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 앞뜰 큰 버드나무와 『의방유취』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버드나무 죽자 집현전 운영 사양길
『의방유취』 간행, 집현전 학자 맹활약
『의방유취』, 365권의 의학 백과전서

우연히 구해 본 『계림세적(鷄林世蹟)』이란 책을 들여다보니, 경주김씨 가문의 역대 문장들이 한데 모아져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단박에 눈길을 붙드는 흥미로운 일화가 한편 실려 있었다. 권5의 보유편 첫머리에 ‘집현전피선록(集賢殿被選錄)’이란 글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역사 속의 뒷얘기가 적혀 있었다.
“세종2년 경자년(1420)에 처음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고 글재주가 뛰어난 선비 10인을 가려 뽑아 채웠다. 뒤에 정원을 30명으로 늘렸다가 또 20명으로 고쳐 10인은 임금 앞에서 경사(經史)를 강론하는 경연(經筵)에 참여하고 10인은 왕세자의 서연(書筵)에 참여시켰다. 오로지 문한(文翰)만을 맡았으며, 고금의 일을 토론하였고 조석으로 의논하고 사색하였으며, 글 잘하는 선비가 줄줄이 배출되었으므로 사람을 얻는 것이 심히 성대하였다.”
집현전의 학사들은 조정의 씽크탱크이자 국가의 동량으로서 국왕의 지우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젊은 신료들이었다. 그런 집현전 얘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집현전 남쪽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서 있었는데, 기사~경오년(1449~1450) 사이에 흰 까치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가 흰빛이었다. 몇 년 동안 현달하고 중요한 직에 오른 이가 여럿이었는데, 이들이 모두 집현전 출신이었다. 계유년에서 갑술년(1453~1454) 사이에 버드나무가 다 말라죽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유성원을 희롱하여 말하길 ‘화가 반드시 버드나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성원이부터 해를 입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리되어 집현전이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며, 이어 집현전을 폐위하기에 이른 일을 말하며, 곧이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유성원을 비롯한 사육신이 죽음을 당한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유성원(柳誠源, 생년미상~1456)은 144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듬해 집현전저작랑에 이어, 1446년 박사로 승진했고 1447년에는 문과 중시에 급제했으며,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고려사』의 개찬(改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다음 장에는 집현전 학사출신 명사들의 관함이 죽 나열되어 있다. 정인지, 이사철, 정창손, 이계전, 안지... 일렬로 늘어선 학사들의 이름자가 몇 면에 걸쳐 이어지는데 가장 마지막은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으로 사육신의 이름이 맨 마지막을 장식한다. 사실 우리가 한층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들 중 많은 분이 『의방유취』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세종조 1445년 『의방유취』 편찬 기사에는 집현전 학사로 김예몽(金禮蒙)과 민보화(閔普和), 유성원(柳誠源)이 등장하며, 이계전과 이극감 등이 편찬에 관련하여 발언한 내용이 『세종실록』 기사에 실려 있다. 세조대에 『의방유취』를 교정할 때에는 양성지(梁誠之)가 교정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나중에 성종조에 간행과 관련해서는 한계희(韓繼禧) 등이 간행 책임자로 등장한다.
이렇듯 『의방유취』의 편찬과 교정, 간행하는 과정에서 집현전 학사들과 그 출신들의 역할이 지대했으며, 이 방대한 편찬사업은 사실 이들의 학문적 기반과 문사(文士)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쉽사리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365권이라는 세계의학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의학백과전서인 『의방유취』의 편찬부터 간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세종임금의 앞날을 대비한 혜안과 집현전에서 배출한 인재들의 활약이 결정적인 동력원이 되었다.
올해는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임금이 즉위하신지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의방유취』를 강독하던 학생들과 창덕궁 내의원 터를 답사하는 길에 인정전 앞에서 조촐한 기념의식을 치르며, 잠시 눈을 돌려 세종시대 의약문화를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버드나무 죽자 집현전 운영 사양길
『의방유취』 간행, 집현전 학자 맹활약
『의방유취』, 365권의 의학 백과전서

우연히 구해 본 『계림세적(鷄林世蹟)』이란 책을 들여다보니, 경주김씨 가문의 역대 문장들이 한데 모아져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단박에 눈길을 붙드는 흥미로운 일화가 한편 실려 있었다. 권5의 보유편 첫머리에 ‘집현전피선록(集賢殿被選錄)’이란 글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역사 속의 뒷얘기가 적혀 있었다.
“세종2년 경자년(1420)에 처음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고 글재주가 뛰어난 선비 10인을 가려 뽑아 채웠다. 뒤에 정원을 30명으로 늘렸다가 또 20명으로 고쳐 10인은 임금 앞에서 경사(經史)를 강론하는 경연(經筵)에 참여하고 10인은 왕세자의 서연(書筵)에 참여시켰다. 오로지 문한(文翰)만을 맡았으며, 고금의 일을 토론하였고 조석으로 의논하고 사색하였으며, 글 잘하는 선비가 줄줄이 배출되었으므로 사람을 얻는 것이 심히 성대하였다.”
집현전의 학사들은 조정의 씽크탱크이자 국가의 동량으로서 국왕의 지우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젊은 신료들이었다. 그런 집현전 얘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집현전 남쪽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서 있었는데, 기사~경오년(1449~1450) 사이에 흰 까치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가 흰빛이었다. 몇 년 동안 현달하고 중요한 직에 오른 이가 여럿이었는데, 이들이 모두 집현전 출신이었다. 계유년에서 갑술년(1453~1454) 사이에 버드나무가 다 말라죽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유성원을 희롱하여 말하길 ‘화가 반드시 버드나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성원이부터 해를 입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리되어 집현전이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며, 이어 집현전을 폐위하기에 이른 일을 말하며, 곧이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유성원을 비롯한 사육신이 죽음을 당한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유성원(柳誠源, 생년미상~1456)은 144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듬해 집현전저작랑에 이어, 1446년 박사로 승진했고 1447년에는 문과 중시에 급제했으며,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고려사』의 개찬(改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다음 장에는 집현전 학사출신 명사들의 관함이 죽 나열되어 있다. 정인지, 이사철, 정창손, 이계전, 안지... 일렬로 늘어선 학사들의 이름자가 몇 면에 걸쳐 이어지는데 가장 마지막은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으로 사육신의 이름이 맨 마지막을 장식한다. 사실 우리가 한층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들 중 많은 분이 『의방유취』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세종조 1445년 『의방유취』 편찬 기사에는 집현전 학사로 김예몽(金禮蒙)과 민보화(閔普和), 유성원(柳誠源)이 등장하며, 이계전과 이극감 등이 편찬에 관련하여 발언한 내용이 『세종실록』 기사에 실려 있다. 세조대에 『의방유취』를 교정할 때에는 양성지(梁誠之)가 교정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나중에 성종조에 간행과 관련해서는 한계희(韓繼禧) 등이 간행 책임자로 등장한다.
이렇듯 『의방유취』의 편찬과 교정, 간행하는 과정에서 집현전 학사들과 그 출신들의 역할이 지대했으며, 이 방대한 편찬사업은 사실 이들의 학문적 기반과 문사(文士)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쉽사리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365권이라는 세계의학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의학백과전서인 『의방유취』의 편찬부터 간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세종임금의 앞날을 대비한 혜안과 집현전에서 배출한 인재들의 활약이 결정적인 동력원이 되었다.
올해는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임금이 즉위하신지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의방유취』를 강독하던 학생들과 창덕궁 내의원 터를 답사하는 길에 인정전 앞에서 조촐한 기념의식을 치르며, 잠시 눈을 돌려 세종시대 의약문화를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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