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굴비와 손님마마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어릴 적 추억 한토막이다. 한 여름을 넘기느라 체력도 고갈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편도선이 부어 밥 먹기 힘들게 된 적이 있었다. 목이 따끔거리면서 몸이 나른한 것이 입을 벌리기도 귀찮게 여겨진다. 입맛을 잃고 이유 없이 미열로 시름시름 앓는 손주 녀석에게 할머니가 쓰는 비장의 카드는 바로 차가운 샘물에 하얀 쌀밥을 말아 구덕구덕 반쯤 말린 굴비 살을 떼어 수저에 얹어 먹이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칠맛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땐 그것을 어떻게 장만했는지 알려고도 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고향 마을 가까이에 조그만 포구가 있었고 황포 돛을 매달고 조깃배가 들어오는 덕택에 실한 조기를 구해 굵은 소금을 뿌려 염장(鹽藏)해 두었다가 쌀뜨물에 하룻밤을 침지(沈漬)하여 재워두고 이튿날 다시 꺼내 볕에 말리고 이렇게 하길 여러 번 반복해야 내입 속에 들어올 감미로운 굴비 살 조각이 마련된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그 뒤 80~90년대 이후로는 한동안 조기가 잡히질 않아 서민들은 명절이 아니면 굴비를 구경하기 어려웠고 영광 법성포 굴비란 옛 명성도 아련한 추억거리로 변해 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조기가 식탁에 올라왔지만 값이 너무 싸고 크기가 작은 것들이어서 그런지 그 옛날의 조기반찬을 회상하기에 너무 부족해 보였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아무도 마트의 조기 두릅에서 보리굴비를 회상하지 않았다. 간혹 아주 특별한 한정식 집 몇 군데서 특별 메뉴로 공급할 뿐이었는데, 그것은 한 뼘이 넘는 큰 조기가 명절에 고가의 선물세트로 거래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조기와 굴비, 그리고 참기름을 발라 반건조한 이 보리굴비의 명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전혀 가늠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 해 전 진즉 펴낸 바 있는 『허준의학전서』를 다시 교정, 증보하여 펴
내기로 맘먹고 텅 빈 연구실을 혼자 지키고 있을 때였다. 그중 허준이 선조~광해조에 일약 조선 최고의 명의 반열에 오르면서 국수(國手)로 자리매김 되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던 두창(痘瘡) 즉 천연두 치료법에 대해 기록한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를 다시 새겨보게 되었다.
그 책에는 두창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치법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내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작 음식 항목이었다. 여기에서는 이 병에 좋은 음식과 금해야 할 여러가지 음식 즉, 금기음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바로 조기(약명으로는 석수어(石首魚), 혹은 석어(石魚)로 표기)에 대한 구절이 들어 있었다. 이런! 당연히 한약을 써야하니 비린 생선을 금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다. “열이 나기 시작해서 두창 딱지가 앉을 때까지 여러 가지 피가 들어있는 고기를 먹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대개 화를 도와 열독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예상대로이다. 그 다음 구절에서 눈동자가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비위가 약하면 상어(鯗魚) 즉, 말린 조기나 기름을 죄다 걷어낸 정갈한 돼지고기 살코기를 맹물에 삶아 조금씩 먹여 입맛을 돋우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상어란 말린 물고기(乾魚)를 말한다. 그런데 주석에 석수어라
쓴 것으로 보아 말린 조기 곧, 굴비 반찬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구나. 두창의 열독이 심할 경우에는 어린애의 입 속과 목안까지 점막이 헐고 아파 음식을 넘기기가 어렵고 또한 기름진 음식을 먹여 혹여 열독을 조장할까봐 육류를 피하게 하지만 영 밥맛을 잃고 저항력을 잃을까봐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 앞 조문에서는 “두창을 앓는 동안 내내 비린 물고기는 먹이면 안 된다. 가래가 생기는 것을 도와 체기가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보다 먼저 “두창은 비위를 위주로 치료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밥을 잘 먹는 아이가 병세가 순탄하며, 담백한 음식이 좋다”고 한 것으로 보아 굴비반찬이 마련된 배경에는 조선시대 천연두란 혹독한 질병을 이겨내야만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대적 한계상황과 전염병에 얽힌 음식문화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필자는 멀리서 찾아온 귀한 손님에게 굴비정식을 대접하고 나 또한 이 음식을 즐긴다. 그 까닭은 맛도 맛이려니와 어려서 할머니의 손길과 정성이 담겨진 맛을 추억하고픈 마음과 함께 이 음식에 서려있는 의약 문화의 지혜를 나누고자 하는 까닭에서이다.
두창을 손님마마라고 부르며, 서역(西域)에서 온 역병 귀신을 잘 먹여 대접해야 크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곱게 물러간다고 여기고 제상에 정성을 기울였던 할머니들이다. 호환(虎患)이나 마마귀신도 무섭지만 가여운 내 새끼
의 생명을 살릴 음식을 어떻게 마련할까하는 것이 목전의 문제였다. 허준이 쓴 『두창집요(痘瘡集要)』 음식 항목에 대한 언해는 다음과 같은 풀이가 달려 있다. “ 역의음식 머길 법이라.(역병에 음식 먹이는 방법이다.)”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어릴 적 추억 한토막이다. 한 여름을 넘기느라 체력도 고갈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편도선이 부어 밥 먹기 힘들게 된 적이 있었다. 목이 따끔거리면서 몸이 나른한 것이 입을 벌리기도 귀찮게 여겨진다. 입맛을 잃고 이유 없이 미열로 시름시름 앓는 손주 녀석에게 할머니가 쓰는 비장의 카드는 바로 차가운 샘물에 하얀 쌀밥을 말아 구덕구덕 반쯤 말린 굴비 살을 떼어 수저에 얹어 먹이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칠맛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땐 그것을 어떻게 장만했는지 알려고도 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고향 마을 가까이에 조그만 포구가 있었고 황포 돛을 매달고 조깃배가 들어오는 덕택에 실한 조기를 구해 굵은 소금을 뿌려 염장(鹽藏)해 두었다가 쌀뜨물에 하룻밤을 침지(沈漬)하여 재워두고 이튿날 다시 꺼내 볕에 말리고 이렇게 하길 여러 번 반복해야 내입 속에 들어올 감미로운 굴비 살 조각이 마련된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그 뒤 80~90년대 이후로는 한동안 조기가 잡히질 않아 서민들은 명절이 아니면 굴비를 구경하기 어려웠고 영광 법성포 굴비란 옛 명성도 아련한 추억거리로 변해 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조기가 식탁에 올라왔지만 값이 너무 싸고 크기가 작은 것들이어서 그런지 그 옛날의 조기반찬을 회상하기에 너무 부족해 보였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아무도 마트의 조기 두릅에서 보리굴비를 회상하지 않았다. 간혹 아주 특별한 한정식 집 몇 군데서 특별 메뉴로 공급할 뿐이었는데, 그것은 한 뼘이 넘는 큰 조기가 명절에 고가의 선물세트로 거래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조기와 굴비, 그리고 참기름을 발라 반건조한 이 보리굴비의 명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전혀 가늠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 해 전 진즉 펴낸 바 있는 『허준의학전서』를 다시 교정, 증보하여 펴
내기로 맘먹고 텅 빈 연구실을 혼자 지키고 있을 때였다. 그중 허준이 선조~광해조에 일약 조선 최고의 명의 반열에 오르면서 국수(國手)로 자리매김 되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던 두창(痘瘡) 즉 천연두 치료법에 대해 기록한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를 다시 새겨보게 되었다.
그 책에는 두창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치법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내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작 음식 항목이었다. 여기에서는 이 병에 좋은 음식과 금해야 할 여러가지 음식 즉, 금기음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바로 조기(약명으로는 석수어(石首魚), 혹은 석어(石魚)로 표기)에 대한 구절이 들어 있었다. 이런! 당연히 한약을 써야하니 비린 생선을 금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다. “열이 나기 시작해서 두창 딱지가 앉을 때까지 여러 가지 피가 들어있는 고기를 먹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대개 화를 도와 열독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예상대로이다. 그 다음 구절에서 눈동자가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비위가 약하면 상어(鯗魚) 즉, 말린 조기나 기름을 죄다 걷어낸 정갈한 돼지고기 살코기를 맹물에 삶아 조금씩 먹여 입맛을 돋우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상어란 말린 물고기(乾魚)를 말한다. 그런데 주석에 석수어라
쓴 것으로 보아 말린 조기 곧, 굴비 반찬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구나. 두창의 열독이 심할 경우에는 어린애의 입 속과 목안까지 점막이 헐고 아파 음식을 넘기기가 어렵고 또한 기름진 음식을 먹여 혹여 열독을 조장할까봐 육류를 피하게 하지만 영 밥맛을 잃고 저항력을 잃을까봐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 앞 조문에서는 “두창을 앓는 동안 내내 비린 물고기는 먹이면 안 된다. 가래가 생기는 것을 도와 체기가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보다 먼저 “두창은 비위를 위주로 치료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밥을 잘 먹는 아이가 병세가 순탄하며, 담백한 음식이 좋다”고 한 것으로 보아 굴비반찬이 마련된 배경에는 조선시대 천연두란 혹독한 질병을 이겨내야만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대적 한계상황과 전염병에 얽힌 음식문화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필자는 멀리서 찾아온 귀한 손님에게 굴비정식을 대접하고 나 또한 이 음식을 즐긴다. 그 까닭은 맛도 맛이려니와 어려서 할머니의 손길과 정성이 담겨진 맛을 추억하고픈 마음과 함께 이 음식에 서려있는 의약 문화의 지혜를 나누고자 하는 까닭에서이다.
두창을 손님마마라고 부르며, 서역(西域)에서 온 역병 귀신을 잘 먹여 대접해야 크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곱게 물러간다고 여기고 제상에 정성을 기울였던 할머니들이다. 호환(虎患)이나 마마귀신도 무섭지만 가여운 내 새끼
의 생명을 살릴 음식을 어떻게 마련할까하는 것이 목전의 문제였다. 허준이 쓴 『두창집요(痘瘡集要)』 음식 항목에 대한 언해는 다음과 같은 풀이가 달려 있다. “ 역의음식 머길 법이라.(역병에 음식 먹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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