 가운데 사상의학과 사암침법 소개글을 기고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일침중혈(一鍼中穴), 응수이기(應手而起)” 침 한 대 혈자리에 적중하면 손을 따라 기혈이 움직이는 것처럼, 한국 침법의 우수성이 온 누리에 널리 알려지길 고대한다.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사암침법의 창안자 누구인지 확실한 문헌근거 부족
오늘날 ‘사암침법’ 전통침법으로 활발한 연구이어져
역사적인 시원 탐구와 체계적인 접근 노력 필요
지난 해 겨울 사암침법 수련회에서 사암침법 전래설에 관해 강연한 이후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사암침법 학술대회에 같은 주제로 새로운 생각 몇 가지를 덧붙여 발표하게 되었다. 동의보감 기념사업에 수반해서 진행되었던 한의학 분야 무형유산 가치 발굴조사에 세계무형유산 후보로 사상의학과 함께 사암침법을 우선 대상으로 추진했던 터라 한국 고유 침법의 발굴과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창안자인 사암이 누군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있었으나 이를 풀지 못해 답답해하곤 했다. 대부분 한의계에 알려진 바, 일반적인 인식은 1955년에 행림서원에서 발행한 『사암도인침구요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에서 발행인 행파(杏坡) 이태호(李泰浩)가 원작자를 사암도인(舍巖道人)이라고 표방하고 ‘역자의 서언(緖言)’에 말하기를 강원도에서 온 한 늙은 의원(一老醫)이 전해준 말(傳言)에 “사암은 사명당(四溟堂) 송운대사(松雲大師)의 수제자(首弟子)”라 한다고 적었다. 그는 또 스님이라 속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하면서도 스님의 속성은 임(任)씨이고 석굴 속에서 득도했다 하여 도호(道號)를 ‘사암(舍岩)’이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명대사의 문집이나 행적을 담은 그 어떤 기록에도 사암이라는 법명이나 도호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연변 사상의학계의 원로이자 조의(朝醫) 손영석(孫永錫) 선생에 따르면 사암은 평안남도(함경도?) 출신의 스님으로 그의 본명은 황정학이며, 북한지역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어오는 사실이라고 분명하게 잘라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몇 차례에 걸친 대담에서 채록한 것인데, 이 주장 역시 확실한 문헌근거가 확보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앞서 이태호가 사암침법을 확신하여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은 나름대로 피치 못할 인연이 있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한국전쟁중) 1.4후퇴 후 향리에 내려가 은거(隱居)하기를 2년 반, 1953년 6월에 중풍으로 인한 수족마비(癱瘓風疾)가 찾아와 무의벽촌(無醫僻村)에서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아는 몇 군데 경혈에 점을 찍어 주변 사람에게 침을 놓게 했는데(占記施鍼), 불과 3번 시술한 끝에 병석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三下起床). 이렇듯 자신의 신병에 활용해 보고나서 사암침법 효과가 뛰어남을 절감한 그는 곧바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금 400여 년 전에 나온 사암침법, 그리고 이 침법이 한국의 고유 침법으로 자리 잡기에는 많은 시일과 여러 단계의 전승을 거쳐야 했을 테지만 지금 알려진 것은 조선 후기 한참 세월이 지난 후대의 전사본(傳寫本) 몇 종류가 우리 곁에 놓여 있을 뿐이다. 사암이 이 침법을 창안한 이후 지산(智山 혹은 智妙病夫라 불림)이라는 침구 임상대가가 출현하여 침구임상 의안(醫案)을 곁들였기에 오늘날 이 침법을 해석하고 임상에 활용하는데 큰 도움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적(事蹟)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한때 이 침법이 근현대 침구의학자인 이재원(李在元)에 의해 일본의 야나기 소레이(幽谷素靈) 등에 전해졌는데, 오행보사법 혹은 오행침으로 둔갑하여 유럽 등 서구제국에 소개되고 보급되었다. 하지만 이 침법이 조선의 고유침법이라는 것은 물론이요, 사암이나 이재원의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은 채 오로지 일본의 침술로 알려진 것 또한 뼈아픈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조세형의 『舍岩침법의 체계적 연구』(1986)를 비롯하여 이 침법을 연구한 저술이 적지 않게 출판되었고 영문으로 번역된 바 있으며, 1995년에는 사암침법 체계정립 기념사업회가 결성되고, 경기도 안성에는 기념비도 수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올해에는 사암침법봉사단을 이끌던 임상한의사들을 주축으로 사암침법 학술대회까지 열렸으니 바야흐로 토굴 속에서 창안된 조선의 침법이 이제 세계로 나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세계 전통의학에 있어서 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하며 2007년 ‘중의침구’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했던 중의학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침구학의 발상지라 자부하는 한국의 고유 침법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암침법에 대한 역사적 시원을 탐구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작년 봄 전주에 자리를 잡은 아태무형유산원으로부터 원고 집필의뢰를 받았다. 유네스코에서 무형유산 등재 심의위원들에게 배포할 세계의 전통의학에 관한 영문서를 발행하려 한다는 취지이기에 열일을 제쳐두고 참여하기로 하였다. 지면에 제한이 있어 한국의 전통의학 가운데 사상의학과 사암침법 소개글을 기고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일침중혈(一鍼中穴), 응수이기(應手而起)” 침 한 대 혈자리에 적중하면 손을 따라 기혈이 움직이는 것처럼, 한국 침법의 우수성이 온 누리에 널리 알려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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